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윤봉길의사기념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자취를 찾아서 떠나는 역사여행
8월 광복절을 맞이하여 예산 애국지사의 업적을 따라가 봅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을 찾았답니다.
먼저 주차장에 주차하고 정면에 있는 충의사를 찾아갔답니다.
충의사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봉인한 사당으로
1968년 건립하였으며 1974년 사적지로 지정되었답니다.
사당에 올라가 향을 피워 예의를 갖추었답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이며 사적 제229호로
매헌 윤봉길 의사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한 현충 시설입니다.
기념관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 보관되어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의사와
유물을 전시한 윤봉길 의사 기념관과 성장가인
어려운 한국을 건져낼 집이란 뜻의 저한당은
윤봉길 의사께서 4세부터 중국으로 떠날 때까지
민족운동을 하시던 곳이며 도중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중도는 섬 중의 섬이라는 뜻으로
생가인 빛이 나타나는 곳이란 뜻으로
윤봉길 의사께서 4세까지 성장한 광현당 마을을 부흥시킨다는 뜻으로
체계적인 농촌부흥운동을 위해 설립한 흥원이 위치해 있답니다.
먼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삶을 살펴볼까요?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81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우의이며 자는 용기이며 아호는 매헌이며 별명은 봉길이라고 합니다.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하였으며
1919년 12세 때 3.1 운동 때 일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며
덕산 공립보통학교 2학년 때 자퇴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14세 매곡 성주록의 오치서숙(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며
동아일보 개벽 등을 통해 신문물을 수용하며 한시집 임춘 옥타 등 300여 편의 한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15세에 배용순 여사(16세)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배용순 여사는
1988년 82세에 작고하였다고 합니다.
19세에 스승에게 매헌이라는 아호를 받았으며
야학을 개설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글을 모르는 청년이
아버지의 무덤을 찾기 위해 공동묘지 묘표를 전부 뽑아 윤 의사에게 찾아 달라고 하기에
무식이야말로 민족의 가장 큰 적이라 늘 것을 깨닫고 문맹퇴치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야학을 열어 청소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각곡독서회 목계구매조합을 조직하여 농민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세 때 농촌부흥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농민독본은 3권을 지어
면사무소에서 등사기로 프린터 하여 야학 및 농촌운동 교재용을 사용하였으며
현재는 1권은 유실되고 2권과 3권은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21세에 농촌의 경제력을 놓이기 위하여 부흥원을 설립하여
월 1회 계몽강연회를 개최하여 청년들의 이상을 함양하고
애국사상 및 정치의식을 고취하며 농촌부흥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22세에 농민들이 자작자급으로 힘을 길러 갱생하자는 취지로
월진회를 조직하여 가난을 퇴치하고 축산등 농가부업을 통한
농가의 경제생활 향상에 역점을 두며
항일 무장투쟁론을 수용하였다고 합니다.
23세에 독립운동에 뜻을 세우고 중국으로 진출하여
24세에 상하이에 도착,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밝혔다고 합니다.
24세에 1월 8일 한인애국단원으로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 하나이다"
선서문을 작성하였습니다.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및 상해전승기념식에서 오전 11시 40분경 수통형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원흉 7인을 처단 의거를 단행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 헌병에게 연행되어
5월 25일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고,
11월 18일에 일본으로 압송되었으며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께서는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에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라며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1946년 유해발굴하여 조국으로 봉환되었으며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습니다.
충의사에서 나와 왼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매헌 윤봉길 의사의 부인이신 배용순 여사의 묘가 있습니다.
배용순 여사의 묘를 등지고 내려오면
윤봉길의사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아이들과 체험을 할 수 있는 부스가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윤봉길의사기념관
특별전시실에서 하고 있답니다.
기간은 2023년 7월 24일부터 10월 15일까지입니다.
기념관 옆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어록탑이 있는데
한번 관람하는 것도 좋을듯하네요.
어록탑에는 의사의 나라사랑과 문맹농민들의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넘치는 어록들이 있답니다.
그리고 의사의 기념관에서 길을 건너면
의사의 어린 시절부터 중국 망명 전까지 살았던
저한당과 광현당 그리고 농민 부흥을 위해 힘썼던 부흥원이 있습니다.
8월을 맞아 나라사랑을 실천하신 의사의 흔적을 따라
그의 업적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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