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통영 출신 유명인사 김용식,김용익 형제를 기리는 '김용식·김용익 기념관'
통영 출신 유명인사 김용식,김용익 형제를 기리는 '김용식·김용익 기념관'
김용익·김용식 기념관은 한국 외교계의 거목이자 전설로 추앙받은 김용식(1913~1995)전 외무부장관과 ‘마술의 펜’, ‘펜의 마술사’로 극찬을 받은 세계적인 소설가 김용익(1920~1995)을 기리는 기념관입니다. 두 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통영시 주전3길 18 (태평동 22번지와 23번지 2필지), 부지면적 356㎡의 생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형제를 동시에 기리는 기념관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례가 흔치 않은듯합니다.
통영에는 수많은 문학가,화가,음악가등이 배출되었는데 한집에에서 형제가 나라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매김한 예도 흔지 않을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통영의 김용식,김용익 형제가 태어나서 자란 생가를 방문하였습니다.
김용식.김용익기념관
좁은도로변에 작은집이 이렇게 유명한 통영의 거인이 탄생하고 자란 생가입니다.
기념관옆에 앉아서 쉴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생가전경
빨간벽돌에 빨간 지붕이 아름다운 작은집니다.
생가를 리모델링하여 기념관으로 2013.4.17 개관하였습니다.
두 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통영시 주전3길 18 (태평동 22번지와 23번지 2필지), 부지면적 356㎡의 생가 건물입니다.
전시실, 세미나실, 관리실, 야외 휴게실 등을 갖춘 기념관으로 꾸몄습니다.
전시실에는 고인들의 일대기 등을 담은 책자와 사진 등 50여점의 자료가 소장돼 있습니다.
종합안내도
두형제가 나고 자란 생가는 이제 기념관이 되었습니다.
출입구를 들어서면 생가속으로 ,에필로그 꽃신,책쓰는 모험,김용익 작품연보,가장 세계적인 가장 한국적인 작가 김용익,직업외교관의 책상,작은나라의 큰 외교관 김용식 그리고 프롤로그 아버지의 기도가 담겨있습니다.
종합안내판이 잘되어 있어서 기념관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꽃신
나는 미국,유럽의 하늘도 보고 산길도 걸었으나 고국하는 고향같이 늘 그리웠다.
돌과 풀사이 쇠똥에 발의 빠졌던 그 골목직이 그리웠다.---꽃신---
고향을 기리는 마음이 가득한 꽃신입니다.
아버지의 기도
김용익,김용식 형제는 아버지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통영의 3대 읍장을 지낸 아버지 김채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매일 아침 해뜨기전 통영 여황산에 올라 기도를 하였습니다.
김용식,김용익 형제의 자람은 아마 아버지의 기도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절하면 이루어 진다고합니다.
김용익 작품연보
1920년 5월 15일 경남 통영 출생.
1942년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해방 직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56년 남플로리다대학(Florida Southern College)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켄터키대학(University of Kentucky)과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에서 대학원 과정을 수학하였습니다.1990년에는 <꽃신>으로 한국문협이 주관하는 제1회 해외한국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국내에서 출간된 작품집으로는 1984년에 동아일보사에서 나온 단편모음집 <꽃신>과 샘터에서 나온 <푸른 씨앗>이 있습니다.
작은나라 큰 외교관 김용식
1913년 경상남도 용남군 서면(現 통영시 태평동 22번지)에서 통영군 광도면장을 지낸 김채호(金采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향 통영에서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주오대학 전문부 법학과에 입학, 1934년 졸업과 동시에 주오대학 본과 법학부에 입학했습니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한 뒤 1940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1941년부터 경성지방법원 및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사법관 시보, 검사대리를 거쳐, 1943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청진지방법원 예비판사 및 판사로 근무했습니다.
8.15 광복 후 1946년 변호사 개업을 했으며, 1949년 주 홍콩 총영사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주 호놀룰루 총영사, 주 일본 공사, 주 프랑스 공사, 주 제네바 공사, 주 영국 대사, 주 필리핀 대사 등을 지냈습니다.
1963년 제10대 외무장관, 1964년 주유엔대사, 1970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1971년 제15대 외무장관, 1973년 제3대 국토통일원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코리아게이트 사건 이후 소원해진 한미관계의 회복을 위해 외교 일선에 복귀하여 주미대사를 맡았고, 총리 후보로도 물망에 올랐습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에 많이 들었던 인물중 한분이 김용식 외무장관입니다.
소설가 김용익
김용익은 미국에서 작사생활을 하면서 영어로 많은 작품을 표현하였습니다.
김용익의 문학은 대부분 한국의 토속적인 공간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자신이 영어로 창작한 작품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 소개함으로써 영어와 한국어의 ‘이중어적 글쓰기’를 실천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놓고, “내면세계는 모국어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는데 다만 창작 표현만 영어로 한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통영에서 다시 한번 통영의 인물을 만났습니다.
외교관 김용식, 소살가 김용익형제
통영의 인물은 그저 태어나는게 아닌가 봅니다.
아버지 김채호의 간절한 기도로 만들어진 형제입니다.
통영에서 다시한번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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