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일 전
[강릉플러스 8월] 광복 80주년 특집-최진영 광복회 강릉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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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플러스 – 광복 80주년 특집 최진영 광복회 강릉시지회장 순국선열의 희생 값지게 되살려야죠 |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핍박에서 벗어난 지 8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최진영 광복회 강릉시지회장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지역에서 펼쳐진 항일 운동의 역사와 그 선봉에 섰던 선열들의 뜨거운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글 최현숙(작가) | 사진 전용태(드래곤레이브)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8월이 되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떠오른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한층 더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강릉 플러스〉는 최진영(73) 광복회 강릉시지회장을 만나 조국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분들을 돌아보고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의 길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아울러 강릉 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와 광복회 정신을 이어가는 현재 활동 내용에 대해서도 들었다. 최진영 회장의 외할아버지 박장실은 ‘초당의숙’에서 신학문을 익혔고 농민 만세운동 주모자로 체포되어 원산재판소에서 태형 90대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초당의숙 몽양 여운형이 1910년 강릉에 설립한 민족교육 기관
광복회는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광복회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하신 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미래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아 국민 화합과 민족 대통합을 이루고자 합니다. 춘천·원주·영동 연합으로 활동하던 광복회 강원도지회에서 강릉시는 2021년 단독지회로 출범했습니다. 시 단위로 독립운동가가 20명 이상이면 단독으로 출범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이죠. 그것은 강릉의 의병 활동 및 항일·독립운동가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입니다.
강릉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와 유적지에 대해 알려주세요.
강릉은 대한제국 말에 잔혹했던 일제의 침략에 맞서 의병 활동의 중심 무대였습니다. 1895년 을미의병 항쟁 때는 강릉 유림의 지도자인 권인규를 중심으로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저항해 외세를 배척하자며 의병 활동이 있었습니다. 또, 동해안 일대에서 활발한 의병 투쟁을 전개해 함흥까지 점령했다가 핵심 인물 19명은 잡혀 처형되는 참변을 당했죠. 고종의 강제 퇴위 및 군대 해산에 저항한 1907년 정미의병 투쟁 때도 일본군과 교전하며 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개화기에는 친일 군수와 친일 부자를 탄핵하는 소를 올려 추방 지시를 내리기도 했지요. 고종의 승하가 일제에 의한 독살설로 유포되자 최돈옥, 조병칠 등 많은 유림 인사가 상경해 파고다 공원의 독립 선언식과 인산(因山, 조선 시대 태상왕과 그 비, 왕과 왕비, 왕세자와 그 빈, 왕세손과 그 빈의 장례)에 참여한 후 돌아와 강릉 3·1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대표적인 유적지는 안인진 통일공원 내 항일기념 공원, 3·1독립만세운동이 열렸던 성내동 광장, 경포호수 옆에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이 있습니다.
강릉의 3·1독립만세운동의 전개 과정과 핵심 인물에 대한 일제의 대응도 궁금해요.
강릉의 3·1독립만세운동은 ‘초당의숙’이 폐교된 이후 여운형이 떠나자, 이 학교 출신 학생들이 중심이 된 ‘창동회’와, 유교의 진흥을 위해 조직한 유도진흥동지회 회원, 강릉중앙감리교회 안경록 목사와 교회 신도들의 치밀한 계획으로 이루어졌습니다.일제 기록에 의하면 강릉의 만세 시위에 8,0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강릉 최초의 학생 만세 시위는 강릉 공립 보통학교가 주동이 되어 강릉 장날인 4월 2일 하려고 했으나 동료 학생의 밀고로 4월 1일 체포당해 무산되고, 주모자급 학생들은 잡혀가 모진 고문 끝에 태형 90대를 선고받았죠.4월 2일 장날에는 유도진흥회원과 안경록 목사가 교회 지하실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장꾼들에게 나누어 주며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고 주모자 최선재, 조대현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어요.4월 4일 농민 독립 만세운동은 ‘창동회’ 최이집과 최진규가 주도했습니다. 매년 그때면 초당·송정·포남·운곡·옥천동 5개 마을 농민이 강릉의료원 앞 수문과 연결되는 물길을 정비하기 위해 모였는데, 작업을 마치고 강릉극장 앞에서 함께 만세를 불렀죠. 농민들은 가래와 삽, 괭이를 휘두르며 만세를 불렀고 주모자들은 체포돼 징역을 선고받거나 태형 90대를 맞았죠. 안목·강문 해상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도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습니다.
강릉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어떤 분들이며 어떤 삶을 사셨나요?
많은 분이 계시지만, 2004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된 권인규 의사 집안은 3대가 처절한 항일투쟁을 한 드문 사례입니다. 강릉 유림의 지도자로서 의병 투쟁의 당위성을 주장한 분입니다. 일제는 권인규 의사의 아들 권종해 선생 집을 급습해 불태우고 노모를 살해하고, 둘째 아들은 총검으로 무참히 찌르는 만행으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었죠. 권종해 선생의 아들 권기수는 영월·평창·정선 지방 만세운동 주동자로 체포되어 4년 징역에 3년 옥고를 치르고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수형 생활 중에 걸린 여러질병으로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대동청년단 조직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김삼은 5년간 함흥교도소에서 복역했으나 교도소 내에서 꼿꼿한 행동으로 간디라는 별칭을 얻었고, 해방 후 김구 선생을 도와 정계에 투신 하셨죠.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후손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후손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후손 교육에 어려움이 컸습니다. 빈곤의 악순환에 놓였던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독립운동했다는 것을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죠. 해방 후 친일 경찰이 처벌받지 않고 채용되어 독립운동가 집안을 더 악랄하게 괴롭혔거든요. 6·25전쟁 후에는 빨갱이로 몰려 더 핍박받으니 독립운동한 조상을 감추려 했단 말입니다. 현재 강릉에 정회원 30명, 유족 53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연금은 선 순위자 한 명에게만 지급되고 있어 처우 개선이 필요합니다.
광복회 강릉시지회 출범이 올해로 3년째입니다.
회장 취임 후 보람된 일이나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독립운동의 역사를 후손에게 알려주고 회원들의 복지를 위해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보람이죠. 출간한 지 20여 년이 지나 한 권만 남아있던 〈강릉지방 3·1독립만세운동사〉와 〈강릉지방 항일독립운동사〉를 다시 제본해 유족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올해 성내동 택시부 광장에 ‘3·1독립만세운동 기념 터’ 표지석을 세웠습니다.어려움이라면, 독립운동 선양사업에 관해 알아주지 않으니, 자긍심에 상처를 입는 겁니다. 정부가 독립 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예우 수준을 해마다 높이고 있지만, 독립 유공 보훈대상자는 소득이 없거나,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어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씁쓸합니다.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을 하고도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못다 한 이야기와 계획도 들려주세요.
앞으로 3·1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는 일과 선배님들의 항일운동과 3·1독립만세운동에 관한 사례를 더 발굴하고 재조명해 우리 고장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강릉 3·1독립만세운동 역사
1919년 4월 2일
성내동 장터 독립 만세운동
청년 유교 조직인 유도진흥동지회원과 중앙감리교 청년들이 성내동 장터에 모인 군중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 주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제 경찰이 총검으로 제지하자 군중들은 "적아! 오늘부터 조선에서 물러가라! 우리는 자유민임을 세계만방에 표현하노라!"라고 소리높이 외치며 대항했다.
1919년 4월 4일
남대천 농민 독립 만세운동
신문화 보급과 항일 교육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조직된 ‘창동회’는 송정, 초당, 포남, 옥천동 등 마을 농민들이 하평 들에 물을 대기 위해 하평 보를 정비하는 날에 맞추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창동회’는 만세를 부르는 선창부는물론 일제의 진압에 만세운동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산방지부까지 편성하는 등 조직적으로 만세운동을 펼쳤다.
1919년 4월 7일
청년회원 독립 만세운동
독립 만세운동이 지속되자 일제는 장날 시장을 폐쇄하고 군중들이 시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나, 강릉 청년회원들은 장날 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보관하던 중 일제 경찰의 습격을 받아 태극기는 몰수당하고 회원들은 체포되었다. 그럼에도 남은 회원들은 태극기를 급하게 다시 만들어 장날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구속된 인사를 석방하라!, 일제는 당장 조선에서 물러가라!"라고 외쳤고, 장을 보러 왔던 군중 또한 이에 호응하며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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