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일 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전주이씨 집성촌, 입향조 이오륜 유허지와 익안대군 영정각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전주이씨 집성촌
입향조 이오륜 유허지와 익안대군 영정각
조선시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에는 집성촌이 형성돼 있습니다.
논산시에도 여러 성씨 집성촌이 있는데,
계룡시에서 논산시 연산면으로 접어들면서 만나는 화악리는
전주이씨 집성촌이었고 지금도 전주이씨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화악리에 들어서면 논산시 보호수인 느티나무 뒤에
'전주이씨 화산이공휘오륜유허'라고 새긴 비석이 있습니다.
전주이씨 이오륜이란 분이 이곳 화악리에 들어와서 터를 잡고
이곳이 전주이씨 집성촌이 됐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초중기에는 장남이 아니면 처가가 있는 곳으로 장가를 갔죠.
비석 뒤의 언덕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1400년대 익안대군 이방의의 증손자인 이현동이 연산면 청동리 가평이씨 집안의 사외가 됐는데,
세조가 계유정난으로 단종의 왕위를 빼앗았을 때
정치적인 소요를 피하기 위해 장인의 동네인 논산 벌곡면 조령리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이 관직에 나아가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고 합니다.
같은 집안의 세조가 조카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고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종친으로 조용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이후 4세손인 이봉주가 연산면 화악리의 여산송씨와 혼인했는데
아들인 이오륜이 외가 마을인 화악리로 이주하면서
전주이씨가 화악리에 터를 잡고 번성했다고 합니다.
여산송씨보다 가문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화악리는 전주이씨 집성촌이 됐다고 합니다.
이런... 그럼 이후 여산송씨 집안은 어떻게 됐을까요?
비석에서 논 건너편 왼쪽으로 보이는 익안대군 영정각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에는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각이 있습니다.
익안대군이 화악리에 들어와서 살았던 것은 아니고,
익안대군의 8세손 정도로 계산되는 이오륜이
화악리 전주이씨 집성촌을 이루게 된 입향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있는 비석에는 이오륜의 이름과 함께
이곳에 이오륜의 유지였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비석이 있는 오계농장 부근에서 논 건너편으로 익안대군 영정각이 보입니다.
영정각 너머 산자락에 보이는 무덤은 전주이씨 무덤이라고 합니다.
영정각으로 가는 길에는 마을 정자가 하나 있는데, 아주 럭셔리합니다^^
소파도 있고 샹들리에까지~~!
계단을 올라가면 영정각입니다.
익안대군 이방의(1360~1404)는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
고려말에 함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후에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익안군에 봉해졌고 개국공신 1등으로 추록됐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아들이 8명이나 됐는데 첫 부인인 신의왕후에게 6명의 대군을 낳았지요.
왕은 아들이 없으면 왕위를 이어가는데 문제가 크지만
아들이 너무 많으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한 명이 왕이 되면서 나머지의 입지가 애매하게 되니까요.
큰 아들 진안대군은 고려와 관련이 많아서 왕위에서 배제되며 과음으로 세상을 떠났고
다섯 째 아들인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올랐는데
'정종'이란 묘호를 받은 것은 사후 무려 262년이나 지난 숙종 때였다고 합니다.
정종은 정치를 모르고 야심도 없는 무인 기질이라
왕위에 큰 관심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계는 왕위를 두번째 왕비 신덕왕후에게 얻은
여덟째 아들 의안대군 이방석에게 왕위를 계승할 생각이었는데
다섯 째 아들인 이방원은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며
형인 정종의 양자가 되는 형식을 취하며
세자로 책봉됐고 이어서 왕위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자식 중 유일하게 문과 급제를 할 정도로
똑똑한 야심가였다고 합니다.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익안대군 영정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그리고 태종의 형인 태조의 셋째 아들이 바로
이 영정의 주인인 익안대군 이방의입니다.
안내판에서는 출생 연도가 미상으로 되어 있는데,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이방의는 1360에 태어나
140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동생인 이방원이 왕자의 난(1398, 1400)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건강도 좋지 않았는지 140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전각 뒷산에 있는 전주이씨 무덤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니
영정각의 기와지붕 위에 눈이 남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건너편으로 논을 지나 산자락 아래에
후손인 이오륜의 집이 있었을 것입니다.
콩떡 담장을 두른 영정각은 상당히 관리가 잘되고 있는 듯
매우 깔끔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주변에 대나무숲이 울창해서 이곳이 조선시대부터
전통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영정각에서 내려오면 마을길을 따라
주변에 재실로 보이는 기와 건물이 두 채 있습니다.
안내판도 없고 오래된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연산면 화악리 마을길을 걸으면 조선왕조 초기,
왕위 계승으로 혼란헀던 이야기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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