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고성 가볼 만한 곳②-

고성 영오 사거리 독립지사 강영순 사적비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 6월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 뜻을 가슴에 새기는 의미가 더욱더 깊은 달이기도 합니다.

고성에는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뇌기 좋은 곳이 한둘이 아니지만 군민들이 언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산공원 내 충혼탑과 호국참전유공자비도 있지만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게 보이는 곳이 영오면 사거리에 있는 독립지사 강영순 선생 사적비가 그러합니다.

진주 문산읍을 지나 금곡면을 건너면 고성 영오면(永吾面)입니다.

고성의 최북단에 있는 영오면은 고성 개천면과 마암면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가는 길은 금계국들이 노란빛으로, 황금빛으로 인사를 건네줍니다.

면 소재지에 이르면 사거리가 있습니다.

야트막한 언덕에 아름드리나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는 곳이 있습니다.

곁에는 <낙안마을>이라는 큼직한 빗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산들의 형상이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양과 같고 더구나 산 끝자락에 형성된 마을은 마치 기러기가 모래밭에 보기 좋게 내려앉은 형상이라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는 고사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언덕 위로 올라 아름드리나무의 시원한 풍경을 담습니다.

언덕 아래에 영오시장이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열립니다.

나무의 넉넉한 배웅을 받고 돌아서면 바로 곁에 비가 서 있습니다.

입구에 독립지사 남계 강영순 선생 사적비입니다.

달걀부침같이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사이를 지나 사적비에 올라 선생의 삶을 잠시 돌아봅니다.

영오면 영산리 출신인 독립지사 강영순 선생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이병홍에게 ‘독립선언서’를 받아 독립선언서를 인쇄해 지역에 배포했습니다.

인근 진주 지역 동지들과 함께 3월 18일 진주 장날을 이용해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이기 위해 5천 명의 정촌면 군중과 함께 진주 읍내로 행진했습니다.

행진 도중, 일본 군경과 충돌해 격투가 벌어졌을 때 한 손에 대형 태극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일본 헌병의 칼을 빼앗아 남강에 던지고 선두에서 군중을 지휘했습니다. 일본 헌병이 던진 포승줄에 목이 감겨 진주경찰서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재판정으로 호송되는 도중에 포승줄을 절단하고 일본 경찰 2명을 발로 차 쓰러트린 뒤 피신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수년간 유랑생활을 하며 피신했다가 1923년 종로 경찰서에 체포되었고 수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서 1939년 3월 18일에 고문과 후유증으로 1939년 3월 18일 순국했습니다. 정부는 고인께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오가는 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보면 우리 애국선열들의 흔적을 만납니다.

‘그들이 지켜낸 어제 우리가 피워낼 내일’이라는 표어가 구호에 그치지 않을 다짐으로 오늘 우리에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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