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한글날 더욱 빛나는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중구 SNS 주민홍보단 김종대>
님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고서 남의 집 나무칼을 빌어 닦아 쓰는
어리석음을 이 이상 계속할 수는 없잖은가
한글은 곧 우리 민족의 혼
조선어는 곧 조선민족의 혼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일제강점기 총과 칼로 일제에 맞선
항일 무장 투쟁이 있는 반면에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언어 독립 운동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언어 정책으로
조선어 교과는 폐지되고
모든 교과서는 일본어로 편찬되며
일본어로 이름을 바꾸는
창씨개명이 이루어지는데
조선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동화정책으로
조선인의 일본어 사용이었습니다.
장충단공원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초입부 좌측으로 보면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
가 세워져 있습니다.
최현배 선생은 일제 강점기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 강습원에 다니면서 한글을 배운 뒤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에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조선어학회를 창립하고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500년간
정리되지 않은 표기법을 통일하기 위해
먼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고(1933년) 이후
조선어학회 외래어 표기법도
제정했습니다(1940년)
조선어학회의 핵심 활동은
우리 말과 한글의 통일이며
우리 민족이 쓰고 있는 어휘 말 사투리를 모아
조선어 사전을 편찬했으며 일제의 한국어 사용 금지 등
민족말살정책에 저항하여
사전 편찬 및 한글 보급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최현배와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사전을 만들다가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한 일제에 의해
함께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는데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지지하는 민족운동’
이라며 광복이 될 때까지
3년간 옥살이를 하다 풀려납니다.
일제강점기 외솔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갈고닦지 않았다면
광복이 된 뒤에 우리 말과 글로 교육을 하고
공문서를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우리 말과 글을
거의 완벽하게 회복했는데 목숨을 걸고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낸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현배 선생은 50년대 초 많은 논란 속에서도
교과서의 한글 가로쓰기 체제 확립과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는 모두 한글로 작성하고 필요한 경우 한자를
괄호 안에 넣도록 해 오늘날 한글이 온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한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신 분입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집필한 한국 교육 운동 책자 및 교재 (출처 : 독립기념관)
외솔에게는 ‘한글이 목숨’이었습니다.
중구에서는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비가 있는
도보관광 투어코스를 운영합니다.
장충단공원을 걸으면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장충단 호국의 길 장충단 호국의 길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리플렛 다운받기 코스안내 탐방 코스 장충단비→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열사비→유관순 열사 동상→3.1 독립운동 기념탑→김용환 지사 동상→국립극장 운영 시간 월, 수, 토 / 오전 10시, 오후 2시 ※ 혹서기(7~8월), 동절기(12~2월) 휴무 ※ 해설소요시간 : 6km, 약 2.5시간 예약 신청 인터넷 또는 전화신청 ※ 5일 전 참여 대상 시민 누구나 (무료) 문의 전화 중구청 체육관광과 02)3396-4644 신청 인원 4인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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