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천안시, 4년 만에 시민과 함께하는 '아우내봉화제' 개최
안녕하세요. 천안시입니다.
1919년, 아우내에서 울려퍼졌던
3.1 독립만세의 함성.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은
3.1운동 당시
호서지방 최대 규모였는데요,
천안시에서는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을 기념하고
그 함성을 재연해
유관순 열사와 순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 · 발전시키고자
매년 2월 28일 '아우내봉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그동안 축소 진행돼왔는데요.
드디어 4년만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면행사로 개최됩니다!
3.1운동 104주년 기념
2023 아우내봉화제
천안청년회의소가 주최 · 주관하고
천안시가 후원하는
'3.1운동 제104주년 기념
2023 아우내봉화제'가
오는 2월 28일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열사 사적관리소 광장 및
아우내장터 일원에서 개최됩니다.
🔥 일 시
2023. 2. 28.(화)
17:00 ~ 20:00
🔥 장 소
유관순 열사 사적관리소 광장
및 아우내 장터
🔥 참 석
내 · 외빈 및 천안시민 등 2,000명 이내
/ 천안시청 유튜브 생중계
🔥 주 최/주 관
천안청년회의소
🔥 후원
천안시
🔥 행사 내용
-추모제 (17:00~17:40)
유관순 열사 추모각,
순국자 추모각 참배
-본행사 (18:00~20:00)
시립예술단 공연, 횃불행진, 만세 재현행사
🔥 행사 흐름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횃불행진인데요.🔥
참가자들이 횃불을 들고
대형태극기를 앞세워
사적관리소 광장에서 출발해
아우내장터에 위치한
동남구 문화원까지
총 1.2km 구간을 걸으며
만세를 재연합니다.
행사에 앞서
사적관리소 광장 체험부스에서는
3.1절 골든벨, 태극기만들기,
페이스페인팅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시민 안전을 위해
경찰 등 유관기관과 함께
사전 점검 실시도
완료했는데요.
시민여러분께서
뜻깊은 행사의 자리에
나와 함께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그 전에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돌아본다면
더 의미 있고 뜨거운 마음으로
행사의 자리에
나오실 수 있으실 것 같은데요.
꽃다운 나이에
대한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함께 돌아볼까요?
유관순 열사의
출생과 성장과정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
지금의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유중권씨의 3남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영향을 받은
가정에서 출생하였고
숙부가 선교사로 일하는
매봉교회를 다녔는데요.
샤프 선교사 부인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시절
이화학당에 재학했던
유관순 열사는 학교생활도
매우 모범적인데다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서거로
이화학당 학생들은
자진해서 상복을 입고
휴교에 들어갔으며,
결국 고종의 서거는
3.1운동을 촉발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파고다 공원으로가서
만세를 불렀고,
3월 5일 만세시위에서
체포되었다가
곧 석방되었습니다.
일제는 학생들의
맹렬한 시위에 놀라
3월 10일 전국 휴교령을 내렸고,
유관순 열사는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왔습니다.
아우내 만세운동
고향으로 내려온 유관순 열사는
밤새도록 태극기를 그리는 등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준비했습니다.
1941년 4월 1일 아침,
아우내 장터에는
3,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태극기를 나눠주고
자주독립 쟁취 연설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이때 일본 헌병들이 무자비한
총격을 가했고 이때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 등
19명이 사망하였고,
유관순 열사는 체포되었습니다.
투옥, 투쟁,
그리고 순국
체포된 유관순 열사는
천안 헌병대를 거쳐서
공주 재판소로 넘겨졌습니다.
공주에 수감되어 있을 때에는
공주 영명학교에서
만세를 주동하여 체포된
오빠 유우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일경은 유관순 열사에게
갖은 고문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애로 생각하고
배후를 추궁했으나
굳게 다문 입술은
주모자가 자기라는 것 외에는
더 말하지 않아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들이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는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
유관순 열사는 1심 재판에서
아우내 만세운동의
주모자로 보아
5년형을 받았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옥중에서도 만세를 외치며,
동지들을 격려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그때마다
죽도록 매를 맞았으나
끝내 굽히지 않았습니다.
되려 1920년 3월 1일이 되자,
3.1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옥중에서도 만세를 주동했습니다.
1920년 3월 28일
영친왕의 일본인과의 결혼을 기념하여
모든 수형자의 형기를
반으로 줄이어 출옥시켰으나,
유관순 열사는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의 뜻을 끝까지 지키다
결국은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대문 형무소에서
그렇게도 목메어 외치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 19세에
어두운 감방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받친
숭고한 희생.
우리는 그 희생을
기억하고 기려야합니다.
2월 28일 아우내봉화제,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순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는 뜻깊은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
- #천안아우내봉화제
- #천안문화
- #문화즐기기
- #천안시민
- #문화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