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공동촌이자 한국전쟁 피난민이 만든 마을

(좌) 1950년대 감천마을(출처 : 고양신문) / (우) 1960년대 태극도 마을 주민들(출처 : 국제신문)

2021년 부산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감천문화마을은 한국전쟁시기 형성된 피난민 마을이라는 상징성에 ‘태극도’라는 특정 종교 신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 마을이라는 특수성이 공존하고 있는데요.

전쟁 직후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이주해오며, 소위 ‘산동네’로 불리는 산비탈에 피난민이 몰려들어 마을을 형성했는데, 감천동도 그러한 동네 중 한곳입니다.

또 1955년 부산으로 피난 온 태극도 신도들이 현재 위치에 집단 이주하며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태극도를 중심으로 마을 주택 조성 원칙 아래 비슷한 형태의 집들이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조성되었고, 지형을 따라 발달된 골목계단과 층층이 쌓인 주택의 모습들은 현재 감천문화마을만의 독특한 외형을 이루게 됩니다.

오래된 마을? 꿈을 꾸는 맞추픽추!

그러나 경제성장기 약 2만 5천명이 거주하기도 했던 감천문화마을은 2000년대 이후 도시화의 영향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빈집이 늘어나며 급속히 노후화 되어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9년 ‘꿈을 꾸는 맞추픽추’ 사업으로 시작된 문화 예술을 가미한 도시재생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관광지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현재는 부산의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이자 관광자원으로서 큰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천문화마을의 재상사업은 2013년 ‘도시재생법’이 시행되기 전 마을 공동체의 자발적인 발의로 시작된 전국 최초의 사례로서 의의가 적지 않습니다.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품은 부산미래유산

감천문화마을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한국전쟁, 산업화, 도시화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품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기도 합니다.

과거 난개발과 압축 성장으로 부산의 가장 낙후된 곳이었던 감천문화마을. 여러 차례의 문화사업을 중심으로 마을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는데요. 미래유산이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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