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진천 여행 보재 이상설 기념관과 이상설 생가에 다녀오다
안녕하세요. 진천군 서포터즈 한순이입니다. 곧 개관을 앞둔 보재 이상설 기념관과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진천읍 산척리 134-2)에 위치했어요.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로 1987년에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설 선생 생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이상설안길 1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 1917)은 대한제국 의정부 참찬 등을 지냈어요. 조선 말기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죠. 이상설을 의사 이상설, 보재 이상설, 이상설 선생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죠. 보재 이상설은 신학문을 깨우쳤고,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하였다고요. 근대 수학 교과 산술신서(算術新書)를 집필해 수학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고요.
이상설은 학자이신 이행우의 아들로 태어나 18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 한성 사범학교 교관 역임하였어요. 의사(義士) 이상설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길에서 연설을 하였고 1907년에는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어 활동하였고, 이후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이바지하였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1910년에는 한일합방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어요. 1914년 러일전쟁 1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을 주관하고 정통령에 선임되기도 했다고요.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1917년 망명지인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사했지요. 시간이 많이 흘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조선 말기 이상설이 태어난 집이 잘 보존된 이상설 생가는 진천의 대표적인 여행지입니다. 문화 여권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이고요. 개관시간은 오전 10시 ~ 오후 5시까지입니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추석 연휴이고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이상설 선생님이 독립운동을 위한 다양한 업적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관은 관람을 못했어요. 운영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지요. 이상설 선생과 헤이그 특사에 관련된 자세한 기록들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쉬웠어요.
이상설 생가는 안채와 헛간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어요. 옛 초가집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좋았어요. 약 40년 전에 무너진 것을 1988년에 복원과 수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가옥은 앞면 3칸과 옆면 1칸 규모로 흙벽돌로 쌓고 진흙으로 마감하였죠. 초가지붕을 다시 올리겠지만 잘 관리되어 오랫동안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숭열사는 항일투사 이상설 선생의 존영을 모신 사당입니다. 1972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세워진 목조와가 9평의 맛배집으로 된 사당과 숭모비를 1997년 3월 2일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현재의 사당은 22평으로 중건되었고, 숭모비의 비문은 이은상이 짓고, 비명은 이범석이 쓰고 이상복의 글씨로 되었으며 5평 8작 목조집이라고 합니다.
개관을 준비 중인 보재 이상설 선생의 기념관입니다. 기념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9349m2 터에 1508m2 규모로 세워진다고 해요. 보재 이상설 선생의 기념관에는 전시관, 교육관, 강당 등이 있다고 합니다.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와 지역 주민들은 기념관 건립을 위해 2016년부터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요. 진천군에서는 진천을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산실로 만들고자 한다고요. 지역 주민과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찾아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개관을 준비 중인 보재 이상설 선생 기념관 뒤편으로 가보았어요. 생거진천 들녘이 넓게 펼쳐집니다. 생거진천쌀로 지은 밥이 생각납니다. 오후 다섯시가 넘었으니 약간의 시장기가 돕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노라니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 선조들의 나라사랑이 머리를 스칩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얼과 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데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념관이 되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주차시설도 매우 넓습니다. 내년 상반기 개관 예정인 진천 보재 이상설 선생 기념관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 총 사업비 82억 원을 들여 조성하는 기념관의 내부는 연말까지 공사 완료한다는 계획인 듯합니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보재 이상설 선생의 생가와 영정을 모신 사당인 숭열사와의 어우러짐만으로도 따뜻한 감정이 들었어요. 다음엔 숭열사에 모셔져 있는 이상설 선생의 영정에 인사드리러 다시 한번 찾아가 보려고요. 이상설 선생의 인생 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물전시관도 관람해야죠.
이상설 생가 앞으로는 시설이 깨끗하고 아담하게 지어진 화장실이 있어요. 보재 이상설 선생 기념관이 개관되면 다시 한번 방문하려고요. 이상설 생가와 건립 중인 기념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운치가 있었지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보재 이상설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 진천군 서포터즈 한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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