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러시아 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

진천군과 관련 있는 지역 인물 중

진천 출신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포석 조명희에 대해 소개하려고 해요.

출처 - 러시아 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 / 수감 당시 사진

조명희는 진천읍 벽암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진천에서 보냈어요.

서울로 올라갔지만 가난 때문에 방황하고

3.1운동에 참가해 투옥되기도 했어요.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김영일의 사

1919년 일본 도쿄 대학 동양철학과로

유학을 갔고 2년 뒤에 돌아온 조명희는

창작 희곡인 ‘김영일의 사’ 가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받으며 민족주의 신극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는 희극사상 선구적

의미를 가진다 해요.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김복진

1925년 청주 출신 조각가 김복진 등과

프로 연극운동 단체인 ‘불개미극단’을

조직하여 궁핍한 소시민 지식인들의 갈등을

다룬 작품들, 도시 빈민을 떠도는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소설 등을 계속 발표하며

민족주의적 연극운동가, 희곡작가, 시인,

소설가로 활동했어요.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낙동강

특히 1927년 조선지광에서 발표한 대표작

‘낙동강’은 프로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처 - 러시아 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 / 러시아 신분증

조명희는 1928년 일제의 탄압이

심해져서 러시아로 망명했어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히바로프스크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편집자, 교수, 주필로

활동하며 재소 한인 문학 건설에 힘썼습니다.

출처 - 러시아 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 / 조명희 사망 증명서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은

사회 지도자급 한인 2,000여 명을

체포하여 처형하였는데, 조명희 역시

체포되었고, 이듬해 5월에 비밀리에

총살되어 44세에 생을 마감하였어요.

출처 - 진천군 / 포석 조명희 문학관

진천군청 옆 진천읍 포석길 37-14에

우리 민족 문화의 선구자인 조명희를

기념하기 위해 포석 조명희 문학관이

세워져 있어요.

문학관에서는 조명희의 작가 활동,

삶과 문학, 가치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다가오는 휴일에

방문하셔서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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