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전
세종대왕의 후궁이었던 신빈 김씨 묘소를 가다!
"본 기사는 화성특례시 SNS 서포터즈가 취재한 기사입니다."
안녕하세요!
화성특례시 SNS 서포터즈 이재형입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독특한 제도 중의 하나가 후궁 제도입니다. TV 사극이나 영화에서 많이 나왔죠. 후궁 제도는 왕실에서 왕의 배우자로서 왕비 이외에 존재했던 후궁(後宮)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궁녀 중에서 왕이 마음에 들면 후궁으로 둘 수 있었는데요, 후궁도 관직처럼 품계를 주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의 후궁이었던 신빈 김씨 묘소를 가다!
오늘은 후궁 제도를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기 화성시에서 세종대왕의 후궁이었던 신빈 김씨 묘역을 소개하려 합니다. 신빈 김씨(愼嬪 金氏, 1406~1464) 묘역은 화성시청에서 멀지 않은데요, 화성시청에 갔던 길에 들렀는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갔던 날 빗방울이 떨어지고 잔뜩 흐린 날이었습니다. 신빈 김씨 묘역은 따로 주차장이 없습니다. 이곳은 역사 문화 유적지지만, 개인 사유지라 입구를 막아놓았는데요, 누가 따로 지키는 게 아니라 관람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입구에 차 한 대를 겨우 세울 수 있어 여기에 주차했습니다.
묘역으로 들어서면 홍살문이 우뚝 서 있습니다. 융건릉 등 왕릉이나 서원, 궁궐, 향교 등에 많이 세워져 있죠. 홍살문은 신성한 장소나 중요한 시설임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진 붉은색 칠이 된 문입니다.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이라고도 불립니다.
제가 신빈 김씨 묘역을 2년여 만에 갔더니 홍살문 옆에 한옥 한 채가 새로 지어졌네요. 신빈 김씨 제사를 지낼 때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종중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생각되는데, 안내판이 없어 자세한 용도는 모르겠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신빈 김씨 묘역 안내판이 나오는데, 글씨가 다 지워졌습니다. 외부 관광객이 많이 오는 화성시라 이런 관광 안내판은 깔끔하게 만들어야겠죠.
화성시 남양면 남양리 신빈 김씨 묘역은 경기도 기념물 제153호입니다. 경기도 기념물은 경기도 내에서 역사적, 문화적, 학술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경기도가 지정한 기념물을 의미합니다. 이곳이 개인 사유지라지만 경기도 기념물인 만큼 화성의 역사 문화 유적지로 관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도 기념물 표석을 지나면 제사를 지내는 전각이 있습니다. 관리상의 문제로 문이 잠겨 있어 안은 볼 수 없었습니다. 홍살문과 제향 공간 등은 비교적 최근에 세운 것으로, 애초에 묘역은 봉분과 석물, 신도비만 있었다고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곳 우측 언덕으로 올라가면 신빈 김씨 묘역이 나옵니다.
묘역 우측에 신도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안에 신도비가 있고요. 신도비는 조선시대에 주로 임금이나 종2품(從二品) 이상의 고위 관료의 무덤 동남쪽 큰 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로, 죽은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나무 창살 사이로 신도비가 보이는데요,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니 비석 앞뒤 모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비석 내용은 아마도 신빈 김 씨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해 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신도비각 옆에 신빈 김씨 묘역이 있습니다. 묘역은 문인석, 석등, 곡장, 상석 등으로 구성되었는데요, 후궁 묘이지만 조선시대 왕릉 못지않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후궁 묘에 문인석이 있는 것은 드문 일인데요, 그만큼 세종이 총애하던 후궁이라 그런가요? 신빈 김씨는 세종의 승은을 받아 후궁이 되었으며, 1427년(세종 9년) 장남 계양군을 출산한 이후 정2품 소의(昭儀), 1439년(세종 21년) 종1품 귀인(貴人)을 거쳐 정1품 신빈(愼嬪)으로 책봉되었으니 무덤도 품격을 갖췄습니다.
왕릉이나 조선시대 고위 관료 무덤을 보면 주변이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런 담장을 곡장(曲墻)이라고 합니다. 곡장은 한국 전통 묘역에서 무덤을 둘러싸는 낮은 돌담으로 신성한 공간을 보호하고 경계를 표시하는 구조물입니다.
앞서 홍살문 앞에 안내판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신빈 김씨 약력이 나와 있습니다. 신빈 김씨(본관 청풍, 1406~1464)는 본래 내자시(內資寺)의 여종(천민 신분)이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13세의 나이에 원경왕후(태종의 정비)에 의해 발탁되어 소헌왕후(세종의 정비)의 궁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극을 보면 후궁끼리 많이 싸우고 왕비와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잖아요. 신빈 김씨는 성품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소헌왕후의 신임을 얻었으며, 소헌왕후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신빈 김 씨는 세종대왕이 승하한 후 불가에 귀의해 59세로 여생을 마쳤습니다. 그녀가 죽은 후 세조는 쌀과 콩 70석을 부의금으로 줄 만큼 각별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후궁 중 많은 여인이 승은을 입고 하루아침에 출세했지만, 신빈 김 씨처럼 최고 품계인 정1품까지 오른 인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조선판 신데렐라 신빈 김 씨 묘역을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본 포스팅은 화성시 SNS 시민홍보단에 의해 작성된 글로, 화성시청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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