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더 좋은

안면도수목원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31-1


6월, 장마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충남 태안 안면도 수목원을 찾았다. 촉촉하게 젖은 공기와 은은한 풀 내음이 어우러진 고요한 숲, 그리고 빗방울에 더욱 짙어진 초여름의 녹음이 마음을 차분하게 감쌌다.

안면도수목원에 도착하니 문화가 있는 날 덕분에 입장료는 무료, 주차비만 지불하면 되었다. 마치 비가 주는 작은 선물 같았다. 우산을 챙겨 들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에 젖은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이미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수목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수국길이 마치 환영 인사를 하듯 길게 뻗어 있었다. 비를 맞은 수국들은 평소보다 훨씬 싱그럽고 생생해 보였다. 물방울이 꽃잎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이고, 진한 초록색 잎사귀들이 빗물을 머금어 더욱 윤기가 흘렀다.

파란색, 분홍색, 보라색, 하얀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수국들이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반겨주었다.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아본다. 비 오는 날의 수국은 정말 특별했다. 마치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수국길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니 안면도수목원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안개가 살짝 끼어 있어서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목원 곳곳을 둘러볼 시간이었다.

철쭉길로 들어서니 아쉽게도 철쭉의 절정 시기는 지나버린 후였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몇 송이의 철쭉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비록 화려한 자태는 아니었지만, 그 나름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내년에는 꼭 철쭉과 함께 봄꽃이 만개한 시기에 다시 와봐야겠다.

'지피원(地被園)'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피원'은 말 그대로 땅을 덮는 식물들을 모아놓은 곳인데, 마치 잘 가꾸어진 거대한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키가 작은 여러 종류의 풀과 꽃, 나무들이 저마다의 색과 질감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초록색 융단 위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한 모습이랄까? 정교하게 설계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밑에서 펼쳐지는 작은 식물들의 세상에 푹 빠져들게 된다. 앙증맞은 야생화부터 독특한 잎 모양을 가진 식물들까지, 자연이 만들어낸 섬세한 디테일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었다.

지피원을 나와 발걸음을 옮기니 고즈넉한 풍경의 '아산원(峨山園)'이 나타났다. 이곳은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기증한 수목과 자재로 조성된 한국 전통 정원이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잔잔한 연못과 그 위에 그림처럼 떠 있는 운치 있는 정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빗방울이 수면에 동그란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와 같았다.

연못 위쪽으로는 기품 있는 한옥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정원의 고풍스러운 멋을 더했다. 처마 밑에 잠시 서서 떨어지는 낙수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니, 복잡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마치 사극의 주인공이 된 듯, 정자 마루에 걸터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산원의 정취를 뒤로하고 생태습지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 수련들이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빗속에서 만난 수련은 더욱 맑고 깨끗해 보였다.

이어서 만난 백합과 식물들과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양치식물 전문 온실에 들어서니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온실 안은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감돌았다. 다양한 양치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원시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무장애 나눔길을 선택했다. 이름 그대로 휠체어나 유모차도 편안하게 지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이었다. 비록 일반 산책로보다는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그만큼 여유롭게 주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산등성이로 이어진 이 길에서는 방금 지나온 지피원을 비롯해 수목원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수목원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비에 젖은 나무들과 정원들이 마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길 옆으로는 산수국이 활짝 피어있었다. 일반 수국보다 소담스러운 크기의 산수국들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무장애 나눔길을 걸으며 이런 세심한 배려가 담긴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길 덕분에 더욱 의미 있는 산책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의 안면도수목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특별했다. 평소 화창한 날씨에만 수목원을 찾았던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었다. 비에 젖은 식물들의 생생한 모습, 촉촉한 흙냄새, 그리고 수국의 은은한 향기까지 모든 것이 평소보다 더 진하고 깊게 느껴졌다.

특히 다양한 테마원들을 둘러보며 각각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지피원의 세심한 정원미, 아산원의 전통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무장애 나눔길에서 느낀 따뜻한 배려까지. 안면도수목원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우산 하나만 챙겨들고 떠나는 소소한 모험이 생각보다 큰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안면도수목원

○ 위치 : 충남 태안군 안면읍 안면대로 3195-6

○ 전화 : 041-674-5019

○ 관람시간 : 동절기 09:00~17:00, 하절기 09:00~18:00, 5월~8월 09:00~19:30

○ 입장료 : 어른 1,500원, 중고생 1,300원, 초등생 700원

○ 주차비 : 경차 1,500원, 중/소형 3,000원, 대형 5,000원

○ 애완동물 입장 불가

* 취재일 : 2025년 6월 25일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호우님의 글을 재가공한 포스팅 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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