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전주의 알프레도' 필름과 영사기가 좋은 기사님과 전주 영화 이야기
전주 영화의 거리를 와보신 적이 있나요? 전주는 대한민국 대표 영화축제인 '전주국제영화제'와 '영화의 거리'가 있을 정도로 영화와 문화에 특화된 도시인데요. 인구대비 영화관도 가장 많다고 하니 시민들이 얼마나 영화에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화가 되어버린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영화관마다 영사기를 돌려주시는 기사님이 계셔야만 영화 상영이 가능했는데요. 지금까지도 필름과 영사기를 아끼며 전주시민들에게 한결같이 영화를 선사해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하여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전주의 알프레도를
만나러 가보자!
영화 '시네마 천국'는 꼬마 토토와 낡은 마을 극장의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의 애틋한 우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할아버지 직업은 바로 영사기 기사입니다. 필름을 영사기에 연결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제는 디지털화되면서 사라진 그 직업. 그런데 전주에 대한민국 최고령의 영사기사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오늘은 전주의 알프레도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전주 시네마타운」 영사기사인 정정부님(만 81세)입니다.
먼저 호남 유일의 향토영화관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전주 시네마타운 영화관 1층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느 대기업의 영화관처럼 내부는 영화와 관련 포스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1층에서 영사기사 정정부님을 만나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전주시네마타운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3길 67 (고사동)
한국 나이로 83세(1941년생)인 그는 여전히 현역이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는데요.
대한민국 최고령의 영사기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게 꼿꼿한 허리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그와 함께 전주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 보시죠.
Q1. 향토 영화관이 제법 여러 군데 있었다는데 현재는 이곳이 유일한 곳인가요?
A1. 네, 1960년대부터 전주에 극장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CGV나 롯데시네마 등 대형 영화관이 즐비한데 여긴 20여 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Q2. 영사기사라는 직업이 낯선데요,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2. 1955년도에 처음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서울에서 만경까지 한국전쟁을 피해 피난 왔고 어머니 고향인 이곳에 정착 했죠. 당시 전주에 백도 극장이 있었는데 거기를 친척이 운영했고 수양아들이 되어서 일을 배웠어요.
그리고 1960년에 영사기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서울 한양 녹음실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죠.
Q3. 1960년대면 까마득한 옛날 같은 느낌인데요. 당시 녹음실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3. 지금이야 동시녹음이 대세지만 당시는 아날로그 녹음 시절이었죠. 음악영화부터 배웠어요.
당시 영화는 배우가 액션만 찍고 성우가 더빙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녹음실이 아주 활황이었습니다. 영화 필름에 음향 효과를 넣는데 그 기술이 쉽지 않았죠.
Q4. 어떤 식으로 녹음 하셨어요?
A4. 예를 들어 문 여는 소리나 발소리를 넣어야 하면 일일이 필름에 맞춰서 입히는 작업을 했죠. 그때 참 재밌었고, 감독, 배우, 성우와 아주 친했어요.
임권택 감독, 김지미 배우, 신성일 배우 등 자주 만나고 작업을 했죠. 그리고 성우랑 더 친했어요.
Q5. 충무로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더 있나요?
A5. 당시는 16밀리 필름이나 35밀리 필름으로 찍었어요. 그 롤이 비싸니까 아껴가며 찍던 시절이었죠. 소리 없는 필름에 소리를 입히는 작업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했어요.
영상과 소리가 입혀진 필름을 마지막에 현상하고 영사기에 돌리면 영화가 돼요. 2012년까지 필름 작업을 했고, 영사실에서 혼자 근무했어요.
Q6. 그럼, 서울에 계시다가 전주에는 언제 오셨나요?
A6. 1985년도 여름쯤 전주에 있는 영화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금은 오거리 공영주차장이 예전엔 극장 자리였거든요. 프리머스 극장 개관 때 내려와서 여기에 정착을 한 거죠.
2007년에 여기 전주 시네마타운으로 이직해서 지금껏 일하고 있습니다.
Q7 그때만 해도 영사기를 돌리던 시절이었죠?
A7 맞아요, 전주가 의외로 영화의 디지털화가 타 도시에 비해 늦었어요. 거의 2000년도부터 시작이 되었으니까요. 예전 필름을 돌리는 기사가 지금은 없죠. 이렇게 디지털이 돼서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야속하고 섭섭한 마음도 있답니다.
대표적인 국제영화제
개최 도시, 전주!
Q8. 그럼, 전주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전주는 벌써 24회를 맞는 국제영화제 개최 도시인데요, 전주 국제 영화의 산증인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A8. 네, 처음에 국제영화제를 개최할 때는 극장이 분산되어 있었어요. 지금은 영화의 거리에 집중해 있는데 당시는 그러지 않았어요. CGV, 메가박스 영화관이 생기면서 영화의 거리가 활성화되고 본격적으로 조성이 된 겁니다.
지금 전주 시네마타운 옆에 영화의 거리 본부를 지을 예정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착한 가격으로
호남 유일 향토 극장을 자랑하는
전주 시네마타운!
Q9. 전주는 전통과 문화의 고장답게 영화관이 참 많은데요, 이렇게 영화관이 많은 이유가 뭘까요?
A9. 맞아요. 인구수 대비 상영관이 많습니다. 전국적으로 영화를 많이 보는 고장인데 대기업 영화관이 들어오면서 더 규모가 커진 거죠. 전주에 CGV 영화관이 4개 있고, 상영관이 8개씩 있으니 총 32개 관이고, 롯데시네마 14개 관, 메가박스 18개 관 등 80개 관이 넘어요.
전주는 교육도시이기도 하고 생활 여건이 좋은 도시라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문화를 즐기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전주 참 좋아요.
Q10. 마지막으로 전주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10. 여기 전주 시네마타운은 호남 유일 향토 극장이에요. 대기업 영화관의 절반 가격(8,000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주차장도 잘 되어 있고요. 예전처럼 여기 영화관에 사람이 북적북적하면 좋겠습니다. 아쉬워요.
토토,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일을 하렴.
네가 어렸을 때 영사실을
사랑했듯이.
시네마천국 대사 중
대한민국 최고령의 현역 영사기사님과의 만남은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영사기 너머 그 어딘가의 삶을 상영하고 구식 영사기가 멈추어도 계속되는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비록 영사기는 역사 속의 물건이 되었지만, 영사기와 함께 하는 모습 또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요?
반백 년 동안 영화와 함께한 그의 인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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