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시간 전
진주사찰 부처님 오신 날에 찾아본 천년 고찰, 진주 의곡사 | SNS 서포터즈
진주사찰 의곡사 가는 길,
부처님의 자비를 따라 걷습니다.
도로 양옆으로는
고요한 벽화들이 펼쳐져 있어
마치 부처님께 이르는 길목을
걷는 듯 합니다.
경남 진주시 비봉산 자락에는
조용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전하는 천년 고찰,
의곡사(義谷寺)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주사찰 의곡사는 해인사의 말사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곡사가 위치한 비봉산은
진주 8경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경치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의곡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불사와 기도를 위한 소중한 기도처로
지금도 깊은 신심과 함께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주 사찰추천
의곡사에 도착하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일주문 앞 도로변에 마련된
넉넉한 주차 공간입니다.
차를 주차하고
일주문을 향해 오르다 보면,
사찰 주차장의 규모에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이처럼 넓은 주차장을 갖춘
사찰은 흔치 않습니다.
사찰 좌우로는
울창한 숲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의곡사에 들어서는 순간
고요하고 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천 년의 세월을 품은 이곳은
오랜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의곡사는 신라 문무왕 5년(665년),
혜통조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당시에는 월명사(月明寺)
또는 숭의사(崇義寺)로 불렸습니다.
이후 808년에는 원측 선사,
1194년에는 월명 선사가
각각 중창하며 오랜 시간 동안
사찰의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의곡사는
단지 사찰이 아닌,
나라를 지키기 위한
항전의 중심지였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곳에서 승병들을 양성하여
왜군에 맞서 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진주성이 함락된 이후에는
수많은 승병들이 이 절에 모여
끝까지 항전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 의로운 정신을 기려,
사찰의 이름도
‘의로운 골짜기의 절’이라는 뜻의
의곡사(義谷寺)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란을 딛고 일어선 절, 의곡사.
임진왜란으로 한때
소실되었던 의곡사는
광해군 10년(1618년),
진주목사 남이흥과
주지 성간 선사의 노력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중수가 이어져
덕운 선사(1879년)와
석종 선사(1898년)에 의해
다시 중창되며,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다시 일어서며
그 맥을 이어온 의곡사에는
오래된 사찰 그 이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진주사찰 의곡사에는
다양한 전각들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천불전, 감로당, 적묵당, 회광당,
종루, 천왕문, 일주문 등이 어우러져
사찰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곳은 비봉루입니다.
이곳은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진주에 들러
시를 읊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로,
그의 후손인 정상진이
1939년에 건립한 누각입니다.
현재는 경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와 함께 고즈넉한 멋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일주문에 걸린 편액입니다.
이는 진주의 대표 서예가였던
은초 정명수(1909~2001) 선생의 작품으로,
진주성의 진남루와 남장대,
서장대의 편액을 남긴 인물입니다.
의곡사 일주문에서도
그의 단정하고 힘 있는 필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의곡사 주차장 바로 옆 산자락에는
한자와 한글이 함께 새겨진
특별한 빗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비석은 의곡사가 한글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사찰임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한글의 역사와 그 의미를 전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두 기의 비석 중,
검고 큰 비석은
벽산 정대기 선생의 묵죽 작품을
돌에 새겨 옮긴 것이며,
그 옆에 세워진 비교적 작은 비석은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 새긴 형태로,
현재 경남 내 유일한 한글비석으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의곡사의 고즈넉한 경내를 거닐다 보면
이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의미 있는 유산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특별한 빗돌의 앞면에는
한자와 한글이 나란히 새겨져 있어
더욱 눈길을 끕니다.
가운데에는 ‘南無阿彌陀佛塔(나무아미타불탑)’,
오른쪽에는 ‘父母生天目蓮經(부모생천목련경)’,
그리고 왼쪽에는 이를 한글로 적은
‘부모생쳔목련경’이라는
문구가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불교의 대표적인 효 사상인
목련경의 내용을
한자와 한글로 함께
기록해둔 이 빗돌은,
불교를 통한 부모 공경의 정신을
전하는 유물로서도
의미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빗돌에는 세운 시기를
‘丙辰三月(병진삼월)’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글 표기에 ‘ㆁ(옛이응)’이
사용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텬(天)’을 ‘쳔’으로 표기한 방식은
1700년대 전후의 한글 표기 특징이므로
이 빗돌은 18세기 중후반,
병진년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교에서는 백중일에
“나무아미타불 부모생천목련경”을 염송하며
돌아가신 부모님이 지옥에서 구제되어
천상에 태어나시기를 기원하는
기도 의식을 올리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 빗돌 또한 그러한 불심과
효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도
진주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종 10년,
1428년 10월 3일,
진주 사람 김화(金禾)가 아버지를 살해한
존속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죄를 알리기 위해 붙인 방(榜)이
모두 한문으로만 쓰여
백성들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세종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백성이 스스로 법을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쉬운 문자,
곧 훈민정음 창제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계기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찰추천
의곡사에서는 매년 백중일에
부모생천목련경을 염송하며
돌아가신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식을 봉행합니다.
또한 사찰 벽면에는
문수동자와 세조의 목욕 장면이 그려진
의미 있는 벽화도 남아 있어,
의곡사의 예술성과 불교적 깊이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고요한 산자락에 자리한 이 사찰은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역사, 문화, 예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진주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사찰 뒤편의 바위들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풍경입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바위와 푸르른 숲,
고요한 전각이 어우러진 의곡사는
찾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가라앉게 해줍니다.
사찰추천 진주를 방문하신다면,
생명이 움트는 봄날,
조용히 들러보기 좋은 사찰로
의곡사를 추천드립니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마음을 쉬어가며,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이 문화유산의 깊이를
가까이에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의곡사>
📍오시는길
: 경상남도 진주시 의곡길 72
🚗주차장
있음
➡️ 비봉산 일주문 현판
: 서예가 은초 정명수 글씨
※ 본 포스팅은 SNS 서포터즈가 작성한 글로서 진주시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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