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전
'찐 해녀 음식'은 어떤 맛? '좀녜의 봄밥'
좀녜의 봄밥
척박한 섬의 소박한 한 끼
햇살 따사롭던 5월 어느날.
선흘리의 코삿헌 마당, 소금을 흠뻑 뒤집어쓴 자리돔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양동이 속 자리돔에 뿌린 소금이 너무 많아 보이는데요~~
너무 짠 거 아닐까요?
"아니쿠다. 이따 먹어보면 알게 되쿠다."
뭔가 비법이 숨겨져 있나 봅니다.
실내로 들어가니 3개의 불판에서 자잘한 게들이 보글보글 끓고 있습니다~~
"이건 방게집장이라고 해요."
이날 요리를 주관하신 김은영 셰프님이 간단히 설명을 해주시는데..
'방게집장이요?'
'방게는 뭐고, 방게집장은 또 뭐지? 찌개일까? 국일까?'🍲
고개만 갸웃거립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선 동글동글 앙증맞은 전들이 지글거리는 기름을 품으며 바삭바삭 익어가고 있구요,
제주의 축제장에서 자주 봤던 기름떡은 이미 입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쳤네요.
뭔가 해조류가 들어간 듯한 이 전은 '몰망전'이라는데요..
제주어라 기억하기 쉽지 않고, 맛은 또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날 행사는 '제주도 포구의 가치를 역사, 자연, 문화적 시각에서 탐구'하는 모임인 '가름돌듯'이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것인데요..
'제주 해녀들은 일상적으로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라는 작은 궁금증에서 출발했답니다.
요즘은 제주의 토종 음식들도 많이 알려져서 몸국이나 고사리해장국뿐 아니라 식게(차례상) 음식까지도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데, 일상적으로 먹던 '찐 해녀음식'은 어떨지 궁금했죠.
그 궁금증을 코삿헌의 김은영 셰프님이 풀어주셨답니다.
옛 자료들을 참고해 최대한 원래의 맛을 구현해낸 음식들, 그렇게 차려진 '찐 해녀음식', 맛은 어떨까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던 요리 준비가 끝나고 테이블 세팅도 마무리가 돼가고 있습니다.
공간에 비해 참석자수가 많다보니 자리가 살짝 비좁은 느낌이 드네요~~
맛보기에 앞서 준비된 음식들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이날은 특별기획 행사인지라 전식, 본식, 후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음식이 서빙됐는데, 사실 이런 구분은 파인다이닝 스타일에 맞춘 것일 뿐 '찐 해녀밥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답니다.
좀녜의 봄밥
전식
좁쏠미음, 증건채방<정조지음식>
본식
멩게순 주먹밥
감저조팝과 제피장아찌, 그리고 반치지시
메역새국 / 포레국
반지기밥과 촐래
방게집장
자리돔구이
몰망전
가사리로 제안하는 샐러드
후식
지름떡, 보리차
음식이 서빙되는 순서에 맞춰 셰프님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십니다.
식사를 즐기는 동안 멋진 바이올린 연주도 진행됐고요.
"좁쌀은 '사람의 처음과 끝을 위한 곡식'이에요. 갓난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곱게 간 좁쌀로 미음을 쑤어 끼니를 대신하게 하고, 나이를 먹어 음식을 소화시키기 어려운 어르신들도 이 좁쌀미음으로 끼니를 대신했다고 해요."🌾
이날 첫 순서로 서빙된 음식, '좁쌀미음'에 대한 설명입니다.
전식
좁쏠미음
노르스름한 빛의 묽은 듯한 미음, 그 미음에 폭 빠진 경단이 앙증맞습니다.
'사람의 처음과 끝을 위한 곡식', 그 좁쏠(좁쌀)미음에 빼때기가루(건조시킨 고구마가루)로 경단을 만들어 곁들였네요.
다소 삼삼한 맛의 미음에 경단이 포인트가 되어 줍니다.
좁쌀은 단백질과 무기질이 많아 아기에게 먹일 수 있는 첫 음식이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잡곡을 별미로 먹지만 척박한 제주 땅에서 옛 사람들은
쌀이 귀해 밭벼, 피, 보리, 조, 콩, 팥, 메일 같은 잡곡들을
주식으로 먹었다니 음식들이 많이 거칠었을 것 같습니다.
증건채방<정조지음식>
테이블이 세팅될 때 바짝 말린 채소가 놓여있길래 다들 모두 궁금해했는데요..
'증건채방'이라고 하네요.
증건채방은 '채소를 쪄서 말리는 요리법'을 말하는데요,
이날 셰프님은 이렇게 유채꽃대와 무꽃대를 말려서 준비하셨어요.
어린 유채꽃대와 무꽃대를 채취해 찌고 말린 것이라고 해요.
셰프님의 설명이 끝자나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입니다.
'증건채방이란 건 알겠는데, 이렇게 바짝 마른 유채꽃대와 무꽃대를 어떻게 먹지?'
하지만 그 궁금증은 금세 풀렸답니다.
말린 채소를 그냥 먹는 게 아니라 뜨거운 물을 부어 펴지게 한 후 참기름 소스에 살짝 찍어 먹으면 된다고 합니다.
유채꽃대와 무꽃대에서는 약간 쌉싸름한 맛이 느껴졌는데, 부드러운 참기름 소스가 그 맛을 중화시켜 주네요.
증건채방은 유채꽃과 무꽃을 채취해야 하는 시기가 있는만큼 시기를 놓치면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에요.
참고로 '증건채방'은 <정조지>라는 책에 소개돼 있는데요, <정조지>는 조선시대 실학자인 서유구가 집필한 《임원경제지》의 16개 지 중 하나로, 음식요리백과사전이라고 해요. 조선시대의 음식 재료, 조리법, 효능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랍니다.
본식
멩게순 주먹밥
본식의 첫 순서는 매실절임과 제주 참기름으로 간을 해 동전 크기 정도로 뭉친 후 멩게순으로 두른 주먹밥입니다.
멩게순은 청미래덩굴의 어린 줄기로, 지금 시즌 곶자왈에 가면 탐방로 근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답니다.
어린 줄기를 그대로 따서 된장에 찍어 먹어도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청미래덩굴'은 의령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의령망개떡에 사용되는 '망개잎'의 또다른 명칭이에요.
김저조팝과 제피장아찌, 그리고 반치지시
검은 흐린조(청량미)와 감저(고구마)로 밥을 지은 감저조팝,
여기에 제피장아찌와 반치지시가 곁들여졌습니다.
감저가 들어간 이 조팝, 달달한 게 자꾸만 손이 가네요~~
향이 강한 제피는 장아찌로 변신해서도 강력한 향을 어김없이 발산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좀 곤란할 수도요~~
반치는 흔히 <파초>로 알려져 있는 식물을 말하는데요, 아주 오래 전 해수 등을 타고 흘러와 제주도에 정착해 귀화한 식물이라고 해요. 서귀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파초의 밑동을 간장, 된장 혹은 소금에 절여서 만든 게 바로 반치지(파초지)라고 하네요.
지난 4월 초, 포구기행 때 누군가 반치를 가져왔는데, 셰프님이 이걸 선뜻 챙겨가더니 이렇게나 깊은 뜻이 있었군요~~
ㅎㅎ
메역새국 / 포레국
메역새국은 메역새와 메밀가루를 넣고 제주 된장으로 간을 한 국인데요, 메역새도 톳, 파래 같은 해조류의 일종이라고 하네요. 혹여 메역새국으로는 부족할까봐 셰프님이 포레국도 추가로 준비하셨네요. 포레국은 파래국을 말한답니다.
반지기밥과 촐래
멩게순 주먹밥, 감저조팝에 이어 세번째로 준비된 밥 종류는 반지기밥인데요,
반지기밥은 보리와 쌀을 섞어 지은 밥을 말한답니다.
여기에 곁들여진 반찬(?)은 촐레, 즉 멜젓이에요.
'촐레'가 '젓갈'과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제주도의 멜젓, 갈치젓 등은 이미 유명한데, 늘 삶에 바쁜 여성들이 식사를 준비할 때 촐레만큼 편한 게 없었다고 해요.
테이블 세팅 때 함께 놓여진 콩잎에 청미래덩굴 순, 그리고 지충을 올린 후 촐래(멜젓)까지 곁들이니 건강한 쌈밥이 됐네요.
아, 지충도 톳과 같은 해조류의 일종이라고 해요.
아래 사진 속 까맣게 보이는 게 지충이에요.
방게집장
쌈밥을 즐기고 있는 동안 방게집장이 나왔는데요..
아까 끓이는 걸 봤을 땐 국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네요~~
아래 사진이 방게집장인데요, 셰프님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의 유산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네요~~
<집장>은 <정조지>에서도 소개된 음식인데, 범벅보다 물기가 좀더 많은 조리법이라고 해요.
제주도에서는 방게를 소금물에 씻어 물기를 뺀후, 끓이다가 밀가루를 개어 넣고 끓여 먹었다고 해요.
깅이범벅, 깅이집장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방게집장을 끓일 때 마지막으로 고사리를 넣던데, 다 범벅처럼 끓여지는 바람에 고사리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네요.
방게라서 좀 딱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푹 끓여져서 그런지 먹기가 불편하지는 않답니다.
자리돔구이
자리돔이 제철이니 자리돔구이를 빼놓을 수 없겠죠?
식사 1시간 전부터 석쇠에 노릇하게 구운 자리돔이 접시에 놓였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소금이 뿌려졌었는데, 속살을 맛보니 짠기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달콤합니다.
이유는?
자리돔에 칼집을 내지 않은 채 소금을 뿌리기 때문이라는데요,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이 자리돔에 뿌린 천일염이 2012년산이라고 해요.
천일염은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짠기가 빠져나가고 달달함이 올라온다고 하네요~~
몰망전
제주도에서는 모자반으로 지를 담거나 죽을 끓이기도 했다는데, 이번 밥상에는 이 모자반으로 전을 준비해 주셨네요..
가사리로 제안하는 샐러드
'가사리'란 단어가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이것 역시 해조류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이날 처음 듣고, 처음 맛보는 해조류가 정말 많았어요~~ 하하
달달한 수박, 상큼한 파프리카, 적채 등 야채에 가사리를 넣어 샐러드로 만들었는데, 청량한 뒷맛이 너무 좋았습니다.
후식
지름떡과 보리차
후식으로 준비된 지름떡은 그동안 맛봤던 지름떡과 달리 쫄깃하고 고소함이 일품이었는데요...
일반 쌀이 아닌 현미찹쌀을 익반죽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지름떡인데 느끼함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몇 개라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어요.
번외편
자리젓 만들기
시즌이 시즌인 만큼 이날은 식사를 마친 후 대평리 전 이장이셨던 고정흥님이 자리젓 담기 시연도 해주셨답니다.
자리젓 재료는 자리돔 1kg에 소금 150g 분량(소금 비율은 늘 15% 유지)이면 된다고 하네요.
정말 간단하죠?
자리돔을 준비할 때 한 가지 중요한 게 있는데요, 자리돔을 씼을 때 절대, 절대 민물에 씻지 않아야 한다는 거라고 합니다.
고정흥 대평리 전 이장님께선 2012년도 소금을 사용하신다는데요..
매년 소금을 구입했다가 간수가 빠지도록 놔둔다고 하시네요.
그래야 소금의 짠 맛이 조금씩 빠져나가 달달한 소금이 된다고 해요.
최소한 1년 정도는 간수를 빼준 소금을 사용해야 요리할 때 맛이 제대로 난다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참, 자리젓이 아닌 멜젓을 담글 때도 소금의 비중은 멜의 15%라고 합니다.
단, 조기의 경우는 살이 많아서 소금의 비중이 20% 정도로 높아지고요.
자리돔에 소금을 뿌리고 나서는 도구를 이용해 꾹꾹 눌러주는데요, 자리돔의 부레와 내장을 빼는 작업이라고 해요.
그래야 생선 안의 공기가 빠져나온다네요.
그렇게 부레와 내장을 뺀 후 다시 한 번 뒤적여서 항아리에 넣고 먹돌로 눌러주면 자리젓 만들기 끝이랍니다.
옹기에 넣어서 그늘에 그대로 두면 연말쯤 맛난 자리젓을 맛볼 수 있다고 해요.
자리돔 시즌이 6월 말까지는 계속되니 이참에 자리젓 만들기에 한 번 도전해 봐야겠어요.
6월 말까지는 보목포구에서도 kg 단위로 자리돔을 구입할 수 있답니다.
'좀녜의 봄밥'은 이번이 첫 행사였는데요,
1년에 두 번 정도 진행할 예정이라 가을에는 또 '가을 밥상'을 차려볼 계획이라고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기억해 두었다 참여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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