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선비의 길’에서 만나는 숨은 보물, ‘낙덕정(樂德亭)’
‘선비의 길’에서 만나는 숨은 보물,
‘낙덕정(樂德亭)’
순창군 쌍치면과 복흥면에는 동방 18현 중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조선 중기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역사적 장소가 산재해 있습니다. 이 중 2014년 새해 서설이 내리는 아침을 기다려, 순창 ‘선비의 길’에서 만나는 숨은 보물 ‘낙덕정(樂德亭)’을 찾아보았습니다.
낙덕정은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에 있는 누각으로, 1984년 4월 1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72호로 지정된 건축물입니다. 누각은 순창읍에서 복흥면 소재지로 가다 보면, 오른쪽 상송교 건너편 소나무들이 우거진 나지막한 봉우리에 위치해 있는데요. 낙덕정은 하서 선생의 후손인 김노수(1878~1956)가 1900년에 건립하였으며, 현재는 울산 김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 울산 김씨의 대표적 인물인 하서 김인후 선생은 1545년 을사사화가 발생하자 관직을 사임하고 처의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와 강학당인 훈몽재를 짓고 제자를 양성한 대유학자입니다. 동방 18현 중 하나로 문묘에 배향할 것을 결정한 정조는 그를 가리켜 “호남의 공자가 나타났다”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동방 18현이란 설총, 최치원, 정몽주,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송시열 등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통틀어 나라의 최고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묘에 모셔진 18명의 우리나라 유학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가문이나 벼슬 보다는,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고 학자로서 후세에 존경을 받고 학문적 업적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높아야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옛말에 “정승 3명이 죽은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3명이 문묘배향 현인 1명에 미치지 못한다(三政丞이 不如一大提學이요, 三大提學이 不如一文廟配享(賢人)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향교에 방문하시면 들을 수 있습니다. 유학자로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여느 공신보다 높은 명예를 누리며 만인의 칭송을 받는 존귀한 위치에 있다고 하니 하서 선생의 선비정신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는 추령천의 맑은 물과 빼어난 경관을 가진 이 곳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상류에 있는 낙덕암이란 바위 이름도 선생이 붙인 이름이라 합니다.
낙덕정은 후일 이곳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김인후 선생의 예언에 따라 그의 선비정신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요. 그의 예언대로 현대사의 큰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이 어린시절 공부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하서 선생의 15대손이랍니다.
낙덕정은 이 곳으로부터 훈몽재에 이르는 약 6km의 ‘선비의 길’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한데요. 하서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거닐었을 선비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과거 선비가 가졌을 덕목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시작점인 낙덕저수지까지 올라가봤는데요. 소복이 내린 눈 길을 천천히 걷노라니, 흐르는 강물소리, 겨울 바람 소리, 눈덮인 설산의 풍광이 함께 어우려져 동양 산수화 속으로 풍덩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습니다. 눈 내린 선비의 길 산책은 바쁜 일상을 뒤로한 무념무상, 힐링 그 자체였답니다.
낙덕정으로 오르는 길은 총 54개의 돌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주변에는 노송들이 둘러싸고 있는데요. 누각 건립 당시 심어졌던 소나무들은 일제 강점기 말 일본의 수탈로 모두 베어져 없어지고, 광복후 다시 심었다고 하니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낙덕정으로 오르던 중 뜻하지 않게 멀리서 방문한 10여명의 탐방객들을 만났습니다. 순창의 선비정신이 깃든 선비길을 답사하고 있던 분들이었는데요. 뜻밖의 장소에서 순창의 문화 유적지를 찾는 분들이 있음에 반가워 인사를 나눴습니다.
계단을 다 오르면 팔각모양의 지붕을 가진 팔모단층 건물이 보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근대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로는 드물다고 하는데요. 누각의 기둥들은 약 80cm의 긴 화강암 주춧돌위에 둘레를 둥그렇게 깎아 만들어 올린 ‘두리기둥’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누각의 전체적인 외양은 화려한 단청 대신 자연의 색에서 풍기는 단아함이 고고한 선비정신을 연상시키는 높은 품격을 보여줍니다.
한옥의 처마는 유려한 곡선으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적으로 햇볕의 양을 조절하여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게 하는 과학적 건축기술이 적용되는데요. 낙덕정은 처마 끝을 위로 올려 모양이 나게 하는 ‘며느리서까래(婦椽)’ 를 달아 처마를 깊고 길게 뺐으며, 8개의 기둥마다 추녀에 ‘팔괘(八卦)’를 새겨 일반 정자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팔괘는 우주만물의 변화원리와 질서, 자연과 인간계의 모든 현상을 상징하는 동양사상의 기호체계인데요. 낙덕정의 추녀에 팔괘를 새긴 이유는 아마도 구한말 개항기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지키고 싶은 염원을 담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누각의 앞쪽 긴 창살문은 좌우 두 짝이 한 쌍으로, 필요시 반으로 접어 처마의 걸쇠에 걸어 올려 매달 수 있게 하는 ‘분합문(分閤門)’ 구조로 되어 있는데요. 더운 여름에는 분합문을 활짝 열어 시원함을 제공하고 겨울엔 걸어잠가 메서운 외풍을 차단하는 실용성을 갖고 있습니다.
누각 정면에 걸려 있는 ‘낙덕정’이라고 쓰여진 편액은 하서 선생의 12대 후손인 김원중의 글씨로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필체가 멋스러웠습니다. 누각 내부에는 상량문이 걸려 있고, 한 칸의 작은 방과 그 옆으로 마루가 에워싸듯 배치되어 있습니다.
건물 뒤편에 작은 비밀의 문이 있어 열어보니 아궁이였습니다. 누각에 아궁이를 설치하여 추운 겨울에도 불편하지 않도록 온돌방까지 설치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다음 일정인 훈몽재로 떠나는 탐방객들을 배웅한 후, 내친 김에 약 1km 떨어진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터를 방문했는데요.
독립운동가이자 법조인으로도 유명한 가인 선생은 광주학생운동, 6·10 만세운동, 원산파업사건 등 관련자들의 무료변론을 맡았으며, 1927년 신간회(좌우익세력이 합작하여 결성된 대표적 항일단체) 중앙집행위원장, 1948년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한 순창이 낳은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생가터에 도착해보니 의외로 작은 초가집과 사랑채, 곳간으로 보이는 부속건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절을 겪으면서도, 민족과 독립을 위해 의연한 삶을 보여주신 가인 선생의 발자취를 살펴보니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본채는 남부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일자형 건물로 방과 부엌, 그리고 토방과 마루가 있어, 어릴 적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뛰어 놀았던 추억이 생각나게 만듭니다. 안채 옆엔 작은 장독대도 있어, 금방이라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장독에서 시원한 동치미를 떠오실 듯 그리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생가터는 1950년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2014년 5월 순창군이 후손들의 고증으로 복원하였다고 하네요. 출입구를 나오면 가인 선생의 청렴한 삶을 기리는 커다란 조각품이 생가터를 떠나는 길손의 눈길을 다시 한번 붙잡게 합니다.
순창 낙덕정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49-1
순창 훈몽재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산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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