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전
울산동구 청년뉴스① 동구와 비보이(B-BOY)
쇠를 자르던 동구의 힘이 힙합의 에너지로 발현되다
명예기자 이진규
일부러 내려 입은 듯 한 바지. 상표도 떼지 않고, 썼는지 얹었는지 모를 모자. 과한 몸짓과 반항적인 말투. 방황하는 청춘처럼 보였던 그들이 대중문화의 중심에 선 것은 불과 10년 남짓. 하지만 그들이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엑스(X)세대가 성인이 된 1990년대 초부터 힙(hip)한 세상은 이미 꿈틀대고 있었다.
2000년에 접어들어 동구에는 현대공고에 ‘콘크리트’를 시작으로 대송중학교에 ‘보로코’라는 팀이 만들어졌고 나름의 문화가 형성 되어갔다. 물론 지금의 힙합 문화처럼 다양한 장르는 아니었지만 비보이라는 이름으로 동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그러던 중 2002년 동구청소년문화의집(현 동구청소년센터)이 대송동사무소 2층에 개소하자 제대로 된 연습실이 필요 했던 청소년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만들어진 비보이팀이 소울클랜(soul clan)이다. 소울 클랜은 동구 지역 비보이 연합팀이었다. 당시 청소년동아리활동은 학교 안과 밖이 다르지 않았고 열성적이어서 일부러 권할 필요가 없었다. 무대를 만들면 서른 팀은 쉽게 모여 공연을 했다. 관공서에 청소년 전용 공간이 생기고 응원해 주는 어른들이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화암초등학교에 엘비크루, 방어진중학교에 엡실론, 화암중학교에 비업, 방어진고등학교에 디엠, 화암고등학교에 무브가 있었고 학교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비보이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소울클랜에 가입해 동구청소년문화의집을 중심으로 연습과 공연을 이어갔다. 한 때의 유행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비보이는 잠시 경험하는 춤이 아니었다. 최소 반년은 물구나무를 서야 낄 수 있었으니 제법 끈기도 있어야 하고 힙(hip)한 근성도 필요했다. 소울클랜이 전국대회참가를 준비 할 때는 밤 10시에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새벽 2시까지 연습을 했다. 하지만 첫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예선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였지만 아이들은 금세 털고 일어났다. 그것이 2006년이다. 그 후 여러 대회에 참가하면서 좋은 성과를 얻었고 전국 규모의 대회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의지가 돋은 것도 그 무렵이다.
그리고 3년 후인 2009년.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동구청의 제안으로 전국대회를 기획하고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국청소년비보이배틀대회 ‘울산섬머워즈’의 시작 이었다. 감출 수 없는 걱정도 많았지만 이유 있는 호기로움이 대회를 준비하는 내내 즐거움이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기대를 넘어 전국에서 모여든 청소년과 세계 수준의 팀까지,
일산해수욕장의 배경이 온통 그날의 비보이를 위한 듯 아름답기만 했다. 그렇게 2021년까지 13년간 진행된 대회는 소년이 청년이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울산 동구에서 비보이가 이렇게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쇠를 잘라 거대한 배를 만드는 동구인의 힘이 아이들의 몸짓으로 발현된 것은 아닐까. 땀의 맛을 아는 DNA가 비보이라는 춤으로, 힙합이라는 문화로 내보여 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동구에 ‘힙합페스티벌’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움을 감출 수 없다. 동구의 청년문화를 지원하고 있는 ‘청년스테이지온’과 우리 지역 청년 예술인이 함께한다고 하니 아마도 작정을 하고 준비하리라. 물구나무를 서며 난생처음 세상을 들어 올렸던 그 때처럼 말이다. 앞으로 청소년과 청년이 만들 게 될 새로운 에너지에 동구가 얼마나 힙(hip)해 질지 기대가 된다.
※ 대왕암소식지 2025년 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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