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경상남도 뉴미디어 프렌즈 조은희

약속의 땅, 미래 100년의 도시 통영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해전 승전길이 있는 도시인데요.

이순신 승전길 원정대는 임진왜란 시 큰 승리를 거두었던 한산대첩 장소이자 장군이 머무시던 제승당을 비롯하여 연대도, 만지도, 통영 세병관, 강구안 거북선, 동피랑 그리고 통영 음식문화연구소 이상희 소장의 이순신 밥상 재연 등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함께 가보실까요?

7월 5일 오전 11시경, 거제 옥포해전 이순신 승전 길에 참여했던 원정대는 설렘을 안고 다시 통영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첫 일정으로 통영 음식문화연구소 이상희 소장의 이순신 밥상 재연 장소로 향했습니다

재연된 이순신 밥상은 임진왜란 당시의 음식으로 추정되는 너물 국밥, 청각 무침, 청어구이, 젓갈, 주먹밥 등으로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는데요.

학익진과 거북선, 판옥선 등으로 큰 승리를 거둔 한산대첩과 이순신 장군과 군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시식해 보니, 왜적을 맞서는 한 명의 군사가 된 듯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겠더군요.

다음은 배를 타고 한산도 제승당으로 향했습니다.

안전조끼를 입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배를 타고 가노라니, 임진왜란 3대 대첩중 하나인 한산대첩의 위용을 보여주는 20m 높이 한산대첩기념비가 보이기도 하고,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인 한산대첩 승전을 기억할 수 있도록 거북선 등대가 반겨주기도 했습니다.

약 20여 분 지났을까요? 원정대를 태운 배는 제승당(사적 113호)에 도착했습니다.

제승당은 한산대첩이 대승리한 이듬해 1593년 세워져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원균의 참패로 소실되기 전까지 삼도 수군의 본영이었는데요. 1739년(영조 15년) 통제사 조경이 중건, 유허비를 세우고 1979년 한산대첩 비를 건립하는 등 확장·보수를 거듭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합니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충무공이 활을 쏘던 한산정, 적의 동정을 살피던 수루 등이 있습니다.

제승당 내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부드러운 곡선의 숲길, 대첩문, 충무문을 지나 제승당에 올랐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운주당이라 불렸던 이곳은 이순신장군께서 삼도 수군을 지휘하시던 곳인데요.

임진왜란 때 적선 73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익진전법으로 47척을 격침하고 12척을 빼앗았으며 20여 척을 불태운 모습을 그린 한산 대첩도를 비롯하여 제승당 현판(제140대 통제사 김영수의 친필)이 보관 되어 있기도 합니다.

다음으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자주 찾았던 망루인 수루에 올라 봅니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우수사(이억기), 가리포(이응표), 임치(홍견) 등 여러 장수들이 같이 왔다. 이날 삼도 사사와 본도 잡색군을 먹이고 종일토록 여러 장수들과 같이 취했다. 이날 밤 으스름 달빛이 다락을 비치는데 잠을 들지 못하고 시를 읊어 긴 밤을 새웠다. (1595년 8월 15일)

는 난중일기 기록과 더불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도가」를 읽어 봅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나랏일을 걱정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다음은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하는 바다 위를 배를 타고 연대도로 향합니다.

연대도 마을에 가까워지니 저녁 불빛이 항구를 밝히고 있고

출렁다리와 등대, 만지도의 실루엣이 이순신 승전길 원정대를 맞아줍니다.

연대도는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8km 지점에 있는 섬마을인데요.

임진왜란(1592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영 군병들이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산 정상에 불을 피워 연기로서 위급함을 알리는 대 봉화가 설치된 유래로 연대도라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순신 장군과 연관된 사폐지 해면 기념비에 관한 이야기를 이장님으로부터 들어봅니다.

이 비의 뒷면에는

1718년 제92대 김동기 삼도수군통제사 때 나라에서 이 섬 전체를 이충무공의 사패지로 지정함으로써 그때부터 주민은 소작만 하고 그 대가로 소작료를 납부해 오면서 아쉬운 세월을 보내왔다.

그러다가 1949년 농지개혁법에 따라 대부분의 농지는 소작자의 소유로 이전등기되었으나 대지와 전, 답 일부는 여전히 사패지로 남아있게 되었다.

도민들은 이 토지를 사유화하기 위해 30여년에 걸쳐 통영충렬사 측과 협의해 왔으나 성사를 보지 못하다가 1987년부터 통영군수를 비롯한 관계관들의 적극적인 중재와 행정지원으로 1989년 7월11일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동년 8월 7일 도민의 소유로 이전등기를 마치게 되었다. 이에 우리 도민들은 수백년 숙원사업을 해결하게 된 감격과 역사적인 사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다음은 연대도 마을 산책도 하고 이곳에서 많이 생산되는 어류, 수산물 등이 그려진 벽화와

출렁다리, 4계절 코발트색 사구해변을 지나 만지도 국립공원 명품 마을로 향합니다.

14호 한려해상국립공원 명품 마을로 선정되기도 한 만지도는 주변의 다른 섬보다 늦게 주민이 정착하여 晩(늦을 만), 地(땅지)자를 써서 만지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요.

섬의 형태는 동서로 1.3km 정도 길게 뻗어있으며, 연대도와 연결된 출렁다리를 걸어서 섬을 왕래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바람길 전망대에 올랐는데요. 이곳에서 소지도, 내부 지도, 연화도, 우도, 욕지도, 쑥섬, 노대도, 두미도 등도 볼 수 있더군요.

바감길 전망대 주변이 오래전 만지분교가 있었던 자리였다는 안내판도 읽어 보며 쉼을 누리다가 다시 배를 타고 통영시내로 나왔습니다.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인 세병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죠.

세병관(국보)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중심 건물로 50개의 웅장한 민흘림기둥과 함께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요.

내부에는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와 연등천장이 설치되어 있고 중앙 3칸에는 마루에서 한 단을 올려 만든 전패단이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의 한산섬 진영에서 기원하여 통제영 폐영까지 군수 물품, 진상품이나 생활용품을 만들었던 통제영 12공방이 재연되어 있는데요.

통영의 전통공예로 이어져 통영의 문화예술에 영향을 주고 있는 통영 자개 등 나전칠기 제작하는 패부방, 통영갓과 각종 모자 제작하는 입자방과 총방, 소목방, 화자방, 선자방, 주석방, 은방, 화원방, 상자방, 옹개방, 안자방, 야장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더군요.

다음으로는 군항이자 상업의 중심지였던 강구안에서 이충무공의 구국 혼을 상징하는 거북선에 올랐습니다. 전라좌수영·통제영 거북선, 한강 거북선, 판옥선 등을 둘러보고

동피랑 마을 내 동포루에서 이순신 승전길 원정대의 통영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는데요.

‘이순신 승전길’ 159.8km에 걸친 12개 테마 노선 중 통영 한산도 해전 승전 길은 걷는내내 한산대첩 승리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또한, 난중일기속 역사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 승전길 원정대의 다음 여정은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일본군을 격파한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이자 이순신 장군의 최후 전투로 7년간의 전쟁을 종결시킨 결정적 승전길인 남해 노량해전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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