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2023년 시차적응을 위한 첫 번째 문화생활 ::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결과보고전 '우연의 시차'
새해가 시작되면 항상 지나간 한 해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시차 적응의 시기가 필요한데요. 2023년을 맞이하여 새해 첫 전시로 걸맞은 제목의 전시회를 소개합니다.
팔복예술공장은 2022년을 기준으로 5년간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창작스튜디오란 예술가의 건강한 창작활동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으로, 한 해간 선정된 예술가들에게 작업에 필요한 다방면의 기반을 제공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됨과 동시에 이를 공유하고 소통하여 지역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향상시키는 순기능을 갖는다고 해요.
이런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5기 작가님들의 결과보고전이 시작되어 다녀와 보았어요! 마침 방문일이 오픈식이 있는 날이어서 작가님들의 목소리로 생생한 작품 설명을 듣고 올 수 있었습니다.
‘우연의 시차’전은 선정작가 7인의 10개월간의 기록이자 과정을 엮어낸 전시로, 기존에 볼 수 없던 실험적인 결과물을 내어놓은 전시라고 해요.
전시명이 무척 시적인 표현으로 느껴졌는데요. ‘통제되지 않은 각자의 삶 안에서 생성된 우연과 지나쳐온 시간이 만나 생긴 시차는 관람객의 지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공간을 감싸는 동시에 7인 작가가 각자 지나온 시간이 만들어낸 다른 시간성도 발견해 낼 수 있다.’라는 기획글을 동반했습니다.
매 순간의 우연이 어떤 시차를 만들고 평행우주 속에 존재하는 여러 겹의 시공간이 모두 다른 의미로 발현되듯 전시는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고, 그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참여로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런 멋진 제목이 탄생한 것 같아요!
저는 오픈식 일정에 맞춰 팔복예술공장 A동 2층 전시실에서 관람을 시작했습니다만 동선상 주차장과 가까운 이팝나무홀을 먼저 관람하고 본관 2층 전시실로 이동하는 루트가 더 좋을 것 같아요! (하단 지도에서 B동 9번 이팝나무홀 관람 후 A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1번의 공간인 2층 전시실 관람)
첫 번째 작가는 ‘김영봉’ 작가로, 지역의 환경과 생태를 중심으로 쓰임이 다한 소재들을 수집, 가공한 작업들을 전개한다고 해요.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마자 전봇대에 붙어있는 뭔지 모를 커다란 기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공든 탑’이라는 제목으로 건물을 부술 때 쓰이는 커다란 해머가 달린 철거용 중장비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면 일상에서 가깝게 만났던 소재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어떤 소재가 쓰였는지 함께 이야기하면서 관람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자연에서 방치돼 있던 사물들이 전시장으로 끌여들여지면서 따라온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자본으로 다져진 세계에서 낡았거나 버려진 것, 특히 쓰레기와 같은 소외된 순간을 마주함이란 매번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그 과정이 쓸모를 만들며 희미한 지점은 어느 순간 서서히 회복될 것이라 믿고 있다.’라는 작가노트를 남겼는데요.
이미 쓰임을 다한 물건들로 재생산돼 새로운 생을 맞이한 작품들에게서 환경과 생태를 대하는 작가님의 다정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탑처럼 위로만 쌓여있는 작품들이 회복에 대한 믿음의 고행을 대변하는 듯 보였어요!
두 번째 작가는 ‘장영애’ 작가로, 지속가능하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 구조적으로 단단한 것을 SUPER-HAPPY라고 정의하며 보편적인 삶의 궁극적 목표인 행복에 의문을 품고 그를 찾아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한다고 해요.
이 공간에 들어서자 푸른 색이 온 세상을 집어삼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이 영롱한 푸른 빛이 왠지 모를 행복감을 전해주는 듯 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에 갖고 싶다 라는 말을 연신 반복한 것 같아요.
작가님은 ‘조형적 공간을 언어와 같은 사유와 감각의 매개체로 변환하여 인간에 대해 더 깊은 인식에 이르는 것을 시도할 뿐만 아니라 이를 회화적 방식으로 가시적 영역 안으로 가져오고자 한다.’고 해요.
쉽게 소멸되는 행복이 아닌 심연의 근원적인 행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한 작품들은 은근한 미소를 띈 작품 속 인물들과 같이 모호하지만 명확한 방향성을 갖는 듯 보였어요! 작가님이 꼭 슈퍼해피를 찾아 세상에 널리 공유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작가는 ‘윤미류’ 작가로, 팔복예술공장을 통해 만나게 된 작가 K와의 사이에서 발생된
시간과 장소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고 해요.
벽과 같은 커튼 속으로 들어가면 이상한 시공간에 놓인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마치 그림 속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수다스럽게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가님은 ‘특정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알게 된 K의 캐릭터를, 그가 퍼포먼스 작업을 위해 사용하는 소품과 배경 등을 활용하여 평면에 재구성한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우스꽝스러운 가면(거꾸로 뒤집힌 호랑이 가면)을 쓴 인물의 순간적인 움직임들이 캔버스에 분 단위로 기록된 듯 보입니다. 시원한 붓 터치와 퍼포먼스 작가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조화하여 묘한 쾌감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한편에 작가 K와 주고받은 편지가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누군가의 편지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 간지러우면서도 그들의 간결하고 희한한 대화가 우리가 느끼는 작가의 세계를 무척이나 잘 대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네 번째 작가는 '정희정' 작가로, 신체가 갖는 장소성을 통과한 풍경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발견된 리듬을 영상 매체로 시각화합니다.
좁은 문틈 사이를 지나 컴컴한 공간에 들어서면 팔복예술공장에 다다르는 길목에서 지나온 풍경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유의 쨍한 색감으로 익숙한 듯 낯선 풍경들이 나열되는데요? 그 속에서 산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인물의 춤사위가 자유로운 듯 하면서도 뭔가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가님은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에 만났을 때 피부의 두께만큼 과거와 현재가 포개져 있는 풍경은 기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데요.
낮에는 여러 가지 소음과 운동성을 갖는 공장단지의 풍경이 밤이 되면 유령도시와 같이 고요해졌을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삶의 어떤 면과도 닮아있는 듯한데요.
메트로놈과 같은 정박의 리듬이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불안정한 팔복동의 리듬으로 변조된 듯 느껴졌습니다.
2층을 벗어나 주차장과 가깝게 붙어있는 B동으로 이동하여 이팝나무홀에 들어섰습니다. 높은 천장에 압도되는 이 공간엔 세 작가의 작품이 있었는데요.
다섯 번째 작가는 '김희선' 작가로, 서로 다른 속성의 사물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들의 양가적인 속성을 연결 지어 시각화하는 작업을 전개하는데요.
오래된 고가구와 공사현장에서 쓰일만한 부자재들의 조합이 새로운, 그러나 익숙한 사물로 보이는 작품들이에요.
물건을 잘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구들이 수많은 파이프를 만나 대포나 다이너마이트 같은 무기로도, 큰 성당에서나 볼 법한 오르골 같은 악기로도 보이는듯 한데요.
작가님은 ‘주로 보호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대상이 그 반대의 결과를 수행하는 이미지를 섞어 작품을 구현하며, 일상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분해하여 서로 상충하는 요소와 함께 제시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해요.
작품을 따라 상하로 이동하는 시선 때문인지 디즈니 만화같이 작품이 깨어나 움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쩐지 작품 안에 모순된 어떤 것들을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 안에서 그럼에도 위트를 갖고 들춰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듯 보이기도 했어요.
여섯 번째 작가는 '권다예' 작가로, '그리다'라는 언어가 지닌 관습적 의미를 벗어나 그의 대안을 찾는 과정을 작가적 시선으로 표현합니다.
이팝나무홀에 들어서면 그 중앙에 천장에서부터 세로 지른 커다란 천막이 보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끌어 올려진 잉크가 천을 따라 다시 아래로 흐르고 이 잉크들이 모여 다시 바닥에 뭉쳐진 형태들을 물들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다양한 색의 잉크들은 서서히 시간의 경과에 따라 천을 물들여 자연적으로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작품 속 중첩된 구간은 모든 색이 쌓여 검은색이 되어감을 관찰할 수 있었어요.
작가는 '시각 예술 언어에 부여하는 의미를 되짚어 보고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대상의 역학관계 안에서 그리는 행위를 통해 회화적 영역에 깊게 개입하는 작가의 필연적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고뇌가 담겨 만들어진 작품은 멈춰진 장면이 아닌 전시 기간 내내 계속해서 그려지고 관람객에게 늘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하여 제가 느끼기엔 그리기의 대안을 완벽하게 찾되 그리기라는 행위 자체를 벗어나 행위예술로까지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신비로웠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작가는 '문채원'작가로, 작가의 유사 매뉴얼은 직관적인 삽화와 안내문이 뒤섞여 우스꽝스럽게 실패하고 오류 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여기저기 어느 한 구석 신경 쓰지 않은 곳이 없는 듯 숨어있는 재미있는 요소로 가득한 작가의 작품 속에는 어디서든 자주 볼 수 있는 안내문의 장면들이 짜깁기 되어 하나같이 실제 기능을 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어요!
작가님은 ‘문화, 언어, 사회구조 같은 시스템의 변화에 대응하며 발생하는 실패와 오류의 내러티브에 주목하여 명확하고 완성된 결과에서 제외된 부산물의 일상성을 탐구한다.’고 하는데요.
정형화된 시스템에 귀여운 반기를 들고 있는 블랙코미디적 성격을 띈 작품 같다고 느껴지는데요? 당연히 과정과 결과를 도출해 내는 안내문, 표지판 등이 잘못된 결과를 보여줄 때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여 크게 공감할 수 있었어요.
평면 작품임에도 다양한 소재가 활용된 작품임에도 굉장히 조화롭고 세련된 모습에 한 번 놀라고, 또 생활 속에서 작가님은 어떤 엉뚱한 상상을 매일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며 한 번 더 놀란 작품들이었습니다.
이상으로 모든 작품을 관람해 보았는데요? 7인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고 어떠한 우연적 시차를 경험하셨나요? 작가님 개별의 작품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알아가고자 한다면 관심 있게 본 작가님의 공개 비평 일정을 참고하여 방문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역에서 다채로운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여서 무척 흥미로운 시간이었고 참여 작가님들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하는 전시였는데요.
팔복예술공장에서는 2023년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창작스튜디오 6기 참여작가를 모집하고 있다고 해요. 내년엔 또 어떤 새로운 전시와 활동들이 이어질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어요!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결과보고전 ‘우연의 시차’
일시ㅣ2023.01.04.(수)~02.26.(일)
주최ㅣ전주시, 전주문화재단
운영 시간ㅣ10:00~18:00(입장마감 17:30)
장소ㅣ팔복예술공장 A동 2F 전시실, B동 이팝나무홀
주소ㅣ전주시 덕진구 구렛들21길 46
문의ㅣ063)212-8801
관람료ㅣ무료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6기 작가모집 공고
written by 이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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