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일 전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명성황후생가유적지 [2025년_8월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명성황후생가유적지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역사적 유적지가 살아 숨 쉬는 여주.
명성황후가 태어나 8세까지 자란 집이 있는
명성황후생가유적지는 여주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우리 역사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유적지로 떠나본다.
글 두정아 사진 김성재
조선의 왕비가 태어나고 자란 곳
여주 능현동에 소재한 명성황후생가유적지는 여주에서 나고 자란 명성황후(1851~1895)를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전체 면적 7만1,000㎡으로,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명성황후의 생가, 황후의 손길이 머문 감고당, 기념관과 문예관 등을 만날 수 있다.
매표소와 주차장을 지나면 가장 먼저 하마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이 앞을 지날 때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 새겨진 비석으로, 대개 왕이나 장군, 고관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져 있다. 표면은 한국전쟁의 탄흔으로 일부가 훼손됐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왼편으로 명성황후생가가 나타난다.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황제(재위 1863∼1907)의 비(妃)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세까지 자란 곳이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왕비가 되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며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일본에 의해 시해당했고, 이 사건은 독립운동의 불씨가 됐다. 명성황후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중수했고 1996년에 행랑과 사랑, 별당 등을 함께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생가는 그리 크지 않은 재목을 사용한 아담한 규모이지만 구조물 형태와 짜임새 등에서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있다. 197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됐다.
전시·공연으로 만나는 기념관과 문예관
생가의 맞은편에는 순국숭모비와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1981년 건청궁 내 동쪽, 구릉지에 세워졌던 명성황후 순국숭모비는 건청궁의 복원과 개방으로 이전 대상지를 물색하던 중 명성황후 시해 112주기를 맞이하며 2007년 명성황후생가유적지로 이전했다. 명성황후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는 과거와 현대를 상징하는 2개의 직사각형 기둥이 눈길을 끄는데 좌측 상층부에 빛나는 태양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 날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다. 추모비의 뒷면에는 2001년 3월 김남주가 짓고 구자송이 쓴 추모시가 새겨져 있다. 추모비 뒤로는 명성황후와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는 명성황후기념관이 보인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2017년 여주시가 건립한 기념관이다. 그 오른편에는 문예관이 자리해 있다. 2002년 개관한 161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여주시민을 위한 다양한 공연과 회의, 교육 등이 열린다.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만나는 곳
명성황후생가 뒤로는 민유중의 묘와 신도비, 명성황후탄강구리비 등을 만날 수 있다. 명성황후탄강구리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1호로, 명성황후가 태어난 마을을 기념하기 위해1904년에 세운 비석이다.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글공부를 하던 건물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으며 화강암으로 된 앞면에는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는 뜻의 ‘명성황후탄강구리(明成皇后誕降舊里)’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광무 8년 갑진 오월 어느 날 엎드려 눈물을 삼키며 공경히 쓰다’라는 의미의 ‘광무팔년갑진오월일배수음체경서(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手飮涕敬書)’가 쓰여 있어 광무 8년(1904)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주시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된 민유중의 묘는 명성황후생가유적지 뒤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묘소로 가는 길목에는 민유중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민유중(1630~1687) 선생은 조선 제19대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의 아버지로, 효종 원년(1650) 과거에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전라도 관찰사,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조선시대의 문인이었다. 숙종 7년(1681)에 민유중의 차녀가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되며 여양부원군에 봉해졌다. 민유중 큰아들인 민진후가 비문을 쓰고 둘째 아들 민진원이 글씨를 썼다. 기단석의 몸통은 거북이 형상이며, 머리는 용의 모양으로 오른쪽으로 틀어져 묘소를 향하고 있다.
인현왕후와 명성황후의 숨결이 머문 감고당
명성황후생가 좌측으로는 조선시대의 민가를 재현한 공간인 민가마을을 지나 감고당을 만날 수 있다. 감고당은 조선제19대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가 친정을 위해 지은 건물로, 조선의 두 왕비가 기거했던 곳이다. 희빈 장씨의 모함을 받아 폐위된 인현왕후가 복위될 때까지 약 5년여 동안 머물렀고, 명성황후가 8살의 나이로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간 후 고종 3년(1866) 왕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다. 조선시대 중부지방 사대부 집안의 전형적인 건축구조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 안국동에 있었으나 1966년 쌍문동으로 옮겨졌고, 2006년 명성황후생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던 여주시가 명성황후의 고향인 여주로 이전 복원했다. 감고당에서는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일일 다도체험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만날 수 있다.
명성황후생가유적지 관람안내
위치 여주시 명성로 71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9:00~18:00
동절기(11월~2월) 9:00~17:00
* 관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에서 정한 휴관일)
요금 무료
주차요금 중·대형차 2,000원, 소형차 1,000원, 경차 500원
* 주차 무료 : 여주시민 (신분증 제시 필수)
문의 명성황후생가유적지 관리사무소 031-881-9730
해설 예약 031-887-2868
명성황후생가유적지를 더욱 알차게 관람하는 방법
명성황후생가유적지에서는 해설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예약을 통해 문화관광해설사와 동행하면 유적지
곳곳에 숨어 있는 많은 스토리텔링을 만날 수 있다. 원유화 문화관광해설사는 “명성황후생가유적지는 역사
의식을 되새기는 교육의 현장”이라며 “조선 말기 국모의 탄생지로서 역사적 상징성을 보유하고, 비극의 역사
와 민족적 아픔을 기억하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이 명성황후를 국정혼란의 주범으로 정당화했던
역사를 바로 잡고, 외세에 맞서 조선의 자주권을 지키려 한 명성황후의 항일 정신을 기리는 장소인 만큼 역
사적 가치뿐 아니라 교육적인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 #여주시
- #여주시청
- #여주소식지
- #여주사람을품다
- #8월호
- #기억담음
- #명성황후생가유적지
- #명성황후
- #여주역사
- #여주유적지
- #여주볼곳
- #명성황후생가
- #조선의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