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시작 장애자들의 세종대왕 ‘송암 박두성’ 선생님 생가
점자라는 것은 시각장애인이 손가락으로 더듬어
촉각으로 글을 읽을 수 있게
돌출된 점으로 되어 있는 특수한 부호 글자입니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맹인들은
조선시대 미국인 선교사였던 ‘로제타 홀씨’가
뉴욕 점자를 활용하여 창안한
점자를 배웠습니다.
허나 영어와 한국의 문자 조합 방식이
달라 사용이 불편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맹인들은
일본식 점자를 배워야만 했습니다.
송암 박두성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 한국 맹인들이
일본어로 되어 있는 점자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하여 한글 점자의 필요성을 느껴
1920년도부터 한글 점자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1926년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발표하였고 이를 널리 보급하였습니다.
박두성 선생님은 늘 이렇게 주장하셨습니다.
“실명한 이들에게 조선말을 빼앗는다면
눈 먼 데다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요?”
‘너희들은 눈은 비록 어두우나 마음까지 어두워서는 안 된다.
안 배우면 마음조차 암흑이 될 테니 배워야 하느니라.”
훈맹정음의 기본 원칙은
1. 배우기 쉬워야 할 것
2. 점수효가 적어야 할 것
3.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할 것이라 합니다.
나는 강화나들길을 무척 자주 걷는 편이었는데,
나들길 9코스인 다을새길인 교동도의 월선포에서 출발하면
선착장 근처에 박두성 선생 생가가 인근에 있는 것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자주 생가를 방문하였었습니다.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
박두성 선생님은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에서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서,
강화도의 보창 학교에서 신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한성 사범학교에서 수학 후 보통학교에 취임하여
교직자로서 첫발을 시작하였습니다.
1913년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조선 총독부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취임하였고,
시각장애인 교육에 전념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어로 된 점자로 배우는 학생들을
보기 안타까워 한글 점자를 직접 창안하였습니다.
밤낮으로 한글 점자를 연구하느라 각막염에 걸려
자신도 하마터면 실명할 뻔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31년부터는 한글점자 성경을 제작을 시작하여
10년 만에 점자로 된 신약성서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늘 그렇게 말씀하였다고 합니다.
‘점자책을 쌓지 말고 꽂아라’고...
맹인들이 ‘배우기를 힘쓰라’라는 뜻이었죠.
이전에는 낮은 담장이 있는 한옥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최근에 박두성 선생 생가터를 완벽하게
관광지로 새로 조성된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제일 처음 나를 반기는 것은 선생님의 흉상이었습니다.
생가는 ㄱ자 형태의 초가로 만들어져 있고
창고 건물이 있으며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야외 전시 벽과 마당에는 점자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상징물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일반인들이 점자를 체험할 수 있도록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벽도 있습니다.
그어 어록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민족이 노예가 되더라도 그 언어를 보존하고 있는 한,
그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비록 눈은 잃었으나 우리말 우리글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실명인 사람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도 보이지 않는데 벙어리까지 되란 말이냐.’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점자 교과서가 있어야 합니다.’
송암 박두성 선생님은 시작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시각 장애자들의 도서관이 있는
부천의 해밀 도서관에는
선생님을 위한 작은 상설 기념관이 있어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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