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공감 11월 [Vol.152]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경남행복내일센터가 그 길을 함께하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중년들이 삶의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교장선생님에서 조경 전문가로 변신한 권용재 씨와

배움으로 새로운 길을 연 간호조무사 이숙희 씨가 그 주인공이다.

교장선생님에서 조경 전문가로, 권용재 씨

"퇴직 후 저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 학교의 학생이 됐습니다.

이제는 내가 꿈꿔온 '삶의 정원'을 가꾸는 중이지요."

권용재(65) 씨는 교단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배움과 성장의 길 위에 있다.

36년간 교육자로 살아온 그는 은퇴후 전혀 다른 분야인 '조경'에서 인생의 절정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시골로 돌아간 교장선생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왔지요.”

도시의 바쁜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시골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는 그는 자녀들이 타지에서 취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뒤 2013년 주저 없이 귀촌을 결심했다.

마당이 넓고,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집. 정원을 가꾸며 흙을 만지다 보니 조경이 자연스러운 취미가 되었다. 그러다 2021년, 은퇴를 하자마자 본격적으로 조경 공부를 시작했다. 직업전문학교에서 조경시공 양성과정을 하루 6시간씩 6개월간 이론과 실습을 병행했고, 그해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은퇴는 인생의 클라이맥스”

그는 은퇴를 ‘인생의 3막’이라 부른다.

“인생은 5막으로 구성된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나 배우며 성장하는 1막, 사회에서 일하는 2막, 그리고 진짜 절정이 되는 3막은 은퇴 후 새로운 시작 단계이지요. 4막은 사회·경제활동을 정리하는 단계, 5막은 생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기, 바로 그 자유가 인생의 클라이맥스라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나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받은 만큼 나누는 게 은퇴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요?”

취미에서 전문가로 성장, 창업까지

권 씨는 경남행복내일센터를 통해 인생 3막의 무대를 한층 넓혔다. 2022년 2월부터 경남행복내일센터 커뮤니티 단체 중 ‘막오름’ 동아리에서 조경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2023년부터 2024년까지는 신중년 맞춤형 일자리 ‘그린 전문가’로 참여해 매년 20회가 넘는 조경 봉사를 이어갔다.

“센터의 도움으로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도와주신 덕분에 봉사에서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죠.”

그는 꾸준한 공익 활동을 위해 최소한의 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024년 6월부터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했다. 경남행복내일센터의 10회가 넘는 컨설팅을 거쳐 2025년 2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다. “조경을 매개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고생이 보람이 됐습니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은퇴 후 하강 곡선을 그릴지 상승곡선을 그릴지는 자기 선택이에요.”

그는 매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정원을 둘러보는 순간, 여전히 학생이 된 듯한 설렘을 느낀다. “지금까지 배운 지식과 경험은 제 자산입니다. 그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게 제3막의 과제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가르치는 삶이 아니라 배우는 삶입니다. 학교에서 배를 만들고 항해법을 배웠다면, 지금은 제가 만든 배로 넓은 바다를 항해하고 있지요. 그게 바로 제 자유 학교입니다.”

배움으로 다시 선 이숙희 씨

20여 년간 건설 현장에서 ‘설비 아지매’로 불리며 살아온 이숙희(66) 씨.

지금은 거제의 한 한의원에서 ‘간호조무사 숙희 쌤’으로 불린다.

“요즘은 제 이름 앞에 ‘간호조무사’란 명칭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인생 전반은 가족을 위해 뛰었다면, 지금은 정말 저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어느덧 50대 후반, 대학에 가고 싶었다

이숙희 씨의 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멈췄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과자 공장에서 12시간 넘게 일해야 했다. 결혼 후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시어머니를 돌보며 남편과 두 자녀, 다섯 식구의 생계를 남편과 함께 나눠 짊어져야 했다. 남편의 외벌이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3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까지 아파트 건설 공사장에서 설비 일을 했다.

“낮에는 공사장에서 일하고, 저녁엔 가족의 밥을 챙기고 시어머니 병간호까지 했어요. 한마디로 죽기 살기로 살았죠.”

마음 한구석엔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던 이 씨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부끄러웠고,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죽기 전에 꼭 대학은 가보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어느덧 50대 후반, 다니던 설비회사에서 일거리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쉽게 말해 잘린 거죠. 그땐 몇 달 쉬다가 다시 일하려고 했는데, 딸이 ‘이제는 공부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인생의 전환점이 시작됐다. 초등 검정고시부터 도전했다.

다시 찾은 내 이름, 그리고 삶의 2막

이숙희 씨는 58세에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한 뒤, 59세에 대학에 입학했다. 이어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획득하며 ‘늦은 봄’을 맞았다. “간호조무사 학원에 갔을 때 학생들은 모두 20, 30대였어요. ‘다 언니라고 불러!’ 하고 웃으며 어울렸죠. 학원에 걸린 실습복을 보고 ‘저 옷을 꼭 입고 말거야’라는 일념으로 버텼어요.”

지금은 거제의 한 한의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일할 수 있는 기쁨과 배우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고 있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중, 경남행복내일센터의 ‘신중년 인생 이모작 수기 공모전’ 현수막을 보고 용기를 냈다. 처음에는 학력과 과거를 숨기려 했으나 딸의 설득으로 모든 이야기를 담아냈고, 결과는 최우수상이었다. 올해에는 『굳세었다! 숙희야』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아직은 부끄러워요. 동네에 소문난 게 좀 쑥스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예전의 ‘못 배웠다는 콤플렉스’는 어느새 ‘배움으로 일어선 자부심’으로 변했다.

이숙희 씨는 이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강연이 하고 싶어요.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잖아요. 60세 이후의 인생이야말로 진짜 나를 찾은 시간이었어요. 내 인생 2막, 참 멋지지 않은가요?”


▼경남공감을 보고 싶다면

{"title":"인생 2막 기가 막히죠? 경남행복내일센터 통해 새 삶 여는 신중년","source":"https://blog.naver.com/gnfeel/224072789442","blogName":"경상남도 ..","domainIdOrBlogId":"gnfeel","nicknameOrBlogId":"경상남도","logNo":224072789442,"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