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전
[제6기 봉화군 서포터즈] 독립운동과 청렴의 정신을 담은 곳, '벽초정사와 정문흠' | 류중천 님
벽초정사와 독립운동가이자
청렴한 정치인 정문흠을 소개합니다.
벽초정사 정자는 벽초 정문흠선생이 1958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자신의 호를 사용한 벽초정사를 건립 하였습니다.
단아하고 우아한 풍모를 지닌 벽초정사는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영월 방향으로 800m 지점 우측 도로변에
예사롭지 않은 고택이 눈에 들어옵니다.
벽초정사는 서쪽 옥돌봉을 바라보고 지어졌고, 정자 앞은 도로 옆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풍경에
빛바랜 기와지붕의 용머리가 붓끝으로 그린 듯이 흙 돌담 너머로 한옥의 정취가 정겹게 다가 옵니다.
보리수 열매가 담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오래된 고목은 생을 마감한 체 세월을 말해 주듯 합니다.
벽초정사 마당에 연못이 있었으나 도로확장공사로 매몰되고 현재는 정자만 남아있습니다.
벽초정사를 건립한 정문흠은 이곳 서벽 농가에서 1892년 태어나 1908년 의병 활동을 시작했고,
1919년 중국으로 망명 만주 동흥 중학교들 졸업하고, 만주 용정에서 독립군에 가담 시베리아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연락원으로도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입니다.
8.15 광복 이후 고향 봉화에 돌아와 1950년부터 3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임시국회의장과 자유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습니다.
그리고 6.25로 중단되었던 영주역 봉화역 구간에서
태백시 철암역 구간을 연결하는 철도공사가 90% 이상 진전된 상황이었는데
춘양면 소재지를 지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 의양리에 춘양역을 설치하였고,
직선으로 가야 하는 철길이 법전역에서 춘양으로 억지로 꺾였다가 다시 녹동역으로 이어집니다.
법전역과 녹동역이 직선인데, 춘양면을 거치는 바람에 철길은 돌아 “Ω” 자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문흠이 억지를 부려 춘양역이 생겼다는 일화로 억지춘양의 유래로 알려져 오고 있습니다.
4·19혁명 때 젊은 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의 원내총무이니 부정부패를 많이 하였을 거라 믿고
봉화 춘양면 서벽리 마을에 도착하여 가옥에 불 지르려고 하였으나,
큰아들 홍락이 초가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청빈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정문흠의 호 ”벽초“는 고향 서벽리 벽자와 나무를 해서 불을 지피며
청빈하게 살겠다는 서벽의 나무꾼이라는 말로 해석이 됩니다.
서벽리의 북쪽은 구룡산(1,345m) 태백산(1,566m), 동쪽은 시루봉(1,094m),
서쪽은 옥돌봉(1,244m), 남쪽은 문수산(1,207)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서쪽 옥돌봉에서 아침 햇살에 옥돌이 반사되어 찬란한 빛을 비춘다고 하여 서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벽초 정문흠은 3선 국회의원에 원내총무를 지냈지만
혼탁한 정치 상황에서도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고 청렴하게 산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정문흠은 창평저수지와 금봉저수지를 축조를 국책사업에 반영 창평, 동양, 유곡등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봉화 고향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신 분입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고, 청빈한 정치인으로 살다가 봉화 춘양면 서벽리에서 벽초정사를 짓고
만년을 살다가 197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벽초정사 :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687-5
*제6기 봉화군 서포터즈
류중천 님의 글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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