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타고

숲속 작은 여행

보통 내장산 하면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산’이라고만 떠오르실 겁니다. 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내장산 국립공원은 사계절 어느 때에 방문해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산입니다.

봄에는 연둣빛 새잎이 돋고,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이 산 전체를 감싸며, 가을이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단풍객들로 북적이는 단풍 명소로 손꼽힙니다. 겨울에는 하얗게 눈이 덮인 채로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그런 화려한 계절이 아닌, 이른 여름 초입의 잔잔하고 푸르른 풍경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장산은 개인적으로 추억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는데, 먼저 유년 시절에는 형형색색 완연한 단풍에 흠뻑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십여 년 전에는 친구들과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에 찾아 겨울 설경이 아름다운 내장산을 다녀왔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이후로도 내장산을 자주 찾을 정도로 내장산은 익숙하면서도 추억 가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임시주차장에서 우뚝 서 있는 바위가 보이는데요. 월영봉(427m) 길목 아래 있는 송이바위라고 합니다. 바위의 모양이 송이와 같다고 하여 송이바위라 부른다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당시 승군들이 왜군의 침입을 관측하던 곳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계곡물이 흐르는 울창한 숲길을 따라 대략 20분가량 걷게 됩니다. 포장도로 한쪽에는 차량이 지나가고, 그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는 단풍나무가 줄지어 선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여유롭게 걸을 수 있습니다.

길 양옆으로 펼쳐진 초록빛 터널은 마치 숲이 내어주는 환영 인사처럼 느껴집니다.

임시주차장에서 케이블카 탑승장까지는 약 1km 내외의 거리를 걸어야 하지만, 걷는 내내 내장산의 계곡물이 주는 비경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비수기에는 케이블카 바로 앞까지 차량으로 이동해 주차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느껴보지 않고 케이블카만 이용하는 것은 어쩌면 내장산의 매력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아쉬운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내장산 우화정

걷다 보니 마침내 우화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화정은 가을 단풍 때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벗 삼아 사진으로 담아내는 유명 포토스폿이기도 합니다. 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반영에 비치는 호수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죠.

케이블카가 목전에 다 왔습니다. 청록빛깔 가득한 초여름 내장산의 매력은 케이블카에서 이어집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장성 백양사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내장산 자락에 있는 탐방로라 그런지 어딘가 닮은 듯하면서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길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백양사 탐방로를 걸었던 기억이 이번 내장산 케이블카를 향해 오르는 길에서 문득 데자뷰처럼 떠오르더군요.

지난해부터 탐방안내소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입니다. 예전에 찾았던 탐방안내소에는 내장산의 매력을 전시하고 바닥 면에 아크릴판 형태로 가을 단풍을 장식한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과연 이번에 내장산 탐방안내소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문득 기대가 됩니다. 공사장 펜스에 당황하지 말고 왼쪽으로 우회하여 걸으면 케이블카 탑승장에 다다르게 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숲길 옆으로 '케이블카 타는 곳 →'이라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장산 케이블카 타는 곳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 사이로 붉은 벽돌 건물이 하나 나타나는데, 바로 내장산 케이블카 탑승장입니다. 건물 앞에는 간단한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매점이 있어 탑승 전 짧은 시간을 보내기에 좋습니다. 주차장도 가까이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입니다.

탑승권을 구매하니, 커다란 단풍 사진이 인쇄된 티켓이 손에 들어옵니다. 성인 왕복 요금은 10,000원. 20분 간격으로 운행됩니다. 매표소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탑승장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곧 케이블카가 도착합니다.

케이블카는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게 유지되어 있으며, 창밖으로 내장산의 푸르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탑승이 시작되자 케이블카는 서서히 산 중턱을 향해 올라갑니다. 와이어에 매달린 차량이 움직이며 소소한 진동을 전하고, 양쪽 유리창 밖으로는 짙은 녹음이 펼쳐집니다. 케이블카 천장에는 바깥공기가 통하게끔 문이 열려 있어 자연이 주는 천연 에어컨이 따로 없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빽빽한 숲 사이로 산길과 탑승장, 그리고 고요한 연못이 한눈에 들어오며, 초록의 바다 위를 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차량 내부는 비교적 여유롭게 탑승할 수 있어 편안한 이동이 가능합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다시 걷기 시작하면, 시멘트로 정비된 길과 나무 계단, 그리고 울창한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길 안내 표지판들이 눈에 띕니다. '연자봉 0.7km', '전망대 0.3km', '전망대 휴게소 0.3km' 등 이정표를 따라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코스로 이어집니다.

산책로는 비교적 완만하며 걷기 편한 흙길과 돌계단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나무 벤치가 놓여 있어 쉬어가기에도 좋고,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덕분에 여름철에도 걷기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길가에는 작은 돌탑들이 곳곳에 쌓여 있어 방문객들이 하나씩 소원을 담아 올려놓은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이 점점 더 탁 트이기 시작합니다. 작은 기념품점과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상점도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전통 정자 형태의 팔각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마치 초록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내장산의 능선이 사방으로 펼쳐집니다. 아래로는 케이블카 탑승장이 작게 보이고, 멀리에는 방금 지나왔던 우화정과 서래봉, 벽련암 등 주요 명소들이 푸른 숲 사이로 점처럼 자리합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능선과 절벽, 그리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숲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특히 서래봉의 비경은 마치 산수화의 고원을 감상하는 것 같이 장엄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서래봉은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고 하여 불린 이름입니다. 오래전부터 옛 조상들은 이렇게 산등성이에 서서 먹과 붓으로 담담하게 웅장하고 거친 산세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 표현해왔습니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서래봉 중턱 한가운데에는 벽련암의 모습이 보입니다. 산속 한가운데 자리한 사찰이라니. 벽련암이 위치한 고지만 하더라도 무려 330m에 달한다고 합니다. 벽련암은 백제 의자왕 20년에 환해선사가 창건하여 원래 내장사로 불리었던 사찰이라고 합니다. 근세에 와서 영은사를 내장사고 개칭하게 되고, 이후 백련사로 이름하다가 나중에 벽련암으로 고쳐 쓰게 된 것입니다.

벽련암의 비경은 독특한 비경에 신비롭기까지 한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벽련암을 꼭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망대 안에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으며, 망원경을 통해 멀리 있는 풍경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망원경 너머로는 내장사 경내의 지붕과 탑들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저 멀리 불출봉과 망해봉도 보이는데요. 불출봉은 부처가 출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불출봉에 구름이 끼면 가뭄이 계속된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며, 망해봉은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서해바다를 볼 수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전망대는 지붕과 기둥이 전통 단청무늬로 장식되어 있어 전통 건축미를 느낄 수 있고, 나무 난간과 데크로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오기에도 안전한 공간입니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다시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돌아가는 길. 올라올 때와는 또 다른 감성으로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던 돌탑과 짙은 숲 사이로 가끔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어우러져 조용한 숲속 산책을 선물합니다.

하산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길, 유리창 너머로 또 한 번 푸른 숲의 깊이를 실감합니다. 내려가는 길에서는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각도에서 내장산의 풍경을 다시 마주할 수 있어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탑승장 옆에는 내장산 케이블카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운영되어 온 이 케이블카는 해발 800미터 지점까지 올라가며, 약 5분의 운행 시간 동안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특히 2012년에는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촬영지로도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출연진들이 '몸으로 말해요' 미션을 수행하며 이곳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관광객들의 흥미를 더해줍니다.

내장산 케이블카 여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숲과 사람, 산과 풍경이 어우러진 감성적인 여정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 전망대에서 마주한 장쾌한 능선, 그리고 초록이 가득한 산책길은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됩니다.

가을 단풍철에만 찾던 내장산. 하지만 이처럼 여름의 싱그러움 속에서 즐기는 내장산의 매력도 결코 놓칠 수 없는 순간입니다. 자연이 주는 위로와 휴식,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감동. 다음 계절에도 다시 이곳을 찾아 또 다른 모습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내장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각기 다른 계절의 옷을 입고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




글, 사진 = 조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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