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남원 양씨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전통마을, 동계구미마을
남원 양씨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전통마을,
동계구미마을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자리한 구미마을은 해발 580m 무량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로, 거북바위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입니다. 입구에 거북 모양의 약수만 보아도 친근한 마을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구미마을은 고려시대 강릉 김씨가 이주한 터에 이태조가 즉위한 후 남원 양씨가 새로 마을 터를 닦은 곳으로, 이후 600여 년간 양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마을 앞에 있는 거북 모양의 바위 꼬리가 마을로 향해 있어 ‘구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마을 입구에는 보호수와 ‘귀화정’이라 불리는 정자가 조성되어 있어 누구나 잠시 쉬어갈 수 있습니다. 귀화정 현판은 양상배 서예가가 글씨를 쓰고, 양청문 서각작가가 은행나무 행자목에 글씨를 새겼습니다. 귀화정에는 대제학 양이시의 한시 ‘제 평릉역정’이 걸려 있어 마을의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오언절구로 된 ‘제 평릉역정’입니다. 고려말 공민왕 때 대제학을 지낸 양이시는 평릉역 정자에 올라 당시 혼란스럽던 나라를 걱정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제 평릉역정(題 平陵驛亭)
도화풍제백(稻花風除白)
두협우여청(豆莢雨餘靑)
물물득기소(物物得基所)
아가계상정(我歌溪上亭)
벼꽃은 바람결에 희어지고
콩꼬투리는 비온 뒤에 푸르다
만물은 제자리를 얻었는데
나는 시냇가 정자에서 노래하네
귀화정 아래에는 ‘고려직제학양수생처열부이씨려’ 비각이 있으며, 비각 옆에 ‘열부숙인이씨사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377년 남편 양수생이 세상을 떠나자, 숙인이씨는 개가를 거절하고, 유복자 양사보를 등에 업고 시댁인 남원까지 천리 길을 내려갔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당시 풍습대로 수년에 걸쳐 개가를 권유했지만, 그녀는 남편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고 전해집니다.
열부 숙인 이씨 정려는 조선 세조 때 남편을 잃고 네 자녀를 홀로 키우며 가난을 이겨낸 열녀인 숙인 이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입니다. 숙인이씨의 행실은 세조의 귀에 들어가, 1467년 정려를 받았는데요, 정려는 충효를 닦은 사람에게 내려주는 칭호로, 당시에는 주로 부모를 봉양한 효자 열부에게만 내려졌던 터라 더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전시관을 찾아 걸어가는 길 보이는 벽화에는 구미마을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구미마을 벽화에는 마을의 전통문화와 삶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벽화는 오래전에 그려진 것 같았지만,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서인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는데요, 서둘러 봉우리를 터트린 동백꽃이 마을 모습과도 잘 어울립니다.
우리동네 작은 박물관 ‘휘양관’ 안내판이 보입니다. 남원양씨 존중 문화유산이 전시된 한옥예촌의 전시관은 ‘휘양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이정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무량산이 한눈에 보이는 전시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개관한 휘양관은 지상 1층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동계 구미마을과 관련된 문화재, 유적, 역사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옥 전시관입니다. 무량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더욱 멋스러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휘양관’이라는 이름처럼 햇빛을 받아 더 빛이 납니다.
구미마을은 순창군에 남아있는 남원양씨의 집성촌입니다. 고려시대부터 남원양씨가 정착하여 살아온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남원양씨의 거주지 중 가장 큰 마을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 구미초등학교가 설립되었을 때는 학생 모두가 남원양씨로 전국에서 유일한 씨족 학교로 알려졌습니다.
장수마을로도 알려진 구미마을의 마을의 역사와 변화 모습도 사진 자료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한 마을로, 마을의 변천사는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돈암이 위치한 만수탄은 순창군 내의 섬진강 구간에서 가장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입니다. 전시관에 소개된 만수탄 종호 8경을 읽어보면 그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남원 양씨 집성촌 이야기와 열부 숙인부인 이씨 정려비 탁본, 남원 양씨 문중과 관련된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6세기에 발간된 남원 양씨 최초 족보를 비롯해 영조 28년 족보, 조선세조 13년인 1467년에 작성된 열부 숙인이씨 정려 기록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남원 양씨 최초 족보는 남원 양씨의 시조인 양백의 후손들의 계보를 기록한 것으로, 조선시대 양씨 가문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국가보물 7점(홍패 2점, 교지 5점)과 지방유형문화재 99점 등 다양한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국가보물 제725호로 지정된 홍패 2점과 교지 5점은 조선시대 남원 양씨의 공로를 인정받은 문서로, 남원 양씨 가문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시관 내부에 구미마을을 소개한 책자가 비치되어 있어 잠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귀미마을은 고려시대부터 남원 양씨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에는 남원 양씨의 거주지 중 가장 큰 마을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조선 세조 때 남원 양씨의 후손인 양성지가 마을에 정착하여 마을을 발전시킨 이야기까지, 마을의 역사와 문화가 한 권의 책자에 담겨 있었습니다.
현재 구미마을에는 약 100여 가구의 남원양씨가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동제를 지내고, 음력 9월 9일에는 열부 이씨 정려비를 참배하는 증 조상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휘양관의 우측으로는 남원 양씨의 종중 사당인 ‘귀문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귀문각에는 남원 양씨의 종중 문서와 유물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아직도 마을의 남원 양씨 후손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귀문각에 보관되어 있는 홍패는 고려 공민왕과 무왕 때의 양이시와 양수생 부자가 과거에 급제하여 받은 문서로 고려 후기의 공문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풍경이 함께하는 구미리 한옥예촌 전시관은 남원 양씨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순창을 찾는 많은 분이 방문해 구미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남원 양씨의 뿌리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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