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가고 무더운 날씨가 다가오면서

많은 분들이 피서를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십니다.

올여름 어디로 떠날지 고민을 하고 있다면,

국내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

나주 ”정렬사“를 추천합니다.

가족들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기 좋은 정렬사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과 그의 아들 상건,

양산숙, 임회, 이용재 등을 위패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정렬사를 둘러보기 전,

입구에는 그의 일생을 간략하게 적어놓은

게시판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주 관광 중 애국심을 가슴에 담아 가기 좋은 정렬사는

그의 성품이 정렬사 곳곳에 남아있는 것처럼

깔끔하고 고즈넉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정렬사는 진주성에서 순절한 김천일을 비롯한

나주 출신 충절 인물 5위를 모시고 있는 사우로

나주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정렬사는 1606년에 나라를 사랑하는 인물들이

나주 금성산 서쪽 월정봉 아래 교동에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1607년 정렬사로 사액되면서

사우를 나주 읍내로 옮겼습니다.

김천일의병장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남지역에서

왜적의 침략을 막다가

1593년 진주성전투에서 안타깝게도 순절했습니다.

김천일 의병장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나주에 있다가 임금이 의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5월 16일 송제민 등과

더불어 의병 3백 명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의병을 일으켜 함께

북진할 것을 권유하는 격문을 보내게 됩니다.

그는 도성 수복을 위해

나주 금성관 망화루 앞에서 의병 출정식을 갖는 등

호남지역 의병활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각지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김천일은 소식이 두절되어 있는

의주 행재소에 양산숙 등을 보내

각지에서 의병이 창의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나라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후 그는 선조 임금으로부터 창의사의 칭호와

장예원 판결사의 관직을 받게 됩니다.

김천일이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뒤

1603년 좌찬성 증직과 함께 조정에서

예관을 보낸 것을 계기로

그를 기억하는 건물이 1606년에 건립됐습니다.

이후 1607년 나주 정렬사와

진주 창렬사에 ‘정렬’이라는 사액이 내려지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렬사에는 김천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26년 나주지역 유림에서 세운 ”정렬사비“가 존재합니다.

내부 내용은 ”창의사김공정렬사비“라는

함축적 내용을 품고 있고

1981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광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 또한 과거에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최첨단 기술들이 적용된 웅장함을 즐겼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관광지도 멋지고 화려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과거 우리의 문화재를

소홀히 할 수 있는 안타까움도 공존합니다.

문화재 여행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방문을 다니지 못합니다.

이웃님들에게도 강요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2025년의 시간이 지나기 전,

나만 알고 싶은 문화재 관광을 통해

이색적인 기억 사진으로 담아 가고 싶다면,

나주 정렬사 추천합니다.

✅이 원고는 6월 30일에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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