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전
시간이 머무는 자리, 낙덕정과 김병로 생가
시간이 머무는 자리,
복흥면 낙덕정과 김병로 생가를 걷다
쉼이 필요한 당신에게
일상이 버거울 때, 우리는 종종 아무 목적 없이 길을 떠납니다. 마음이 머무를 공간을 찾고 싶어지는 순간 말이지요. 그런 날, 저는 순창군 복흥면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순창에서도 가장 고요한 마을 중 하나인 이곳에는, 세월의 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두 장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낙덕정(樂德亭)과 김병로 생가입니다.
낙덕정 – 덕을 즐기며 자연을 품은 정자
복흥면 서마리, 조용한 시냇물 옆 바위 위에 세워진 낙덕정은 1900년, 조선 중기 명유(名儒) 김인후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 김노수가 세운 정자입니다. 김인후는 조선 인종의 세자 시절 스승으로, 학문적 깊이와 도덕적 절개로 널리 존경받은 인물입니다.
1545년 을사사화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순창으로 낙향한 그는, 이곳에 훈몽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낙덕정이 위치한 이 일대는, 그가 특히 아끼던 경승지(景勝地)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낙덕정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숲과 물이 어우러진 이곳은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을지 모릅니다.
낙덕정은 팔각 단층의 구조로, 20세기 초반에 건립된 정자 중에서 보기 드문 양식을 자랑합니다.
단아하면서도 견고한 그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기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 되는 김병로 선생이 어린 시절 이 정자에서 공부를 했다는 구전입니다.
선비정신이 스며든 공간이 세대를 넘어 또 다른 선비를 길러낸 셈이지요.
김병로 생가 – 법의 양심을 지킨 초대 대법원장의 뿌리
낙덕정에서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가인 김병로(1887~1964) 선생의 생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담담한 한옥과 마당, 주변을 감싸는 들녘이 그의 소박한 성장 배경을 짐작하게 합니다.
김병로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으로서 민족을 위한 변론을 이어갔고,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어 사법부의 독립과 정의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법은 강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그의 신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걸으며 마음을 고르다.
복흥면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조용한 길 위에는 선비의 숨결과 초록의 위로가 흐릅니다.
낙덕정의 정자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듣고,
김병로 생가 앞에 서서 묵직한 정신을 떠올리다 보면,
세상의 속도가 잠시 느려집니다.
무언가 쓰기 싫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이라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
복흥면을 천천히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가인 김병로 생가터
순창군 복흥면 하리길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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