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전
여주서 꽃 피운 예술혼 세계로 잇다 도예가 박재국[2025년_6월호]
여주서 꽃 피운 예술혼 세계로 잇다
도예가 박재국
고요하면서도 강렬하고, 따뜻하면서도 도발적이다.
그에게 흙은 단순한 조형 재료가 아니다. 시간과 기억, 감정과 생명의 무게를 품은
살아 있는 존재다. 자연과 인간의 감성을 흙이라는 재료에 담아내는 도예가 박재국.
도자부터 회화,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예술적 여정에 동행해본다.
글 두정아 사진 이대원
세계에서 주목하는 여주 도예가
“큐레이터에게 처음 연락이 왔을 때, 혹시 사기는 아닐까 의심도 했어요. 입금이 된 후에야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죠. 보통은 전문 갤러리나 미술, 공예 전문 기관을 통해 추천을 받아 연락이 오는데, 이렇게 해외 박물관에서 직접 연락 온 것은 처음입니다. 아직도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여주 도예가 박재국 작가의 아내 신정임 씨는 지난해 스위스 취리히의 리트베르크 박물관(Museum Rietberg)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박 작가의 작품을 매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몇 달간 제안과 선택, 소통을 통해 무역에 관한 메일이 오갔고, 100여 점이 넘는 도자기를 비행기에 실어 보낼 준비를 하면서도 부부는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믿기 힘든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박물관이 완판 소식을 전하며 추가 매입을 요청한 것이다.
한류 특별전인 ‘한류(Hallyu)!’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리트베르크 박물관에서 개최되는 가운데, 박 작가의 ‘자연의 시(詩)’ 시리즈 작품이 박물관 숍에 전시 및 판매되고 있다. 한류의 기원과 대중문화, 영화, 패션, 미디어 등 예술 분야에 대한 한류의 세계적 영향력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를 위해 리트베르크 박물관은 청화백자와 색분청 기법이 어우러진 박 작가의 대표작을 직접 선정해 매입했다. 이는 작가 개인의 성과를 넘어 한국 도자가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례이자, 여주 도자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성과로도 평가받는다. 박 작가는 “제 작업이 국제적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깊은 감사와 감동으로 밀려왔다”라며 “창작자로서 이보다 더 큰 격려와 기쁨은 없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운명처럼 다가온 도자기의 매력
24회의 개인전과 140여 회의 초대전 및 기획전에 참여해온 박 작가는 여주에서 가장 바쁜 도예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30여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철학을 작품에 담아내 온 그는 도자기가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말한다.
“충북 보은에서 나고 자랐는데, 제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옛 가마터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놀면서 땅을 파면 깨진 도자기 조각들이 보물처럼 나오곤 했지요. 회백색에 가까운 점토를 파내어 그릇을 만들어 보던 추억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도자기 조각은 아이들에게 놀이 도구이자 창의력을 높여주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꾸준히 미술부 활동을 하며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여주를 방문하게 되면서 인생의 방향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평소 제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님께서 ‘우리 집이 여주에서 도자기를 만드는데 같이 구경가보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성월요’였죠. 도자기를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회화는 붓을 놓는 순간 그림이 끝나지요. 그런데 도자는 다릅니다. 흙은 많은 우연성을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잠재된 것들을 표출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흙이 지니고 있는 침묵의 힘과 더불어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입체와 평면, 그림과 조각, 조형, 회화, 설치 등 자유롭고 확장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된 그는 11년간 여주 장인들에게 전통 그림과 조각, 물레성형 등 도자 작업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며 자신만의 예술성을 확장해나갔다. 박 작가의 브랜드 ‘흙내가마’는 2002년 그렇게 탄생했다. 여주 강천면 이호리에는 그의 작업실과 함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작은 갤러리도 마련돼 있다. ‘흙내가마’는 흙의 향기를 담은 가마를 뜻
하는 말로, 도자의 기본인 흙이라는 중심축을 내세운 의미를 담았다.
묵묵히 걸어온 길만큼 나아갈 미래
박 작가는 스스로를 ‘성실한 예술가’라고 말한다. 도자에 있어 성실함은 애정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도자기의 본고장인 여주에서의 삶이 작품 활동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최근에 우연히 지방에서 열린 도자기축제를 구경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관람객도 없고 너무 한산한 겁니다. 도예가로서 마음이 아팠지요. 어찌 보면 여주는 도자 업체 수도 많고 또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죠. 하지만 적당한 긴장감과 생존 본능에 의해 바삐 움직이게 되는 환경과 구조는 안일과 나태를 멀리하게 합니다. 지자체의 지원과 다양한 협업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지요. 긴장감이라는 것은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도예에 대해 그는 “작가의 세계관과 감성이 중요해진 시대”라고 했다. 전통과 실험, 감성과 개성, 감각과 기술들이 유연하게 넘나들고 융합을 통해 확장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주 도예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박 작가는 “신진 도예가의 유입이 많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젊은 세대의 실험정신과 시대성, 중년 세대의 깊이감과 노련미 그리고 지혜가 균형을 이루기를 소망한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박 작가에게 가족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반자다. 아내 정임 씨는 작업에 열중하는 남편을 위해 자료 정리와 행정, 외부로부터의 소통을 도맡는 등 특급 서포트를 이어오고 있다. 맏딸인 박은서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아들 역시 동양화를 전공 중이다. 박 작가는 “창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부부가 젊은 시절 열심히 실천하고 걸어왔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라며 “언젠가 가족 모두가 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상상해 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메종&오브제’ 박람회에 참가했던 박 작가는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며 국내외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7월에는 서울 연희동의 도은갤러리에서 초대 개인전을 갖는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자 회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이 모여 하나의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이 작가의 삶의 흔적으로 남겨진다는 사실이 참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주제에 맞는 작업을 확장해 나가며 세상 사람들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박재국 작가 약력
개인전 24회 (여주도자문화센터, 부천아트벙커, 세종갤러리, 반달미술관, 한가람미술관,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등)
단체전 및 초대전
2025 •궁극적 실체-건·곤·감·리 (여주 아트뮤지엄 려)
2024 •메종&오브제 파리 (프랑스 파리 빌뱅트 전시관)
•17th Diaf 대구아트페어 (대구 엑스코)
•오매 갤러리 윈도우전 (서울 오매갤러리)
2023 •여주아트페스티벌 (여주 아트뮤지엄 려)
•공예트랜드페어 (서울 코엑스)
•자연을 담다 (27th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아트벙커 스페이스作)
2022 •한강조각프로젝트 낙락유람 (서울 뚝섬한강공원)
•URBAN BREAK (서울 코엑스)
2021 •PLAS2022 CONTEMPORARY ART SHOW (서울 코엑스)
•Busan Annual Market of Art (부산 벡스코)
작품 소장 및 설치
스위스 리트베르크 박물관, 양구백자박물관, 여주시립미술관, 소피아그린CC, 세종호텔, 금호건설, 여주시립도서관, 조계사, 경기도의회, 삼세영갤러리, 뮤지엄SAN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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