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천상의 오묘한 풍경, 재약산·천황산 운무 속을 걷다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예정되어 있었던 영남알프스 재약산 천황산 등정을 감행했습니다.
우려한 대로 들머리인 주암계곡 입구에 접어들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앞에 불끈 솟은 삼종태바위를 휘감고 도는 운무가 오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 덩어리가 보이는 배모양 삼종태바위(주계바위)가 위용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오는 징조인가요. 짓궂게 내리는 비를 맞은 나무들이 신음소리를 내는 듯했습니다.
주암계곡은 사자평에서 발원하여 길은 10리로 영남알프스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명소입니다.
한 손에 듣 비닐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산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걸어가라 일러 주었습니다.
내린 비와 눈이 녹아 불어난 주암계곡 물소리가 청아한 봄의 연가로 들려왔습니다.
주암마을에서 겨울 가랑비를 맞으며 4.6km를 걸어서 능선을 사자평 주막까지 도착했습니다.
주암계곡길의 곳곳이 비에 젖어 위험했고, 너덜 길 구간이 많아 걷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비를 맞고 우두커니 서있는 빈 주막의 주인은 출타 중인지 인척이 없었습니다.
휴식도 없이 여기서부터 2.2km 떨어진 재약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내린 눈이 빗물에 녹은 탓인지 등산길은 질퍽해서 걷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운무가 자욱한 눈 덮인 산이 두려웠습니다. 멧돼지 출몰이 두려워 지팡이를 두드리며 긴장해서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밟아 보는 눈 밟히는 소리가 경쾌해 동심을 소환했습니다.
그리고 설경이 천상의 오묘한 풍경으로 변해 마음속의 속진을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운무가 자욱하게 밀려와 앞길을 가리고, 눈을 덮은 나무들이 묵언수행 중인 영락없는 천상이었습니다.
앙상한 가지들까지 오묘한 절경을 보여주고 있는 세상에서 내키는 대로 호강을 누렸습니다.
비를 맞으며 2시간여 만에 짙은 운무로 덮인 천상의 세상 재약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재약은 실을 재, 약 약자를 써서 재약산이라 하고 약발이 있는 산이란 뜻이 있습니다.
빗물에 젖은 바위들이 미끄러워 위험구간이 많아 여차하면 안전사고가 날 것 같았습니다.
등산객들을 안전을 감안해서 재약산은 영남알프스 8봉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했습니다.
북쪽의 가지산을 비롯한 운문산, 동쪽에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운무로 덮여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낙동정맥의 산과 영축지맥이 회색 운무에 덮여 온갖 사유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유혹했습니다.
산 아래 펼쳐진 넓은 사자평 억새밭은 짙은 운무로 덮여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영남알프스 억새밭은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60만여 평, 간월재 10만여 평, 사자평 125만여 평입니다.
이곳을 연계시켜 약 15억 원을 들여 '하늘억새길'을 조성했으며,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도롱뇽이 사는, 환경청이 지정한 국내 최대 산지습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상에서 미끄러운 눈길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어렵사리 하산을 해서 사자평 억새밭에 섰습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자욱한 운무로 덮인 넓은 평원이 수만 가지 영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인 화랑도가 호연지기를 길렀던 수련장이었던 광활한 사자평입니다.
허리춤에서 창칼을 뽑아 들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달리는 화랑의 영혼들이 나타날 듯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이곳에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울창했던 숲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러나 소백산맥에 가로막힌 울산 내륙에는 눈이 적게 내린 점을 알고 스키장 개발은 허무하게 무산됐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 단지였던 이곳이 불에 타서 사라지고 억새와 고사리가 자라는 고산습지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후 이곳에 80여 가구 화전민들이 고사리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고사리 마을이 생겨났습니다.
1966년 밀양 산동초등학교 고사리 분교가 생겨나 교실 한 칸에 서너 명 학생, 선생님 한분이 있었습니다.
그 후 빨치산 토벌작전과 미군의 폭격에 주민들은 이주했고 분교도 1996년 폐교되었습니다.
빗줄기는 계속해서 우산을 때리고 천황산을 오르는데 세찬 바람까지 휘몰아쳤습니다.
악천후에도 얼음골 케이블카 덕분에 전국의 많은 등산객들이 도전하고 있어 고무적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전국의 등산객들이 영남알프스 8봉마다 북적거렸을 건데 악천후인 오늘은 15여 명 내외로 한산했습니다.
사자평 삼거리에서 휴식을 취한 뒤 천황산 1.8km 등정을 시작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1,189m 정상에서 바라본 사자평은 운무에 휩싸여 평온 그리고 천상의 오묘한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산봉우리들의 풍경에 감복하고 그리움같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천황산의 원래 명칭은 사자산이었습니다.
1995년 '왜곡된 지명 되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은 후에 사자봉으로 복원시켰습니다.
밀양시에서 '천황산'이라는 지명이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하며 국가지명위원회에 명칭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울산시에서 이는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국호가 대한 제국으로 변경된 후 '천황산'이라 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국가지명위원회는 명칭을 천황산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상에서 샘물상회까지 걷는데 눈이 녹아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잎이 여전히 푸른 소나무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위험천만한 산행을 한 내게 산은 반성하라고 심하게 다그쳤습니다.
그 벌로 샘물상회에서 배내골 주차장까지 이정표를 따라 긴 산림도로를 따라 걷게 했습니다.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위험한 산림도로를 걸어 장장 6시간 만에 산행을 마쳤습니다.
무릎이 아리고 힘든 산행이었지만 영남알프스의 깊은 맛을 음미했습니다.
산은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결행한 나는 넘어져 다치고, 고된 벌까지 받았습니다.
저의 벌을 교훈 삼아 위험한 산행은 삼가 해 주시고 늘 안전 산행을 강력하게 권유해 드립니다.
좋은 날 울주의 주력 관광지 영남알프스에 도전장을 내고 인생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울주군
- #재약산
- #천황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