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목의 정청 금성관에서 남내교를 건너면

🏠 고택의 흙담 위로 휘늘어진 능소화의 황홀함에 발길을 멈춥니다.

🪷능소화는 임금님을 애타게 기다리던 중국의 후궁 소화가 상사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담장 아래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담장 아래 묻었는데,

그 이듬해 억척스레 담장을 기어올라 송이 송이 피어 능히 혼자서 임금님을 만난 꽃,

사람들은 능소화라고 불렀습니다.

🎺 나팔 모양으로 뚜~뚜

온종일 임금님께 세상 얘기 전하는 불타는 정열의 주홍빛 여름꽃,

고고하고 품위 있는 양반의 기품이 그대로 뿜어 나옵니다.

🌂변화무쌍한 여름 날씨 갑자기 후두둑 비가 쏟아집니다.

💧한줄기 소나기라고 잠깐 비를 피하고 가라며 서슴없이 문을 열어주는 주인에게서

남파고택의 후한 인심이 내비칩니다.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길13의 국가민속문화재 263호

남파고택의 표지판이 선명한 대문, 여태도 하마석이 또렷합니다.

🪨 댓돌 위 가지런히 놓인 하얀 고무신, 초당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정겹습니다.

박경종 9대손 종부께서 남파고택을 소개해 주십니다.

남파고택은 관아 형태를 모방하여 지어진 건물 7동과 16필지를 갖춘

전남 최대 규모의 대표적 반가 가옥으로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153호로 지정된

나주 박경종 가옥입니다.

이곳은 자손들이 계속 거주하여 동학농민전쟁에서도,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하나의 피해 없이 생활해 오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근대 주거 및 생활사의 귀중한 자료가 소롯이 남았습니다.

1884년 남파 박재규가 앞뜰의 초당채를 짓고 뒷채의 초당은

광서 10년 9월 1894년 (고종 21년)에 지었습니다.

박경종의 6대조가 지은 것으로 지금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민속학뿐만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점점 살림이 늘어나자 1910년에 안채와 아랫채를 지었습니다.

1930년대 문간채와 바깥사랑채를 지어

남파고택은 근대 한옥사의 변천 과정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남파고택은 안채의 기와와 초가지붕이 어울려

고택의 멋스러움과 고고함이 더 해집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도구나 가구 공예품도 잘 보존되어

앞마당 장독대도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이사이 돌담을 넣어

대가족이면서 사생활이 보호되는 배려는 집안의 내력과 함께

당시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덮개까지 완벽한 우물은 지금도 맑은 물이 샘솟아 식수로 사용합니다.

🌿 흙 돌담 위로 주홍빛 능소화가 휘늘어진 남파고택의 여름,

빗소리 들으며 도란도란 여름 소나기가 준 뜻밖의 행운으로

종부에게서 직접 듣는 남파고택 이야기.

능소화도 나팔귀 한껏 세워 함께 듣는

옛 나주읍성 남파고택 여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 오시는 길 📍

{"title":"[전남 서포터즈] 소나기를 피해 들른 국가민속문화재 263호 나주 남파고택","source":"https://blog.naver.com/greenjeonnam/223941152272","blogName":"전라남도 ..","domainIdOrBlogId":"greenjeonnam","nicknameOrBlogId":"전라남도청","logNo":223941152272,"smartEditorVersion":4,"meDisplay":true,"lineDisplay":true,"outsideDisplay":fals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