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전
공릉천 아래, 용치를 만나다
최근 공릉천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낯선 풍경 하나와 마주했습니다. 고양시 덕양구 지영동, 공릉천 지영교 아래쪽. 하천 한가운데에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줄지어 서 있더라고요.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용치’라는 이름을 가진 전쟁 방어 시설이었습니다.
모양이 꼭 커다란 이빨처럼 생겨서 ‘용의 이빨’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요. 일부러 꾸며놓은 예술 조형물 같기도 했지만, 사실은 북한군 전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1970년대 이전에 설치된 대전차 장애물이라고 합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물살이 흐르는 방향을 가로지르듯 겹겹이 놓여 있었어요. 상부는 타원형이라 그런지 강한 인상을 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형태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군사 기밀이라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을 이런 시설이 지금은 이렇게 산책길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게 참 묘한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용치를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전쟁이 정말 가까이 있었구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늘 우리가 사는 이 도시, 고양은 평화롭고 조용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휴전선까지 불과 10여 km 거리였고,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지역 중 하나였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군사시설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거겠죠.
사실 이곳은 지금 산책로로도 좋고, 인근에 자전거도로도 잘 되어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운동 삼아 찾는 평화로운 공간이에요. 그런데 그 한가운데, 이렇게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조금은 마음을 무겁게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섭거나 차가운 느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이 용치들이 과거의 상처를 조용히 지켜보는 증인처럼 느껴졌달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콘크리트에는 이끼도 끼고, 주변엔 풀도 자라났지만, 그 존재감은 여전히 뚜렷했어요.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이지만, 저에겐 짧은 산책길에서 뜻밖에 만난 작은 역사 공부였던 셈입니다.
요즘처럼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자주 들려오는 시대에, 가까운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공릉천 용치는 화려하지 않지만, 분단의 현실을 조용히 말해주는 고양의 풍경 중 하나입니다.
다음에 공릉천 산책을 하게 된다면, 지영교 아래에 서 있는 그 용치들을 한번쯤 천천히 바라보세요. 그리고 이 평화로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잠시 생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 #고양시소셜기자단
- #용치
- #공릉천
- #공릉천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