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민족교육자 이하복 고택
150년 전통초가
높은 지형에 주변을 압도하는 솟을대문의 위압감, 넓디넓은 앞마당을 품은 사랑채 처마 선의 날렵한 세련미, 반듯하게 잘 다듬어지고 반들반들 오랜 세월 잘 보존된 고풍스러움…, 전통 고택을 찾는 여행자라면 대개 느끼는 감정은 ‘탄성’과 ‘감탄’이고 세대를 호령했던 ‘위엄’과 ‘권위’입니다.
하지만, 충남 서천의 이하복 고택에서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초가지붕이었습니다. 쌍둥이처럼 좌우로 배치된 초가집은 볏짚을 엮어 지붕에 얹어 만든 살림집으로 짚으로 덮은 곡선의 포근함이 서민의 집입니다. 무심결에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예상했던 모습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이곳은 서천의 교육자 청암 이하복 선생이 살던 집입니다. 대략 150년 전인 19세기 말 왼편의 안채가 먼저 지어졌고, 살림을 늘린 20세기 초 오른편의 사랑채와 광채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중부지방 전통 농가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해 국가 민속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가옥 구조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왼편으로는 ‘ㄱ’자형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 안채 왼쪽 광채가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사랑채와 ‘ㅡ’형 아래채가 자리하고 있는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농가입니다.
전통 기법에 따라 안채 앞쪽 지붕은 뒤쪽보다 길게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부엌과 방 2개가 있는 3칸 집이지만, 왼쪽으로 부엌을 늘리고 오른쪽으로 대청과 부엌, 헛간을 겸하여 사용한 ‘헛청’을 덧달았습니다. 사랑채에는 안쪽에 대문이 있는 부엌과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통가옥 구조뿐 아니라 세간도 잘 보존되어 있는데다 교육자이자 농촌계몽운동가로 활약했던 선생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민속문화재로 가치를 높이 받는데, 저는 무엇보다 이하복 선생의 삶에 깊은 경외심을 보내드립니다.
그는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결코 관직에 나아가 일제의 녹을 먹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평생 지킵니다. 보성전문학교 재직시절 “학생들이 (일제의)학도병으로 끌려가는 현실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교수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내려와 8만 여 평 집안 재산을 모두 사용해 어린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합니다.
일제 강점기 자신의 어린 제자들에게 ‘황국신민’과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학도병과 정신대로 내몰고도 광복 이후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교육자’임을 내세워 다시 대학총장으로, 고관대작으로 호령하며 철저한 위선자의 삶을 살았던 거짓 교육자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최근 역사왜곡 논란과 함께 우리의 귀감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택 내부에는 옛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생활 도구가 잘 보존되어 있고 친절한 해설사의 안내가 있습니다. 방문자에게 친절히 광문을 열어주던 해설사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며 “앞으로 백 년 후에는 초가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는 선생의 신념에 따라 초가지붕을 개량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실제 이 고택은 새마을운동 기간에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초가집을 남겼습니다.
평소에 쓰던 물건들을 허투루 버리지 않았던 이하복 선생이 평생 모은 물건들은 거의 근대 박물관 수준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옛 맷돌과 멍석들은 정겨운 초가집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소달구지와 지게 등 농기구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주방 용품들을 모아 놓은 광은 선반을 매달기 위한 대나무가 벽을 뚫고 지나가는데 서민들이 당시 많이 사용하던 사기그릇과 목그릇, 소반 등 정갈히 사용된 살림살이가 이집의 생애와 안주인의 살림 솜씨가 엿보이게 합니다.
아래채의 광에도 당시 상용된 물건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꽃가마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하복 선생이 혼인할 때 신부가 타고 왔던 사인교는 당시 13세 신부가 사용했던 것으로 크기가 비교적 작습니다. 가마 안에는 신부의 이동식 화장실인 요강과 볼일 보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도록 깔아주는 짚신도 있었습니다. 이 가마는 이하복 선생의 혼인 이후 동네 신부들에게 빌려 주며 100년의 세월을 사용해 왔습니다.
흥부전에 등장하는 화려한 옷장인 '화초장'도 있습니다. 이하복 선생의 신부가 신접살림으로 가져 왔다고 하는데, 초가집 스테이를 하는 방에 있어 운치를 더해줍니다. 이 방에서 하룻밤 머물며 잘 차려진 저녁과 아침을 먹고는 한복을 차려입고 전문사진사의 촬영서비스를 받으며 옛적을 소환하는 향수에 젖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청암 이하복 선생의 고택에는 150년 세월 사람의 손때가 고스란히 박물관이 되어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에 대한 책임(노블리스 오블리제)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하복 고택
충남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 -57번길 32-3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장군바라기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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