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을 키운다는 것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다른 동네에는 이미 꽃이 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집 앞산에는 이제야 막 꽃망울이 몽글하니 살찌는 중이다. 성급한 몇몇은 이미 꽃을 활짝 피웠지만, 봄을 상징하는 벚꽃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법흥계곡을 따라 법흥사로 올라가는 길목의 가로수는 벚나무다. 오래되어 우람한 벚나무들. 봄철 꽃구경하기 좋은 명소가 바로 집 앞에 있다. 무엇보다 우리 동네 벚나무가 좋은 점은 다른 지역에서 이미 다 피고 진 이후에야 꽃이 핀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5월 중순이 지나서야 만개했다. 서울에서도 이미 벚꽃이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한 달은 늦게 꽃바람이 부는 셈이다. 오늘은 나무 심기에 제격인 날, 봄날의 식목일을 맞이해서 쇼핑을 했다. 나만의 작은 숲을 꿈꾸면서 말이다.

식목일을 기념하며 영월군에서 작은 묘목을 나눠주는 행사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묘목보다 조금 더 큰 나무를 원해서 집에서 인터넷 쇼핑을 했다. 좋은 세상이다. 방 안에 앉아서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크기별, 가격별로 검색해서 주문할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작은 식물들은 택배로 배달이 오고 큰 식물들은 화물로 오거나 직접 가져와야 하지만, 당장 결제를 하지 않아도 우선 아이쇼핑을 하며 꽃과 나무와 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마음에 둔 나무는 팽나무와 수양버들이다. 팽나무는 오래 살고 거목으로 성장하며 그 형태도 신비로워서 예부터 마을 수호목으로 많이 지정됐다고 한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와서 일명 ‘우영우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도 팽나무다. 나는 좀 올드한 분위기가 있어서 수호목이라거나 성황당, 장승, 솟대 이런 걸 좋아하는데, 우리 집 수호목으로 팽나무를 하나 떡 하니 세워두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열심히 찾아봤다. 수양버들은 버드나무 중에서도 줄기와 잎이 아래로 차라락- 내려앉는 수양버들은 그 자태가 정말이지 너무나 멋지다. 다른 나무들에 비해 물을 엄청 좋아해서 꼭 물가에서만 자란다고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마당 옆으로 작은 계곡이 흐르고 있으니 거기에 딱 세워두면 멋진 풍경이 될 것 같아서 갖고 싶어졌다. 물론 나무를 사서 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나무를 잘 키워내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작년에 나는 몇 그루의 나무를 사 와서 마당과 정원에 심었다. 사랑과 관심과 애정을 듬뿍 담아서 좋은 자리에 잘 식재했다. 하지만 역시 자연은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라서 어떤 나무는 그대로 말라죽고 다른 나무는 물컹하니 썩어서 죽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죽은 나무들 바로 옆에 식재한 다른 나무는 멀쩡하고 튼튼하게 자라나서 한 뼘 정도 키가 크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어른들께 여쭤봐도 ‘땅이 맞지 않았나 보다’라고 하실 뿐, 어째서 그 싱그럽던 나무가 고사했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크게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덕분에 나무를 키운다는 건 조금 다른 마음가짐과 다짐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 식물은 동물과 달라서 키우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멀쩡해 보여도 어딘가 병들었을 수 있고, 죽은 것 같아 보여도 뿌리는 세차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그걸 알아채기까지 최소 한 계절이 필요하다. 나보다 오래 살 나의 반려 식물들. 모쪼록 이번에 이주해 오는 새 식구는 오래오래, 나보다 오래 이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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