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금산군 군민리포터의 글입니다. 금산군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교과서 속 명품투어

떠나보실까요?

유학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태학’, 통일신라 신문왕 때 ‘국학’ ,

발해 문왕 때 ‘주자감’, 고려 성왕 때 ‘국자감’, 고려 말 조선은 ‘성균관’

이렇게 국가 중요 교육을 담당했던 기관이라고 교과서에서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시험문제로 출제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외워서 시험 보고, 시험기간 지나면 잃어버리고,

이런 교육의 패턴은 이제 식상한 방법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교육과정 중에서는 색다른 방법이 없어 아직도 교실에서는

이론적인 수업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학습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대안학교에서

‘향교와 서원의 차이점’에 대해 수업을 받고 싶다는 의뢰를 받아,

흔쾌히 승낙을 하고 금산향교와 청풍서원을

체험하는 코스로 수업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향교는 고려·조선시대 유교 교육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관학 교육기관으로 '교궁' 또는 '재궁'이라고도 합니다.

향교에 적극적인 유학교육의 면모가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부터라는 걸 알려주고,

향교의 구조에 대해 설명함과 동시에 지금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해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는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대성전

교과서에서 배운 공자왈, 맹자왈 하던 그분들이 대성전에 모셔져 있고,

우리나라 18성현은 동무와 서무에 모셔져 있다는 설명도 같이 해줬습니다.

대성전에는 '대성지성문선왕'인 공자를 가운데 모시고 안자·자사는 동쪽에,

증자·맹자는 서쪽에 배치하며, 간단하게 공수-묵념으로 인사를 갈음합니다.

향교에서는 PPT로 수업을 진행하며,

그림 자료와 사진으로 이해하기 쉬운 수업으로 진행합니다.

<맞배지붕>

가장 간단해 보이지만 중후한 멋이 멋이 있고,

지붕면이 앞뒤 양면으로만 경사지어 책을 펴놓은듯한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 맞배지붕입니다.

추녀가 없고 하나의 용마루와 네 개의 내림마루가 생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진각지붕>

지붕면이 사면이고, 정면에서 보면 사다리꼴 모양이며,

측면에서 보면 삼각형 모양입니다.

금산향교 동재와 서재는 우진각지붕 모양입니다.

<팔작지붕>

지붕면이 사면이고 측면에는 삼각형의 합각이 생깁니다.

위용 있고 당당한 모습이라 주고 중심이 되는 정전이나 중요 건물에 사용되며,

금산향교에서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팔작지붕입니다.

<수삼센터>

금산하면 인삼으로 유명한 건 모두 아는 사실이죠?

우리 학생들도 전국 최대 규모의 수삼유통센터인

금산수삼센터에 찾아가서 인삼의 종류와 용도 등

인삼에 대한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상인분들께서 답변도 해주시고,

손자 같은 학생들에게 새싹 인삼을 한 뿌리씩 나눠주며 먹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해서 극구 사양했지만 끝끝내 한 뿌리씩 챙겨 먹었습니다.

오늘 이 학생들이 직접 인삼을 사서 갈 수는 없지만 교육용으로 보고,

금산의 인심을 몸소 느꼈으니 미래의 고객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수삼센터

<청풍서원>

고려 후기 충절공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사당입니다.

길재 선생은 고려말∼조선초의 학자로, 개경에 가서 이색·정몽주·권근 등

여러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습니다.

몇 차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같은 마을에 살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후의 태종)과 두터운 친분을 맺었으며,

훗날 태종이 그를 불렀으나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거절하였으며,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 삼은으로 일컫는다고 합니다.

-국가문화유산포털

청풍서원

길재가 초년에 시묘살이를 하였던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현종 12년(1671) 후손과 고을의 선비들이 함께 불이사(不二祠)를 창건하여

숙종 3년(1678)에 위패를 봉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조 17년(1741)에 서원남설 금령에 저촉되어 훼철되었습니다.

이후 영조 37년(1761)에 금산군수 민백홍과 지방유림이

‘백세청풍(百世淸風)’ 4대자를 새긴 비를 유허에 세웠습니다.

이후 1804년 다시 사당을 세웠으나 고종 5년(1868) 또다시 철폐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1928년 청풍비각, 청풍사, 청풍서원이 중수되었습니다.

청풍사의 앞쪽에는 백세청풍비(百世淸風)와 지주중류비(支柱中流)가 있는데

이는 야은 길재의 충절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국가문화유산포털

<떡메치기>

공주 공산성에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도망쳐 내려왔을 때

이 떡을 맛보고 떡 이름이 뭔지 물어봤는데 임 씨네 집에서 바친 떡이라고 대답하여

인조가 '그것참 절미로구나.'라고 해서 인절미가 됐다는 설을 재밌게 해주시고,

떡메는 직접 쳐서 고소한 콩고물에 묻혀 먹어보았습니다.

역시 떡은 직접 떡메치고 고생하고 먹는 떡이 제맛이죠.

떡메치기

이 맛있는 떡을 '집에 계신 부모님께 갖다 드리고 싶다' 하는

학생의 말 한마디에 모두 포장해서 선물로 보내 드렸습니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충과 효를 가슴에 새기고,

인·의·예·지·신의 정신을 몸소 체득하는 수업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신청하면 수업을 진행해 드릴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청풍서원을 잘 관리하고 지키고 계신 종부님 부부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와 같은 체험 프로그램은 금산향교로 문의주시고 방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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