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일 전
[내게 힘이되는 부산 EP.03]낯선 풍경에서 다정한 일상으로, 부산에서 찾은 두 번째 고향 - 예나
여행자의 설렘을 넘어, 일상의 품으로 들어오다
처음 부산을 만났을 때 나는 여행자였다. 여름의 해운대, 광안리의 바다, 그리고 마린시티의 불빛. 낯선 도시였지만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 풍경이 계속 떠올랐고, 언젠가는 꼭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막연한 바람은 몇 해 뒤, 결혼과 함께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살기 위해’ 부산에 오게 되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이주는 아니었다. 남편의 일과 선택을 따라 내려온 도시였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하지만 부산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바다와 가까운 생활, 비교적 느긋한 리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솔직하고 따뜻한 태도는 외국인인 나를 조금씩 이 도시의 일부로 만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안심, 체감으로 다가온 부산의 환대
부산에서의 삶이 결정적으로 달라진 순간은 아이를 낳으면서였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산후 회복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낯설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지만, 부산의 의료 환경과 지원 제도는 그 불안을 하나씩 덜어주었다. 임신 초기부터 보건소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국민행복카드와 첫만남 이용권, 출산 이후의 양육 지원은 실제 생활에서 체감될 만큼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산후조리 과정에서 받은 세심한 돌봄 덕분에 “아이를 낳는 경험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한 아이만 낳으려 했던 마음이, 어느새 둘째를 떠올리게 될 만큼 커졌다.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일상도 부산에서는 비교적 편리하다. 공공시설 곳곳에 마련된 수유실, 유모차 이동이 가능한 공간들 덕분에 도시가 엄마와 아이를 자연스럽게 환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크고 요란한 말보다, “생활 속 배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외국인으로서의 삶 역시 부산에서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결혼 후 알게 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나에게 또 하나의 연결망이 되어주었다. 한국어 교육부터 취업 지원, 문화 수업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지금도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그냥 여기에 사는 사람", 삶이 자라나는 따뜻한 토대
부산 사람들은 종종 급하고, 목소리가 크다고들 말한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그 안에 솔직함과 정이 함께 있다는 것을. 길에서, 병원에서,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말을 건네고, 도움을 준다. 어느 순간부터는 “외국에서 산다”는 감각보다 “그냥 여기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지금의 나는 바다와 산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SNS를 통해 한국과 러시아를 잇는 이야기를 전하고,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기록하는 일 역시 나의 또 다른 삶이 되었다. 언젠가는 부모님도 부산으로 모시고 와 함께 살고 싶다는 큰(?) 꿈도 품고 있다. 부산은 거창한 약속 대신, 일상의 순간들로 사람을 붙잡는 도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 가족을 꾸리는 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일들이 제도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할 수 있다. 이곳은 단순히 머무는 도시가 아니라, 삶을 키워갈 수 있는 도시라고. 바다처럼 넉넉하고, 사람처럼 따뜻한 도시 부산. 나의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자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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