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주년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로 채워진 '대덕구 장동'의 공간과 메모리

광복절은 영예롭게 회복한(光復) 날(節)이란 뜻으로 1945년 8월 15일 수요일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8·15 광복을 맞아 한반도가 일제에서 해방되어 주권을 되찾은 일을 기념하는 해방 및 정부수립 기념일이자 대한민국의 법정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1910년대 후반 불씨가 꺼져가던 의병운동의 맥을 살려 새로운 민족독립운동의 깃발을 올리면서 이후 한국 민족 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논밭뿐인 시골마을에는 1959년 주한 미군이 육군 탄약창을 조성하면서 캠프 에임스가 들어섰습니다. 전재오가 피난 생활 해방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주민들은 미군 부대로 인해 급격한 마을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고 합니다.

올해는 광복 7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남녀노소 밤에 주변 산 위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거나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만세운동이 인근 충남, 강원, 경기지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던 3·1운동은 지나갔지만, 우리 민족이 광복을 이룬 8월 15일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봄이면 보리가 심겨 있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활짝 피던 대덕구 장동에 태극기라는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예전에 마을분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임시로 팔던 공간이 갤러리 더쉼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장동의 옛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작은 음식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장동에 살았던 독특한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모두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시절에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독특한 유대관계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서 그런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진골의 뜻이 있는 어른들이 전통문화나 미풍양속 잃지 말라고 태권도장을 직접 마련했던 이야기나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본 기억과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부대가 들어서게 되면 많은 상점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데요.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장동이지만 수많은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진골 서쪽과 장동초등학교 사이에 있던 욕골마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산디마을로 들어가는 길가 우측 산 아래에 있는 새뜸마을, 옛날에 절터가 있었다하여 텃골이라고 불리는 진골 남쪽에 텃골마을, 진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욕골과 이어진 새골마을 등의 이야기가 있네요.

일본이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6척으로 편성된 연합함대가 미합중국 자치령 하와이 제도의 오아후섬의 미국 태평양 함대의 기지를 공습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역사에는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행정동으로는 회덕동에 속하는 장동은 대전광역시 동북쪽, 대덕구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족산과 성재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내려가는 긴 골까지를 긴골 또는 진골이라고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 바로 장동이 됩니다.

태극기로 이곳을 채우니 또 다른 느낌의 마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벌써 8월도 중순에 들어섰습니다. 올여름도 잘 마무리하시고 늘 안전하고 건강한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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