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 전
100위 독립의 불꽃,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애국지사 사당을 찾아서
2025년 8월 15일은
광복 80주년입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으로
애국지사 사당에는
애국지사들의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추모비 건립 취지와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애국지사 사당을
다녀왔습니다.
애국지사 사당은
깨끗하고 넓은 주차장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느티나무의
무성한 잎은 공기를 정화하며,
마치 숲에 온 듯
청량감을 더해 줍니다.
느티나무가 제공하는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바람개비 태극기와
무궁화가 가장
먼저 반깁니다.
애국지사 사당에는
국민이 사랑하는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무궁화 동산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무궁화는 '영원히 피고
또 피어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끈기와 강인함을
상징하지요.
애국지사들처럼.
그럼 애국지사 사당은
어떤 곳일까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위치한 애국지사 사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2008년도에 건립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애국지사들을
기리는 곳이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이라면
우리 지역 애국지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
애국지사 사당입니다.
애국지사 사당은 시민들이나
지역주민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애국심을 심어주는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 사당은
숭절사를 중심으로
전시관, 관리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숭절사에는 현재
100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전시관에는 애국지사의 유품,
독립운동 활동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관리동에서는
역사해설사가 상시 대기 중이며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이곳 진전, 진북, 진동 3개 면인
삼진 지역에도 만세 운동이
일어났는데요.
1차는 3월 28일과 4월 3일
2차에 걸쳐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고
이를 삼진의거라고 합니다.
2차가 규모가 훨씬 커서
4.3 독립 만세 운동이라고 합니다.
2025년 8월 12일 창원시는
애국지사들의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이 추모비는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영원히 추모하고 기리고자
'창원 의열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세웠습니다.
나라를 위한 희생,
그 이름 없는 헌신이
이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추모비의 상부 석재 기와는
3.1운동 만세의 물결을
형상화하였습니다.
네 개의 기둥은 이 땅의
자주독립을 위해 꺼지지 않는
횃불을 의미하며,
각각 용기, 희생, 단결,
희망을 상징합니다.
조국을 위한 용기 있는 첫걸음,
나라를 지키려는 숭고한 희생,
하나로 뭉쳐 극복한 단결의 힘,
내일을 향한 밝은 희망이
이 횃불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창원, 마산, 진해에서의
3.1 만세운동의 기록입니다.
자세한 경로는 애국지사 사당에
방문해 살펴봐도 좋겠습니다.
애국지사 사당에는
100위 독립의 불꽃,
영웅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역사 속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함성은 영원한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순국선열들의 항일 정신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
또 내일의 세대에게
길이 전해지기를 염원합니다.
이제 숭절사로 진입해 보겠습니다.
숭절사로 진입하는 현판에
'경앙문'이라는 글씨체가 보이죠?
이것은 우러러보고
존경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숭절사로 진입하는 문은
3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특별한 제례
(삼일절, 추모제와 기념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잠겨 있습니다.
동입서출로 능, 향교, 사당 등의
출입 시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왼쪽)으로 나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숭절사에는 현재
우리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100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91분이었는데
그 사이에 9분이나
서훈을 받을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작년에만 해도 애국지사들의
서훈 순서가 하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배열되었는데
현재는 서훈별
상단 왼쪽에서부터
오른쪽 순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추가 봉안한 서훈별은
맨 마지막으로
배치한다고 합니다.
현재 서훈 현황은 독립장 (3),
애국장(11), 애족장(40),
건국포장(13), 대통령 표창(33)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독립장을 받은 3분만
잠깐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상해임시정부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그렇죠.
김구 선생님이
가장 먼저 생각 나시죠.
이교재 선생님은
김구 선생님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분입니다.
이교재 선생님은 전시관에서
유품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말모이' 봤나요?
그 말모이 영화에
조선어학회가 나오죠.
이윤재 지사는 조선어학회에서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시도하다
감옥에 체포되어 투옥하다
순국하신 분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1930년 민족
말살 통치 때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에 항거하다
순국하셨습니다.
주기철 목사 하면 일사각오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한다) 가
가장 먼저 떠오르죠.
시대를 잘 만났다면
종교인으로 세상의 낮은 곳을 돌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을 텐데...
순간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진해에 있는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방문하면 더 많은 업적을 알아볼 수 있겠지요.
참배를 하고 나오는데
숭절사 뜰이 참 평화롭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가 어떤 희생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기억하며
그날의 투쟁과 함성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전시관으로 진입해 보겠습니다.
애국지사 사당 소속
마산합포구청 복지과에서
발매한 이 소책자는
삼진의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애국지사 상당 방문 시
이 리플릿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어린이 방문객은
이교재 선생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태극기 퍼즐을 완성해
사진도 찍어 보세요!
전시관에는 1899년 마산포 개항을
시작으로 1945년 광복까지를
지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록이라
구체적인 사실을 낱낱이 알 수는 없지만,
전시관 패널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진의거 1차는 3월 28일로,
고현에 5일 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부른 것처럼 장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순식간에 600여 명의 군중이 모이고
일본 헌병 주재소가
있는 진동으로 향했지만,
아무런 무기 없이 평화롭게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일본군은 총과 칼로 위협했고
그 과정에서 11명이
일본군에 체포당합니다.
1차에 실패했으니
2차를 준비하게 됩니다.
2차는 격문과 세부 계획에 따라
아주 친밀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2차 의거 또한
4월 3일(음력 3월 3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로
잡았습니다.
음력 3월 3일은 봄을 맞아
농사의 시작과 한 해의
건강과 평안을 비는 날로
우리 조상들에게는
큰 명절 중 하나입니다.
4월 3일 오전 9시 진전면
양촌 일암 마을 앞 하천 변에
마을 주민들이 모이고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고
진전에서 진북을 거쳐
진동으로 향합니다.
오후 2시쯤 마침내 격전지였던
사동교에 도착하고 총과 칼로
무장한 일본 헌병대의 시위대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일제의 무차별 총탄 세례를 받고
시위대는 1시간여 만에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에
그저 가슴이 찢어지듯
슬픔이 내려앉습니다.
이때 8분(김수동, 변갑섭, 홍두익,
김호현, 고묘주, 김영환, 변상복, 이기동)이
순국하셨고 22분이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존경하는 이분들을 기리기 위해
팔의사 묘역, 팔의사 창의탑이
건립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지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교재 선생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교재 선생은 1921년
상해임시정부로부터
군자금 모금과 국내 연결책의
밀명을 받아 '칼톱회' 라는
조직을 만들어 국내 동향을
상해임시정부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김구 선생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서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상해임시정부에
3번을 오가며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으나
감옥에 4번이나 수감되었으며
46세에 순국하셨습니다.
이교재 위임장(왼쪽)은
이교재를 경상남북도 상주 대표로
임명한다는 문서이며
상해격발(오른쪽)은 이중광을
특파원으로 임명한다는 문서입니다.
1930년 전후로 상해임시정부에서
국내와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위임장을 지키기 위해
부인 홍태출 여사는 이 지령서를
굴뚝 속이나 밧줄에 묶어서
우물 속에 어떤 때는 부녀자의
월경대로서 지켜냈다고 합니다.
애국지사 사당에는 이렇게
해석본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꼭 알아야 할 부분은
진한 글씨체, 빨간 글씨로 표기해서
더 선명하게 들어오더라고요.
지령서를 살펴보면 '타도일본' 중의
'日' 자는 옆으로 뉘어 놓았고
'本' 자는 위아래로 거꾸로 놓아
일본을 붕괴시키겠다는
독립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애국지사 사당에 방문하시면
꼭 살펴보기를 추천합니다.
허당로를 아시나요?
허당로는 6호 광장에서
용마고등학교 쪽으로
명도석 지사의 호를 따서
만든 도로명입니다.
명도석 지사는 사업가였는데
단순히 사업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야학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였고
특히나 무산층 여성 교육에 힘쓰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습니다.
이 시는 광복 직후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고 독립지사들이
외면당하는 세태와 이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쓴 시입니다.
애국지사 사당에 방문하면
그 순간에 어떤 마음이었는지
헤아리며 읖조려 보기를 추천합니다.
이교재, 명도석 지사의 얼굴을
사진으로 볼 수 있으니
애국지사 사당 관람을 추천합니다.
그때 그 순간을 영상으로
다시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관리동에서는
애국지사 사당의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 사당은 우리나라
고유의 한옥 건물이라
지나가다 카페인 줄 알고 들렀다
지역사의 현장임을 알고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애국지사 사당 관람 안내입니다.
예전에는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휴관이었는데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는 사실 기억하길...
애국지사 사당을 둘러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특별 전시가 가끔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 전시를 통해서라도
우리 지역 애국지사들의 발자취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과 추모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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