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시간 전
진주의 지나온 천년, 다가올 천년을 만나다! 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 | 시민명예기자
1,000여 년의 시간.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득한 천 년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은 곳이
천년 고도 진주입니다.
천 년 진주의 지나온 역사를
오늘날 우리에게 연결해 줄
특별한 전시<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가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오는 8월 24일까지
기획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 반가운 소식에 한달음에 진주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진주 도심에 있는 진주성은
어디서든 접근하기가 좋습니다.
동쪽에 있는 동문 격인 촉석문을 비롯해
북문인 공북문과 서장대 아래 서문이 있습니다.
진주대첩 역사공원 지하에 차를 세우고
촉석문을 지나 진주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남강을 곁에 두고 동서로 길쭉하게 있는
진주성을 온전히 느끼며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에 발만 들였는데 번잡한 도심의 일상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푸른 하늘과 하늘을 닮은 남강이
우리를 시원하게 맞이합니다.
남으로 난 성곽을 따라 가면
국립진주박물관이 나옵니다.
박물관이 가까워지자
지사들이여,
모두 일어나 의로운 칼을 들어
나라를 구하고 왕은에 보답할지어다~
라는 의병장 고경명의 글귀를 비롯해
곽재우, 김시민, 이순신 장군의 외적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자는 격문들이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바로 곁에 있는
국보 산청범학리삼층석탑으로도 가보았습니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 만들어진
석탑 가운데로 햇빛이 찬란하게 빛 줍니다.
덩달아 두 손을 모으고 탑돌이를 합니다.
탑과 인사를 건네고 박물관으로 향하자
<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 걸개그림이
오는 이들을 반깁니다.
국립진주박물관에 들어서면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특화 상설 전시장도 있습니다.
그 곳을 지나면
오늘의 도착지인 기획 전시실이 있습니다.
기획 전시실로 향하는 길목에는
‘진주목(晉州牧)은 천여 년 동안
경상도 서부 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라는
<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 글귀가 먼저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오늘날의 진주시와 달리 천여 년 전의 진주는
고성군·남해군·사천시·산청군·하동군의
일부 지역을 포함했던
광역단체급의 행정구역이었습니다.
옆으로 진주와 한국 역사가
위아래로 나란히 주요 역사 시간 순서로
우리에게 천 년 역사 속으로 들어오도록 합니다.
맞은편에는 지리산 천왕봉 바위글씨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오늘날 천지가 크게 닫혔다고 하는데,
다시 열리는 기미는 언제쯤일까?
오랑캐를 크게 통일해 문명이 밝게 빛나고
넓게 퍼져가는 날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다.
1924년 문인 묵희(墨熙, 1875~1942)가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어,
일제를 물리쳐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며 지은 글에서
일제강점기 시대 진주인의 바람을 엿봅니다.
진주목(晉州牧)이라는 행정명이 주는
묵직한 무게를 접하고 전시실로 발을 옮기자,
선사시대부터 우리를 이끄는 시간 여행자와 같은
전시물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 ‘진주’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
전시물은 우리에게 질문을 먼저 던집니다.
아울러 지난 천 년 동안의
진주목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권합니다.
진주목과 오늘날의 진주시 면적을 비교한
전시물에서 진주목의 규모를 느낍니다.
맞은 편에는 조선 후기
진주 지역 행정사무를 맡아보던
기관들을 살펴볼 수 있는
진주성도(晉州城圖)가 나옵니다.
경상우도 전체의 군사 업무를 맡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와
진주목을 행정적으로 다스리는 진주목사가
함께한 진주의 병영과 진주목 관아, 객사, 향교 등이
남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당시를 볼 수 있게 합니다.
마치 대한뉴스를 보듯 시간을 거슬러
조선 후기로 떠나자,
맞은편에는 객사 터에서 발굴된 석장승 1쌍이
우리와 눈을 마주칩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에
덩달아 미소가 스며듭니다.
석장승의 배웅을 뒤로하자,
지리산과 남해에 접한 큰 고을,
진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진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촉석루가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다시금 붙잡습니다.
1624년 경상도 관찰사 이민구가 순행할 때
도내 인사들과 함께 진주 촉석루에 모여
연회를 그린 그림 ‘세전서화첩’이
우리를 연회 속으로 이끕니다.
촉석루의 아름다운 풍광에 잠시 넋을 잃자,
맞은편에서는 왜 진주가 천년이 넘었는지
일러주는 전시물들이 손짓하며 부릅니다.
지금의 진주시장에 해당하는
진주목사 임명장과 진주목사를 역임했던
손소의 초상까지.
우리는 잠시 조선 시대 진주목으로 성큼 다가섭니다.
이들 곁을 지나면 서울에 유학하러 가서
과거에 합격한 진주 사람 정지원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에게
조선 조정에서 내린 선무공신 교서와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진주성도 등이
우리를 더욱 가까이 진주 역사 속으로
빨려들게 합니다.
1895년 5월 지방제도가 개편되면서
진주목은 진주부로 바뀌었고
1896년 기존 22부제에서 13도제로 바뀔 때
진주는 경상남도 21개 군을 관할 하는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는 역사와 만납니다.
1925년 지역민의 반대에도
일제는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겼습니다.
지금의 경남도청은 부산에서
다시금 진주로 오지 못하고 창원에 있습니다.
행정적인 이야기가 끝나자,
오늘날 진주상공회의소와 같은 역할을 했던
보부상들의 단체인 진주 상무사를 비롯해
경제적으로 넉넉한 고장 진주의
일상생활이 이어서 나옵니다.
가산오광대와 진주오광대의 중앙황제 장군 탈 등이
신나게 놀았던 진주 사람들의
정취를 떠올리게 합니다.
1788년(정조 13) 진주목 호수 약 15,000호,
인구수 약 70,000명이었다는 진주목과
주요 군현의 시기별 인구 규모 비교와
토산물 안내가 함께합니다.
또한, 물산이 풍부했던 일제 강점기 진주시장과
진주 제일의 부자 정상진의 초상 등에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어느새 우리는 1, 2부를 지나
올바른 뜻을 품은 고장, 진주라는
소주제의 3부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올바른 세상을 꿈꾼 진주 사람 남명 조식이
배운 바를 실천하고자
허리에 방울(성성자, 惺惺子)을 차고
칼을(경의검, 敬義劍)을 품은 뜻을 일러줍니다.
이런 학문과 분위기는 불의에 맞선
진주 사람들로 나타납니다.
19세기 조선 사회는
소수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해
기강이 무너져 사회 전반이 부패하자
1862년 진주 농민들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항쟁(진주농민항쟁)했습니다.
일제에 국권이 빼앗길 위태로울 때
노응규 등이 의병을 일으켰고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나섰습니다.
사람이되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백정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 운동이라 평가받는
형평운동의 불꽃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불의에 맞선 진주 사람들의 열정에
덩달아 가슴을 <천년을 품은 강, 진주>라는
영상이 우리에게 숨 고르게 합니다.
숨을 고르고 나면
도타운 믿음이 깃든 진주의 신앙 세계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고유 신안이 성모(聖母) 신앙이
지리산의 천왕, 천왕할매, 마고할매, 마야부인 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이야기가 솔깃하게 합니다.
숨 가쁘게 내달렸던
진주목 천년의 이야기도 지리산 성모상을 뒤로하자,
한편의 그림 같은 달곰한 이야기가
다시금 우리를 붙잡습니다.
~북쪽으로는 비봉산이 봉황새와도
같이 긴 날개를 벌리고 가만히 내려앉는다.
남쪽으로는 망진산이
용이 꿈틀거리듯 에워싸고 있다.
그 사이로 남강이 흐른다.
서쪽과 동쪽의 여러 산 또한 둥근 고리가
굴러다니듯 순탄하다~
어느새 특별전은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소망하는 미래 진주는 어떤 모습일까요?
화두 같은 물음을 안고 진주성을 걸었습니다.
그저 전시물을 들여다보고 읽고 걷다 보면
진주의 천 년 역사를 만납니다.
천 년 전 진주 옛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는
진주의 지난 천년과 미래의 천년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 본 포스팅은 진주시 시민명예기자가 작성한 글로서 진주시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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