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전남 서포터즈] 화순 역사 나들이 조광조 유배지
안녕하세요, 전라남도 서포터즈 김진희입니다.
깊은 역사와 수려한 자연경관, 감동이 있는 화순에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역사 나들이로 정암 조광조 선생의 유배지를 다녀왔습니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며 개혁주의자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이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인해
이곳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던 곳이에요.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애우당을 마주합니다.
1986년에 세워진 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에 가운데 마루를 둔 구조예요.
애우당이란 당호는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처럼 하였다.>는 문장에서 애와,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다.>는 문장에서 우를 가져왔다고 해요
나라와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과 충성심이 느껴졌답니다.
애우당 앞에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정암 조광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유배 와서 살았던 초가집을 볼 수 있답니다.
1510년 성균관에 들어가 학업에 전념하고
1515년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한 정암 조광조 선생.
1518년 미신타파를 내세워 소격서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시킨 인물.
현량과를 처음으로 실시하여 소장학자들을 선발,
요직에 배치하였고, 이들 신진사류들을 중심으로
구제의 개혁 및 그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수립에 박차를 가해 나갔는데
1519년 기묘사화로 전라도 능주에 유배되고
한 달도 안 되어서 사사되었답니다.
관노 문후종의 집에서 생활한 조광조 선생은
집 북쪽에 둘러 있는 담을 두어 발 남짓만 헐고,
북쪽 들과 하늘이 보이도록 열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해요.
언제나 방의 남쪽에 앉아서 문을 열고
훤히 열린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임금의 안녕과 나라의 태평을 염원했답니다.
동지들 중 가장 도학이 깊고,
가장 존경하는 벗 학포 양팽손도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 한 후 함께 담소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며 교우하며 지냈다고 해요.
영정각 너머에 조광조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있습니다.
적려는 유배, 귀양지를 이르는 말이며,
유허비는 인물의 자취를 기록해
후세에 알리고자 세운 비를 말하는데요.
전면에 ‘정암조선생적려유허추모비’라 쓰여있고
뒷면 상단에 ‘정암조선생추모비’라 쓰여있습니다.
그 아래 정암의 유배 내력을 기록하였는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민유중이 전서하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고 하네요.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붉은빛 글씨가 선명한 비석이 마음을 울리게 하네요.
조광조 선생의 도학 정신은 후세에 계승되어 이황, 이이 등
많은 후학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사람들의 정신적 표상이 되었으며,
조선 유학의 기본적인 성격을 형성하였다고 해요.
조광조 선생은 비록 유배된 지 1개월여 만에
사사되어 짧은 기간에 능주에 머물렀지만
그의 정치적, 사상적 지위나 인품을 흠모하던
능주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봅니다.
유배 기간 동안 학포 양팽손과 서로 만나
학문과 시세의 흐름을 논하였던 모습들도
다음 세대 능주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남겨 주었다는데요.
실제 그가 죽은 후 양팽손에 의해 사우가 건립되어
사약 서원으로 승격되었던 점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문화 관광 해설자도 있어 방문하신다면 함께
역사를 들어보시며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37세의 짧은 생의 마지막을 담고 있는
뜻깊은 조광조 선생 유배지,
화순을 역사 나들이로
한번 방문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이 원고는 6월 26일에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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