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9일 전
[전남 서포터즈] 완도 충무사와 이순신기념관 역사 여행
완도로 떠나는 역사 여행
충무사와 이순신 기념관
전라남도 완도
여러분들은 완도 하면 어떤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많은 분들이 전복? 바다?를
가장 많이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대부분 관광지로 많이 방문하는 완도
하지만 완도에도 우리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유적지와 기념관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충무사와 이순신 기념관
그곳에는 어떤 역사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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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사 🌲
첫 번째!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충무사)을 방문했습니다.
먼저 하마비가 손님을 맞이하네요.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은 목포 고하도를 거쳐
1598년 2월 17일, 완도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습니다.
완도는 군사적·지리적 요충지로서 순천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을
방어하기에 적합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고금도는 형세가 견고한 요충지이며, 섬 안에는 기름진 농토가 많아
군량미 확보에 용이하고 군선을 제작하기에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또, 7월 16일 조선과 진린 장군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이 연합 전선을 형성한 곳이며,
11월 19일 노량해전을 통해 일본과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전쟁을 마무리 지었던 뜻깊은 전적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순신 장군은 고금도를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으로 선택했습니다.
고금도는 단순히 군사적 요충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요.
이곳에서의 승리와 전략적 중요성은 조선 수군의 강력함과
이순신 장군의 지략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1598년(선조 31) 명나라 진린 장군이 고금도에 주둔하면서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중국 촉나라 장군이었던 관우를 모시는 '관왕묘'를 세웠고,
1666년(현종 7) 동무를 지어 진린과 이순신을 배향하였습니다.
1713년(숙종 31) 관왕묘비를 세웠고, 이후 서무를 신축하여
이순신을 단독으로 배향하였습니다.
1781년(정조5) 임금이 '탄보묘' 편액을 하사하여 동무에 추배 되었고,
1795년(정조 19) 임금이 '이충무공전서'를 하사하였습니다.
1940년 경 일제강점기에 관우 상과 위패 등 유물이 훼손되고 제향이 중단되었다가,
이후 1953년 명칭을 '충무사'로 개칭하였습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4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무사에는 이순신의 영정을 모시었고,
정전, 동무, 서무, 동재, 서재, 관왕묘비각, 내삼문, 중삼문, 외삼문,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우수영 전진도첩이라는 문화재자료가 있는데요.
전라우수영의 군사조직과 운영실태, 어떤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 입니다.
충무사 주변 유적지로는 '월송대' 가 있는데요.
충무사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이순신의 유해가
임시로 안장되었던 유서 깊은 장소입니다.
조금 앞으로 가보면 커다란 비석과 함께 이순신 장군이 항해하고 지켰던 바다가 보입니다.
이순신장군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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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기념관 🛶
자. 이제 충무사를 떠나 이순신기념관으로 이동합니다.
완도 이순신기념관은 1598년 2월 17일 완도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활동을 재조명하는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건립하였습니다.
2023년 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에 개관하였고,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578번지 일원에 위치합니다.
전시는 완도 고금도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하여
타 지역과의 차별화를 가졌습니다.
또한 기획전시실의 특별전시를 통해서는
1598년 7월 16일 완도 고금도에 도착한 진린과 명나라 수군의 활동을 소개하고,
이곳에서 최초로 결성된 조명연합수군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완도 고금도는 이순신의 마지막 통제영입니다.
고금도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김으로써 조선 수군은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100리 거리를 두고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1차 고금도 승첩
1598년 3월 11일에 벌어진 1차 고금도 승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왜선 16척이 고금도에 이르러 정박하여 조기잡이를 하며 약탈하므로
통제사가 군사를 거느리고 수색 토벌하여 배를 부수고 적을 베었다”고 합니다.
2차 고금도 대첩
1598년 7월 16일 고금도에 도착한 명나라 수군을 위하여
이순신 장군과 진린 등이 고금도 통제영에서 연회를 하려고 하였는데,
그때 적이 고금도를 습격하려 한다는 첩보를 듣고
곧바로 연회를 중지하고 군사를 잠복 시켰습니다.
17일 동이 트자 고금도로 적군이 몰려왔고,
이순신 장군은 직접 수군을 거느리고 적을 맞아 화살과 돌을 퍼부으며
대포를 연달아 터뜨려서 적선 50여 척을 불태우고, 1백여 명을 베는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2차 고금도 대첩은 명량해전 이후, 일본군의 보복공격이 집중되어
온 전라도 해역에서 침략군을 가장 통쾌하게 응징한 중요한 해전입니다.
특별전시관에는 하나의 적을 위해 연합한 '조명연합수군'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1598년 7월 16일 완도 고금도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최초로 조명연합수군을 결성하여,
완도 고금도가 한중 우호의 상징적 공간이 된 것입니다.
영상관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한편의 영화와 같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만화 형태로 그려졌고 화포와 화살을 쏘며
일본군을 격파하는 모습을 보면 통쾌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이순신 장군이 적의 총탄에
맞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충무사>
<이순신 기념관>
충무사와 함께 완도 이순신기념관을 방문해 보시면
자녀들에게 좋은 추억과 역사 공부가 될 거 같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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