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대구근대골목 이상화 고택 대구 민족 시인의 발자취 느끼기
대구근대골목 중에서도
제2코스에 있는 민족 시인
이상화 고택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대구 대표 민족 시인인 이상화
대구근대골목을 걸어보며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구근대골목 이상화 고택은
대구 중구 계산동 2가에 있습니다.
계산 대성당 바로 옆,
반월당역과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하여
대구근대골목 관광하러 오신다면
방문하기 좋은 곳입니다.
대구근대골목 이상화고택은
실제 항일시인
이상화 선생이 1939년부터
1943년에 건강 악화로 사망할 때까지
4년간 거주하였던 집입니다.
현대로 와서는, 재개발로
무너질 뻔했지만 시민들의 도움으로
이상화의 문학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장소로 재탄생하였습니다.
(2008년 8월 12일 개관)
대구근대골목 이상화 고택은
그의 시와 자료 등을 통해
시인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상화 선생은 1901년 4월 5일 대구,
아버지 이시우와 어머니 김신자 사이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7살이 되던 해인 1908년
아버지를 여의고 1915년 상경하여
경성부 중앙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날 때는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비탄에 빠진
우리 정서를 시적 언어로
끌어올림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 저항 시인입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나의 침실로’,
‘가상’, ‘몽환’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그의 대표적인 시를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 이상화(李相和)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이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죽거리지 마라
맨드라미 들만 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습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대구근대골목 이상화 고택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이상화 생가터는
(대구 중구 서성로 13길 7-20)
현재 복합문화공간 카페로
(라일락 뜨락 1956)
재탄생하여 운영 중입니다.
대구근대골목 이상화 고택에는
200살의 라일락 나무도 있습니다.
그의 유년기에도 있었을
향긋한 라일락 나무라
더욱 값진 것 같습니다.
이상화 선생과 같은 공간에서
라일락 나무를
함께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광복을 불과 2년 앞두고,
민족의 봄볕을 못 보고
눈을 감은 이상화 선생.
“그가 그토록 바라던 봄은
우리들의 지금 이 순간입니다.”
대구 시내 나들이를 계획 중이라면
대구근대골목의
이상화 고택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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