
2년 전
청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청제비는 국보로!
산 그림자 기지개 켜는 언덕
봄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어깨 위로
봄빛 총총 내려와 등 토닥이는 그곳은 청제입니다.
위 치 : 영천시 도남동 산7-1
청 제 : 경상북도 기념물
청제비 : 보물
우리 조상들은 삼한 시대부터 제방을 축조하여 저수지를 만들어
홍수를 관리하고 가뭄을 대비하기 위한 수리시설을 꾸준히 만들고 관리하여 왔습니다.
영천 청제 역시 신라 법흥왕23년(536)에 축조하였으며
원성왕14년(798) 연인원 1만 4천명을 동원하여
제방을 수축하였다고 이곳 청제비(菁堤碑)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방의 길이 243.5m이며 제방의 높이는 12.5m로 저수면적은 11만㎡이고
저수량은 약59만 톤이며 유효저수량은 52만 톤의 규모입니다.
몽리면적 즉 청제(청못)로 부터 물을 받게 되는 농경지의 면적을 의미하는데,
청제는 축조이래 주변 농경지 134ha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는데,
다만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도로가
청제위를 지나게 된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청제 아래 펼쳐진 구암 들판은
요즘도 좀처럼 가뭄을 타지 않는다고 하는데,
도동 안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도남마을은
"나는 새가 굶어 죽어도 도동 안씨는 굶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고 하며
현재도 이 지방 일대의 중요한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청제의 옆에는 청제의 역사를 기록한 영천 청제비가 있습니다.
청제비각 안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별로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인 청제비는
청제가 처음 축조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록과
원성왕 14년(798년)에 청제의 무너진 둑을 수리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제비 바로 옆에는 1688년(숙종 14)에 세운 청제 중립비(菁堤重立碑)는
원래 청제비에서 서쪽으로 5m 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청제비와 나란히 비각 에 나란히 있습니다.
비문에 따르면 청제비가 1653년에 절단되어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을
최일봉(崔一奉) 등이 다시 맞추어 세웠다고 합니다.
이 청제중립비를 통해 청못과 청제비를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귀중한 금석문이 소멸을 면하게 된 경위도 알 수 있으며,
또한 조선시대의 수리정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최근 영천지역에서는 청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고
청제비는 국보로 승격시키자는 다양한 학술활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을 근거로 하는,
전인류가 함께 보호하고 후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중요한 유산을 말합니다.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이 자국 내 유산 중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닌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신청하면,
자문기구의 평가를 바탕으로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청못은 축조 연대가 명확하고 현재까지 그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
본래의 기능하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충분히 등재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1,500년 동안 청제비와 청제는 농업용수는 물론,
홍수조절과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습지의 역할을 묵묵히 변함없이
제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당연히 보존되고 보전되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 입니다.
청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영천이 국제적 생태도시로 인정받고,
청제비 또한 국보로 승격하는 그날을
천오백 년 전 일만 사천 명의 웅성거림이 뚜렷한
청제의 푸른 언덕에서 기대해봅니다.
영천 청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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