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강물 따라 시간을 걷다-오산 관어대 이야기
슬기로운 태화강 국가정원 탐구생활 ④-오산(鰲山) 관어대(觀魚臺)
태화강 국가정원을 찾는 이들은 대개 꽃길을 걷고, 대숲의 운치를 즐기며, 명정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의 한편, 조용히, 아주 오래도록 세월을 지켜온 자리가 있다.
마치 아무도 보지 않아도 그저 거기에 있어야만 했던 것처럼, 오산(鰲山)과 관어대(觀魚臺)는 그렇게 태화강 물줄기 곁을 묵묵히 지켜왔다.
'자라(鰲)’를 닮은 산이라 하여 붙은 이름 오산. 그리고 ‘고기를 감상하는 곳’, 즉 관어대.
한자만으로도 이곳은 자연과의 깊은 교감, 그리고 사람과 물고기, 강과 삶이 맞닿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이곳에 도착하려면 다소 경사진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걸음을 옮기며 마주하는 노란 갓꽃과 대숲, 그리고 울창한 나무들.
그 아래 바위에 새겨진 문자가 눈길을 붙든다.
관어대(觀魚臺), 이름부터 생소하지만 한 번 가보면 깊은 울림이 남는다.
그 아래엔 자라의 형상을 닮은 그림 그리고 자연과 함께한 조선시대 선비 서장성의 시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말정에서 생장하여
오산에서 늙어 죽으리.
맑은 강물은 십리에 뻗치고
푸른 대나무가 천 그루네.
무덤은 1묘 가량이요
정사는 몇 칸이라.
세월은 비록 멀어지더라도
구전을 통해 여전히 전해지리.
이 시는 한 사람의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물과 바람, 대숲과 정자 속에서 평화롭게 늙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바위 위 자라의 형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저 동물의 이미지일까, 아니면 장수를 기원하고 자연과 하나 되는 존재로서의 삶을 상징한 것일까.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음이 오히려 깊은 감정을 남긴다.
관어대의 물가에 앉아 강을 바라보면 마치 조선의 선비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마음의 흐름을 가라앉히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여기서 바라보는 태화강은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일부요, 사색의 무대다.
‘팔뚝만한 고기’가 유영하고, 바위그림에 새겨진 학 같은 새들도 오간다.
이름조차 몰랐던 이 장소는 사실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풍경 중 하나일지 모른다.
관어대 인근에는 만회정(晩悔亭)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박취문(朴就文)이 세운 이 정자는 그의 말년 안식처이자 벗들과 지적 교류를 나누는 장소였다.
1800년대 소실됐던 이 정자는 2011년 울산시의 손길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시민의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오산과 관어대는 단지 ‘강변의 예쁜 풍경’이 아니다.
이곳은 시간을 품은 자리이며 선조들의 호흡과 시선이 고스란히 새겨진 문화적 지층이다.
태화강 은하수다리 아래로 보이는 오산과 관어대, 그리고 만회정은 사람보다 자연이 주인인 곳이다.
역사가 숨 쉬는 이 작은 공간에 잠시 멈춰보자.
진짜 울산, 진짜 태화강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여기를 ‘태화강의 변두리’라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여기가 태화강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물고기 한 마리도 자유롭고 나무 한 그루도 당당한, 그리고 사람이 겸손해지는 공간.
시간이 머무는 이 자리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용히 되묻게 된다.
태화강 국가정원, 그 속 깊은 곳.
오산과 관어대는 잊혀서 더 아름다운 울산의 보물이다.
한 번쯤 그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손끝으로 따라가 보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지금 어디쯤 걷고 있는가.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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