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시간 전
부안 가볼만한 곳 - 매창공원과 매창테마전시관
신분의 한계를 넘어
조선 문단의 중심에 서다
조선 시대에는 여성은 제도적 차별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기 매우 어려웠는데요. 어려운 시대적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과 삶을 시로 표현했던 여류 시인(여성 시인)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로 허난설헌, 이옥봉, 김호연재, 계랑, 매창 등이 떠올려지는데요. 이 중 이매창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자 기생 출신 예술인으로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여류시인의 쌍벽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부안의 현리 이탕종의 딸로 태어나 기생이 된 이매창을 추모하여 조성한 공원과 이매창의 삶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매창테마관이 있다고 하여 방문해 보았습니다.
이매창의 시와 묘를 볼 수 있는 매창공원
부안읍에 매창공원은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여류문장가로 유명한 부안 명기 이매창을 추모하여 조성된 공원입니다.
이매창(1573~1610)은 조선 선조 때의 여류시인으로 이름은 계생 또는 향금이라 했으며 자는 천향이고 호는 매창입니다.
매창공원에서는 이매창의 시를 새긴 시비와 숲을 조성해 문화공원으로 조성해 놓아 시민들의 문화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지 면적 5,400평에 199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에 완공했는데요. 공원 입구에서부터 매창의 한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옛 님을 생각하며’라는 시였는데요. 님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표현된 시였습니다.
이매창의 시 작품 대부분이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고 기다림과 애절함이 잘 표현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요. 공원에서 만난 시비 하나하나 읽어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매창은 현리인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워 한시에 뛰어났으며 시조에 능했다고 하는데요. 조선 후기 편찬된 여성 시인들의 시 모음집<해동역대여류시집(海東歷代女流詩集)>에 한시가 수록되어 있고 후대에 추정 수록된 매창의 시모음집<매창집(梅窓集)>에 약 20편 정도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공원 안의 매창 묘를 둘러 싸고 있는 시비는 매창이 쓴 시와 매창과 시를 주고받은 당시 시인들의 시와 그녀를 추모하는 시인들이 쓴 시가 새겨져 있었는데요. 그녀가 죽은 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1610년 서른여덟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 매창은 공동묘지에 묻혔는데요. 평소에 늘 했던 말이 “나는 거문고와 시가 참말 좋아요. 이후에 내가 죽으면 거문고를 함께 묻어주세요.” 였다고 해요. 그 말에 따라 그녀의 무덤에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죽고 45년이 지난 1655년 어느 날 아직도 그녀를 기억하는 나무꾼과 농사꾼들이 그녀의 묘 근처에 돌비석을 세웠는데요. 많은 시간이 지나 돌비석에 새겨진 글이 닳아 없어지자 1917년 부안 지방의 시인 모임인 ‘부풍시사’에서 ‘명원이매창지묘’라 쓴 비석을 새로 세웠다고 해요.
다시 60년이 지난 1997년, 부안읍에서 ‘문화개조사업’의 일환으로 매창이 묻힌 공동묘지를 매입하여 그곳에 있던 모든 분묘를 이장시키고 그 자리에 ‘매창공원’을 조성하게 된 것이랍니다.
공원에는 부안문화원이 들어서서 예전에 나무꾼과 농사꾼이 돌봤던 것처럼 매창의 무덤을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매창의 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시집을 간행해 주었는데요.
매창이 죽고 58년이 지난 1668년 개암사에서 매창의 시 58편을 묶은 <매창집>을 내었습니다. 발문에는 ‘아전들이 외우며 전하던 여러 형태의 시’를 묶은 것이라 밝힌 것만 보아도 매창에 대한 기림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현재에도 공원 산책길 곳곳에 나무와 꽃들이 식재되어 있고 조형물과 쉼터까지 설치해 시민들과 함께 하는 매창공원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어린이 놀이터, 산책로, 농구장 등 운동 시설도 조성되어 있고 매창테테마전시관, 습지공원, 유희경 광장도 있었습니다.
부안 출신의 기생 이매창이 기생이라는 미천한 신분이었는데도 당대의 학자들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매창테마전시관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매창테마전시관
부안이 낳은 여류시인 이매창의 모든 것을 담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이매창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교육하고, 활용하고 보존하는 ‘이매창 테마관’이랍니다.
현관에 ‘梅窓花雨相憶齋(매창화우상억재)’라고 쓰여있는데요. ‘매화꽃 핀 창가에 꽃비가 내릴 때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매창梅窓’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시 ‘이화우梨花雨’에서 ‘花雨’ 두 글자를 따고, 평생 그의 삶을 일관한 추억과 그리움에서 ‘상억相憶’이라는 말을 취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매창테마전시관은 이화우 흣날리며, 이매창의 생애, 매창의 문학, 배꽃에 남은 인사 모두 4개의 테마로 구성되었는데요.
이매창의 그림과 매창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연도별로 정리해 놓은 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매창은 1573년에 부안현 아전 이탕종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579~1580년 6살에서 7살이 되던 해에 계생이라는 기명을 받고 기역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때의 사회적·제도적 요인들이 어린나이에 기역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매창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시인 유희경을 1586년에 처음 만났는데요. 유희경이 매창을 처음 만났을 때 준 것으로 알려진 시 <계량에게>가 아마도 이때 지어진 것인가 봅니다.
매창과 만난 명사들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보고 매창의 삶을 정리해 놓은 연표를 보면 매창의 인생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대시인 권필, 대문호가 허균, 한준겸, 심광세, 이귀, 유희경 등의 명사들과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요. 특히 유희경과는 평생을 사랑했던 사이였다고 해요. 이매장의 시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조‘이화우 흩날릴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속의 님이 유희경이라고 합니다.
1610년 이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허균은 ‘애계량(계량의 죽음을 슬퍼하다)’이라고 제목을 붙인 시를 지어 애도를 했습니다.
남성의 문화가 주류인 조선 사회에서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시인들은 여성의 감성을 탁월하게 재현했는데요. 이들이 주도한 기녀문학은 동시대의 일반 여성들보다 자신의 의식이나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었기에 한국 고전문학은 더욱 풍부해졌다고 해요.
매창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운명과 신분에 대해 한탄하거나 세상 사람들의 조소에 가슴 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결한 지조와 기품 있는 삶의 자세를 지켰답니다. 낮은 신분을 넘어서 주체적인 삶을 살며 사랑을 지켰기에 같은 신분의 아전들이 비용을 내어 그의 주옥같은 한시 58편을 모아 <매창집>을 출판해 준 것이라고 하는데요.
<매창집>은 현재 세 권이 남아 있는데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두 권, 미국의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한 권이 보존되어 있으며 1956년에 신석정이 최초로 대역한 매창집이 있습니다.
후손도 제자도 없었던 매창의 시집이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데요. 매창이 만난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아파하는 그들을 대신해 아픔을 짊어지려고 했던 그녀의 삶의 태도와 시는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한 이유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창테마전시관의 출구에는 디지털 포토존도 조성되어 있었는데요. 사진을 찍어 개인 SNS로 전송받을 수 있으니 변산 8경을 배경으로 예쁜 추억을 간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라는 제약 많은 시대 속에서도 이매창은 예술적 감성과 문학적 재능으로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낸 인물이었습니다. 매창공원과 매창테마전시관은 그녀의 시와 삶,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감동을 담고 있었는데요.
부안에서 만난 그녀의 흔적은 시대를 초월한 공감과 감탄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조선 문단의 중심에 섰던 매창 이야기를 알 수 있는 매창공원과 매창테마전시관을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매창공원과 매창테마전시관>
📍주소:
부안군 부안읍 매창로89
(매창공원)
부안군 부안읍 매창1길 25
(매창테마전시관)
☎ 문의:
063-583-2101
(매창테마관)
글, 사진 = 이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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