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 위대했던 역사 속 그날 그 봄

글 백지혜 사진 김정민, 전강용 기자, 창원시 동영상 이솔희

자연의 봄은 온화하나 역사 속 봄은 때로 차갑고 잔인했다. 3·1운동과 3·15의거가 그랬고, 차별받았던 여성의 삶도 오랫동안 순탄치 않았다. 민족적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흘린 피와 눈물,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썼던 그들의 노력을 기억해야 하는 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마땅한 도리가 아닐는지~. 다시 봄이다. 경남에서도 특히 많은 역사적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창원의 3개의 봄을 더듬어 보았다.

하나. 민주주의 꽃피운 3·15의거 국립 3·15 민주 묘지

1960년 봄,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 3·15의거.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반발해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4·19혁명의 초석이 된 사건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국립 3·15 민주 묘지는 1968년부터 3·15의거 당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이 잠든 곳으로 3·15의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자유·민주·정의를 사랑하는 마산 시민정신을 계승하고자 조성됐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유영봉안소 앞에 서면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아래로 층층이 묘역이 양옆으로 마련돼 있고, 17세 꽃다운 나이로 순국한 김주열 열사의 묘도 이곳에 묻혀있다. 저 아래 참배단까지는 지그재그 사선으로 비탈길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3·15 기념관, 기념 시비, 민주 광장 등 둘러볼 곳이 많다. 특히 중앙에 높이 솟아 있는 민주의 탑(민주의 문)은 이 땅에 정의를 세운 그날의 애국·희생정신과 저항, 투쟁의 현장을 부각한 역사의 장을 상징한다. 정의의 상, 정의의 벽, 넋과 외로움을 밝히는 민주의 횃불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나란히 자리 잡은 모습, 그 웅장함에 비장한 마음이 꿈틀거린다.

민주주의 꽃을 피운 3·15의거 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에 봄이 오면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벚꽃이 만발한다. 봄 향기 가득한 곳에서 그분들의 희생을 가슴 깊이 되새겨보자.

📍위치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 문의 055)253-9315

둘, 이이효재 선생 숨결 스민 추모길 이이효재길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성노동자들의 시위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즈음이면 우리나라 여성을 위해 외길을 걸어온 한 분이 떠오른다.

1924년 마산에서 태어나 평생 여성운동을 해왔던 고(故) 이이효재(1924~2020) 선생이다. 정신대문제와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 남성 중심의 호주제 폐지와 비례 대표제 도입 등에 앞장섰음은 물론, 생전에 강조하던 ‘뜻있는 사람끼리 모이면 불가능은 없다’는 말을 실천하듯, 퇴임 후엔 고향 진해로 돌아와 지역의 여성 운동가들과 지역사회 운동의 이정표를 세웠다. 소녀 같은 감수성에 새로운 것에 늘 감격하던 선구자,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이셨다.

이이효재 선생을 기리기 위해 학계와 제자, 지역주민들의 뜻을 모아 창원시에서 제황산 둘레길에 추모길을 만들었다. 2020년 11월부터 만들기 시작해 2021년 9월 29일 선생의 별세 1주기에 맞춰 개장식을 했다. 진해기적의도서관으로 선생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주홍진(53) 관장은 “평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걸 꺼리셨어요. 오죽하면 1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도서관 할머니로만 알았을까요. 선생님의 정신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일상이 깃든 산책로에 길을 만들었어요”라며 선생을 추억했다.

그가 평생 추구한 가치를 길 위에 녹였다. 자연과 상생하며 살자는 ‘생명숲길’, 모든 차별을 넘어 평등하게 세상을 살자는 ‘평등길’, 통일에 대한 선생의 마지막 염원을 담아 ‘평화길’, 좋은 가치관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자는 ‘이음길’까지 총 2.2km 길이의 4코스가 그렇게 탄생했다. 흙길과 나무 데크 길이 교차하고 나무 그늘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다른 코스로 이어진다.

전체를 한 바퀴 휘~ 돌고 나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차곡차곡 정리되고 마음에 일어났던 동요가 잠재워진다. 이이효재길 해설사 박선영(47) 씨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를 함께 느껴보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모든 세대를 아울러 연대하고 공감하는 그런 시간을요”라며 선생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으로 읊조리듯 말했다. 해설사와 함께 걸으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길을 걸으며 내딛는 발걸음마다 이웃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꿈꿨던 고인의 뜻이 느껴진다.

📍위치 창원시 진해구 중원동로 52 문의 055)225-3964

셋, 마산 3·1운동 중 가장 격렬했던 ‘4·3 삼진의거’

1919년 3월 1일 그해 봄.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마산에서는 변상태 등의 주도하에 3월 28일 고현의거에 뒤이어 치밀한 계획으로 도모된 대규모 만세운동, 4·3삼진의거가 대표적이다.

진전, 진북, 진동면 주민 2000여 명이 짓눌려 있던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양촌리 냇가에 태극기를 들고 나와 행진을 하다 사동교(황교) 일대에서 일본 헌병들과 맞섰던 사건이다. 무기 하나 없이 투석전으로 마주했던 백의 군중 사이로 무차별 사격이 일어났고 8명이 순국, 셀 수 없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김수동, 변갑섭, 변상복, 김영환, 고묘주, 이기봉, 김호현, 홍두익 8분의 애국지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8의사 창의탑은 그때 당시 함성이 울려 퍼졌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지산리 일대에 세워져 있다. 그날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사동교(황교)는 그저 평화로웠다. 봄을 재촉하는 바람 위로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들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남긴 혜택임이 분명했다.

8의사 창의탑에서 진주로 가는 한적한 옛길 위에는 이들의 묘역도 있다. 각각 흩어져 있던 8의사의 묘들은 1981년 이곳으로 옮겨왔고, 지난해 1월 국가관리묘역으로 공식 지정됐다. 묘소를 둘러보는 내내 많은 생각들이 무게를 쌓는다. 참혹하고 암담했던 현실을 오직 독립을 위해 인내했던 고초가 아픔으로 내려앉는다. 그날의 우렁찬 함성이 아직도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지산리 58-12

📞문의 055)225-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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