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시간 전
탐라순력도의 그 곳, 용수포구에서 바라보는 '차귀점부'
차귀점부
탐라순력도의 그 곳,
'탐라순력도'?
조선 후기 제주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그림인 '탐라순력도'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라라는 제주도로 이주한 후에야 '탐라순력도'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답니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숙종 28년) 가을,
제주 목사 이형상이 약 한달여에 걸쳐 제주도를 순력하며 그림으로 기록한 화첩인데요,
시찰뿐 아니라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닌 일상도 함께 담겨 있답니다.
순력((巡歷)은 각 고을의 방어 실태와 백성의 풍속 등을 두루 시찰하는 것을 의미해요.
탐라순력도란?
1702년(숙종 28년), 제주 목사 이형상이 약 한달여에 걸쳐 제주도를 순력(巡歷)하며
그림으로 기록한 화첩. 총 43면(서문 2면+그림 41면)으로 구성돼 있음.
탐라순력도의 전체 화첩은 총 43면(서문 2면+그림 41면)이고, 화공 김남길이 그렸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지방관들이 공무를 수행하면서 부임지의 지리, 역사, 풍속 등을 담은 여러 기록물들과 회화를 다수 제작했다는데요, '탐라순력도'도 그런 추세에 따라 제작된 것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 탐라순력도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데요..
바로 지방관이 만든 화첩으로, '순력도'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기록물로는 '탐라순력도'가 유일하고, 저자, 화공, 제작동기 등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18세기 초 제주의 문화, 풍속, 의례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제주목 관아 망경루 1층에 '탐라순력도 체험관'이 있으니 제주목 관아를 들른다면 2층에 올라 전망만 보지 마시고, 1층의 탐라순력도 체험관도 한 번씩 둘러보세요~~
현재 제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는 이 '탐라순력도'를 모티프로 그림이나 집필 활동을 하는 분들도 있고, 또 도내에서는 역사기행 프로그램도 가끔 진행되고 있어요.
마침 그 중 한 곳, '차귀점부'의 시선을 따라가보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어 참여했는데요,
조선 후기에 그려진 그림 속 그곳들을 지금도 선명히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답니다.
총 41면의 그림 중 이번에 찾아간 곳은 용수 포구에요.
'차귀점부'가 그려진 곳이 바로 용수포구거든요.
용수포구는 제주올레 12코스의 종착점이자 13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잠깐...
탐라순력도는 그림의 제목을 보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대략 이해할 수 있는데요...
제목 중 조점(操點), 성조(城操), 점부(點簿)라는 명칭은 군사 및 군기를 점검하는 행사 장면을 의미한다고 해요.
- 조점 : 목사가 직접 참여해 군사 훈련과 군기, 군선 등을 점검하는 것
- 성조 : 성 위에서의 훈련 모습을 담은 그림. 수군의 군사훈련은 수조, 야간 훈련은 야조라고 함
- 점부 : 목사가 직접 가지 않고 군관을 보내 군사 훈련과 군기를 점검하는 것
- 사회·시사·강사 : 활 잘쏘는 사람을 뽑는 그림
이날 행사는 '제주도 포구의 가치를 역사, 자연, 문화적 시각에서 탐구하고 있는 모임인
'가름돌듯'에서 진행한 것인데요, 이번 '차귀점부 속 그곳'의 해설은 '고경대 사진작가님이 맡아 주셨답니다.
고경대 작가님은 아버지인 故 고영일 사진작가가 촬영했던 제주 곳곳을 돌며
50년 세월의 변화를 렌즈 속에 담아온 분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이번에도 고영일 작가님이 찍으셨던 사진을 몇 점 보여주시며 50년 전과 비교를 해주셨어요.
용수포구 앞, 도로 한 가운데 우물이 있길래 뭔가 했는데,
1970년대 고영일 작가님의 사진을 보니 해안가에 붙어있던 우물이에요.
이 우물은 '모살물'이라고 불렀다는데요..
제주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한경면은 강수량이 매우 부족해 이 모살물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안도로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우물만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게 된 거지요.
그럼 이제 차귀점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아래 왼쪽 차귀점부 원본의 오른쪽 하단은 당산봉이고, 그 위로 수월봉(차귀점부 속 '고산')이 그려져 있어요.
오른쪽 그림은 홍진숙 화가가 '탐라순력도'를 좇아 '차귀점부'를 지금의 시선에서 그린 그림이에요.
두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와 300년이 훌쩍 지난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저생문'이라 불리는 당산봉 아래 해식동굴
이제 용수포구 앞에 서서 '차귀점부'를 그렸던 김남일 화공의 시선으로 당산봉 쪽을 바라봅니다.
용수포구에서 바라보면 '차귀점부'의 오른쪽 하단이 선명하게 보이는데요..
맨 아래 바다와 인접한 부분에 적힌 글자를 보니 '저생문', '당산망', '당산봉' 순으로 차례로 올라갑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3개의 동굴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사진은 좀 멀긴 하지만 그래도 3개의 동굴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지요?
오래 전부터 있었던 당산봉 아래 해식 동굴이라고 해요.
그런데 탐라순력도를 보니 '저생문(這生門)'이라고 써 있네요.
'저생문'이 뭘까요?
'저생문'은 제주어로 '저싱고낭'이라고도 하는데요, '끝 닿는 곳을 모를 정도로 길고 음산'해서 저승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곳은 가마우지들의 서식처이기도 한데요, 저생문 위 바위들이 하얗게 변한 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가마우지들의 배설물이라네요.
고경대 작가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시네요.
"이곳엔 가마우지가 많아서 과거에는 가마우지를 잡기 위해 캄캄한 밤에 해식동굴인 '저생문' 위 단애에 말뚝을 박고 허리에 밧줄을 묶어 가무우지가 앉는 알에 내려가 잡기도 했다고 해요. 또 밤에는 바닷물 위에 그물을 쳐서 단애 위에서 횃불을 들고 깡통을 치며 새들을 그물 쳐놓은 곳으로 날아가게 해 잡기도 했다고 하고요."
이곳은 만조 때는 늘 물이 차고, 간조 때는 물살이 세서 접근이 어렵다는데요,
그래서인지 해녀들에겐 해산물의 보고였다고 합니다.
이곳에 전해오는 이야기 중 하나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당산봉부터 수월봉, 차귀도 앞의 와도(누운 섬), 그리고 이 저생문까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봤어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와도는 세 마디로 구성돼 있는데, 오른쪽이 얼굴, 배, 그리고 아래 부분이 다리라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누워 있다는 의미에서 누운 섬(와도)이잖아요? 그리고 그 옆 지시리섬(지실=감자)은 장례식에서 상여가 나가기 전 한 여인이 맨 앞에서 너울을 쓰고 슬퍼하는 모습이에요. 그 옆으로 상여섬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에 보이는 차귀도는 문상객들. 한 여인이 누워 있고, 그 옆에 너울을 쓴 여인, 그리고 상여, 문상객까지. 차귀도의 장군석은 지키는 사람이고요. 마지막으로 당산봉 아래에 저승문이 있지요. 바다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장례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용수포구에는 방사탑이 2기 있는데, 모두 차귀도를 향하고 있어요.
아마도 이 곳의 사기(邪氣)를 막으려는 용수리 사람들의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_고경대.
조정에 진상하던 흑우 목장은 원나라 때 동서 두 아막 중 서쪽의 서아막
'차귀점부' 속 다른 곳들도 한 번 들여다 볼까요?
아래 그림 1번으로 표시된 곳은 우자장(宇字場)이라는 곳인데요, 조선시대에 조정에 진상하는 흑우를 기르던 목장이었다고 하네요.. '우자장'이라는 명칭은 '해안가에 있는 목장'이라는 의미인데, 전에는 이 지역의 이름인 '모동'을 붙여 모동장(毛洞場)이라 불렀다고 해요.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신도리의 녹남봉과 영락리의 돈도미오름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들판과 고산리 칠전동까지 넓은 평야를 총칭해 불렀던 목장 명칭이 '모동장'이라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처음 목장이 들어선 건 1276년으로, 원나라가 성산읍 수산리에 말 160필을 방목한 게 그 시작인데요.
원나라는 당시 탐라목장을 관리하는 아막을 두 곳에 설치했다고 해요.
동쪽에 설치한 동아막(1276년)인 성산읍 수산리와 서쪽에 설치한 서아막(1277년)인 한경면 고산리인데요,
이 두 곳이 조선시대에 분화되면서 당시 3곳의 읍성인 제주목에 1~6소장을, 대정현에 7소장과 8소장을, 그리고 정의현에 9소장과 10소장을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외에도 대정현에 모동장', 정의현에 산장, 우도에 마목장, 가파도에 우목장을 설치했는데,
'차귀점부' 속 '모동장'은 원래 말을 키우는 목장이었는데,
나중에 흑우를 키우는 우마장으로 바뀐 것이라고 하네요.
그림 속 2번 '고산(高山)'으로 표기된 부분은 '수월봉', 3번은 '모동진목(毛同眞木)'이라 적혀 있는데, 이건 진목, 즉 참나무가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고 합니다.
4번 '사귀포(蛇鬼浦)'라 적힌 곳은 언제나 오징어 말리는 풍경이 아름다운 자구내 포구 일대랍니다.
그리고 5번 당산악(堂山岳)은 '당산봉', 6번 당산망(堂山望)은 당시 차귀진에 소속된 봉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7번이 저생문(這生門), 8번은 우도연대(牛頭煙臺), 9번의 와포(瓦浦)는 지금의 용수리 포구 일대라고 하네요.
용수포구에서 수월봉 방향으로 차귀도 포구까지는 해안길을 따라 약 3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인데요,
걷다 보면 중간에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촬영지로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한 제주올레 12코스의 '생이기정길'도 있어요.
차귀도 조망이 멋진 자구내포구를 지나면 곧바로 수월봉 지질트레일 코스인 엉알길이 이어지고요.
'차귀점부'를 통해 역사 속으로도 들어가보고, 더불어 '화산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지질트레일 코스인 수월봉까지 한 번에 즐기는 반나절 여행 코스로 딱이겠지요?
▼ 제주특별자치도 블로그 이웃 추가하기 ▼
- #제주
- #제주도
- #제주특별자치도
- #빛나는제주
- #제주여행
- #제주목관아
- #제주수월봉
- #제주용수포구
- #용수포구
- #탐라순력도
- #수월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