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역사의 흔적이 숨 쉬는 곳 진해 웅천읍성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의 현장을 찾아보는 일은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온 세상이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는
봄날에 일본 방어 최전선 기지였던
진해 웅천읍성을 걸었습니다.
웅천 역사 둘레길 코스는
제5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제1코스에 속해 있는
웅천읍성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이 둘레길 코스를 따라
다양한 유적지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합니다.
웅천읍성은 경상남도 진해시 성내동에 있는
산성으로 조선 세종 21년(1439)에
만들어졌습니다.
1407년 일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항구를 열어
무역을 하던 곳인데 일본인의
불법 이주가 많아지자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해
읍성을 쌓았습니다.
문종(1451)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 서. 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중종 5년(1510)에는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어 소실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남해안을 방어하는
주요 거점으로 사용되었지만,
고종 32년( 1895) 읍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하네요.
웅천읍성은 원래 정사각형의 모양이었는데,
여러 차례 고치는 과정에서 현재처럼
직사각형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읍성의 전체 둘레는 936m로
현재 남아 있는 길이는 약 500m이며,
성벽의 폭은 4, 5m 높이는 4, 4m입니다.
성벽은 땅과 수직이 되도록 쌓았으며
큰 돌 사이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네요.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그렇게
쌓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서벽과 남벽은 일부가 남아 있는데
민가와 도로 등이 들어서면서
일부 훼손이 되었다고 합니다.
북벽은 부산 간 국도를 건설하면서
철거되었으며 성의 동벽만이
동문 터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이제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해자입니다. 해자는 성벽 밖에
도량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입니다.
웅천읍성은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
해자를 두어 적을 보호했습니다.
해자 벽은 크기가 다른 돌을
불규칙적으로 쌓았으며,
바닥에는 적이 건너지 못하도록
뾰족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세웠다고 합니다.
주변에 가시로 둘러싸여 있는
탱자나무가 보이시나요?
이 탱자나무 역시 그 당시
방어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해자 조교는 해자를 건너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여닫게 방식의 다리입니다.
해자를 가로질러 나무로 만든
다리를 놓고 줄을 매달아
필요한 경우에는
다리를 들어 올렸다고 합니다.
웅천읍성에서는 동쪽 출입문을
지키기 위해 쌓은 웅성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이나 방형으로 쌓은 작은 성)
바깥 해자 터에서 조교의
하부 구조로 추정되는 나무 기둥이
4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옹성(甕城)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다시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아 이중으로 쌓은 성벽입니다.
성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웅성을 먼저 통과해야 하며,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웅천읍성의 동문 옹성은
반원형으로 채성부(성벽의 몸체 부분)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이후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치성(雉城)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감시하거나 성벽이나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시설입니다.
웅천읍성의 치성은 모두 6개로 모서리에
4개 동쪽 성벽, 서쪽 성벽에 1개씩 있습니다.
수구는 성벽에 있는 배수시설 중
하나로 성벽 밑이나 중간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성 바깥쪽으로
물이 흘러 나가도록 만든 시설입니다.
웅천읍성에는 동북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
수구를 각각 1개씩 두었습니다.
현재의 웅천 초등학교 자리에
객사가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객사에서 사용한 오수를 내보내었던
시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동문루를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루는 궁문, 성문 등의 출입문 위에
높게 지은 건물입니다.
문 아래쪽에는 출입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게 하였으며,
전투할 때 지휘소로 이용하기도 한답니다.
웅천읍성에는 4개의 대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견룡문, 서문은 수호문,
남문은 진남루, 북쪽은 공신문이라 불렀습니다.
동문 터의 폭은 2.8m 내외로
처음 세운 이후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거쳤습니다.
2011년에 복원된
웅천읍성 동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루이며
화려한 팔각지붕을 얹었습니다.
지붕 위에 동그란 박공이 달려 있고
용마루 부분에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으로 건물의 옆면에서
보면 여덟 팔자 모양을 하고 있어
팔각지붕이라 부릅니다.
석환(石丸)은 성곽 주변의 하천이나
해안가에 산재한 돌을 성 위에
마련해 두었다가 적이 접근하면
던지는 무기입니다.
읍성 주변에서 발견된
석환은 원형, 타원형, 부정형으로
어른의 주먹만 한 것에서부터
성인 남성의 머리 크기만 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석환이 발견되었습니다.
명문석은 성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과 출신 고을의 이름을 새긴 돌입니다.
구간에 따라 책임자의 이름을 기록하여
읍성을 지은 뒤 발생하는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웅천읍성의 명문석에서
지명이 확인된 곳은 진주, 창녕, 합천으로,
당시 웅천읍성을 쌓기 위해
경상도 전역의 백성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웅천 역사 둘레길 제1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웅천읍성을 천천히 걸어보니 어떠신가요?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지키기라도 하듯
그때는 방어시설이었던 탱자나무에 꽃이 피고,
철쭉도 활짝 펴 환한 미소를 머금고,
민들레는 어느새 홀씨 되어 날아가려 합니다.
봄의 한가운데에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우리가 소중한 문화적 유산을
보전하는 것은 잊지 않고 찾아보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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