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시간 전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7코스ㅣ배산·황령산, 부산의 원점 산성과 봉수대가 자리한 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부산을 대표하는 산,
그곳에서 '부산문화유산'을 찾아보는 답사기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 찾아서」
일곱 번째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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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황령산 부산의 원점,
산성과 봉수대가 자리한 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7 코스 |
배산 ▶ 혜원정사 ▶ 연산동 고분군 배산성과 배산성 집수지 ▶ 겸효대 ▶ 동래 고읍성 황령산 ▶ 마하사 ▶ 황령산 봉수대 ▶ 물만골 ▶ 우암사 ▶ 구상 반려암 ▶ 안찬복 추모비 |
코스 7ㅣ배산·황령산, 부산의 원점
산성과 봉수대가 자리한 산
황령산은 『삼국사기』에 보이는 거칠산국의 이름을 좇아 ‘거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부산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정상에는 부산을 지키기 위한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 동쪽으로 역시 거칠산국과 부산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수영강과 부산 지역 최초의 산성이 위치한 배산을 거느리고 있다.
성을 뜻하는 잣뫼라는
이름을 가진 배산
배산을 잔뫼 또는 잘뫼 등으로 부르고 있고,
그래서 술잔을 뜻하는 배盃라는 한자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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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래는 산 위에 성이 있다는 뜻으로 ‘잣뫼’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도심 속의 사찰 혜원정사
혜원정사는 일부 공간을 24시간 개방하는 도심 속의 사찰이다. 또한 사찰이 구비해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서,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견문을 넓히기 위해 들러볼 만한 절이다. 입구는 천왕문인데, 사천왕은 험상궂은 표정이 아니라 미소를 띠고 있다.
명심전은 마음을 밝힌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도심 속에서 일반 시민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참선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공간이다.
부산에서 유일한 고총고분 연산동고분군
혜원정사 뒷산을 오르면 연산동고분군이 눈에 들어온다. 배산의 한 지맥이 북쪽으로 뻗어서 형성된 50m 높이의 구릉 위에 봉긋한 봉토를 가진 고분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연산동 고분군은 1987년부터 2013년까지 7차례에 걸쳐서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지금까지 조사된 영남지역 삼국시대 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큰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확인하였다.
이 고분들은 신라와 가야의 고분 축조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고, 출토 유물도 부산 지역만의 특징을 가진 것과 신라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들이 함께 출토되어, 5~6세기 부산과 영남 지역의 고대사 및 고대 문화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 최초의 산성 배산성
배산성은 배산 정상을 중심으로 대체로 8부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연산동고분군과 배산 사이에는 잘룩한 허리같은 부분이 있고, 여러 갈래로 길이 났지만 가장 편한 길은 왼편의 현대아파트 쪽으로 난 배산 둘레길이다. 이 길 주변으로 크고 작은 무덤들을 볼 수 있다.
배산성의 흔적은 집수지 바로 아래 위치한 석축이다. 신라는 5세기 후반부터 석성石城을 쌓기 시작했다. 흔히 신라의 석성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고구려 축성법과는 다르다. 도성인 국내성과 평양 지역의 대성산성을 비롯하여 고구려 석성은 모두 ‘토심석축’이다. 내부는 흙으로 판축하고 외부만 돌을 쌓았다.
영남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배산성 집수지
2기의 집수지는 배산성 내부에서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1호 집수지는 지름 17.6m 깊이 4.4m 크기로 추정되고, 2호 집수지는 지름 13m 깊이 4.6m 크기로 남아 있다. 양쪽 모두 원형이며, 붕괴를 막기 위해 3~4단의 계단식 석축을 쌓았다.
집수지 구조는 이웃한 기장산성을 비롯해서 거제도의 둔덕기성, 남해도의 대국산성과 임진성 등 남해안 일원에 신라가 축조한 산성에서 확인되는 집수지 구조와 거의 같다. 그 규모는 전국으로는 두 번째로 크고 영남 지역에서는 가장 크다.
신선이 노닐던 겸효대는 어디에?
겸효대는 신선이 된 김겸효가 노닐던 곳으로 전한다. 한유의 시에서 정추의 시와 운이 같은 곳이라고 한다.
곳곳에 복숭아 심었더니 복사꽃만 한창이니 種桃處處惟開花 멀고 가까운 내와 들이 붉은 노을에 물든 듯하다 川原遠近蒸紅霞 처음 와서는 저절로 고향 경치를 생각했으나 初來猶自念邑色 세월이 오래되니 이곳이 도리어 집이 되었네 歲久此地還成家 겸효는 연꽃으로 씻은 듯하고 謙孝濯濯以蓮花 마음에 우주를 품으니 그 기개가 벼락을 능가하네 胸呑八荒氣凌震 돌이켜보니 만호 고을 벼슬을 부러워하였네 回首肯羨萬戶邑 훨훨 신선이 사는 집이나 왕래하리니 翩翩來往神仙家 |
통일신라부터 고려까지 부산의 중심, 동래고읍성
동래읍성이라고 하면 복천동 마안산 자락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을 떠올리지만, 고려말 조선초에 현재 위치로 옮겨가기 전까지 부산 지역 행정·군사·외교의 중심은 배산의 배산성과 배산 자락의 동래고읍성이었다.
신라의 국방과 외교의 최전선이었다. 신라가 통일한 이후에는 행정의 중심지가 동래고읍성이 되고, 배산성이 군사적인 방어요새이자 피난성의 역할을 하였겠지만, 통일 이전에는 배산성이 읍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거칠산국의 흔적을 간직한
황령산
부산을 대표하는 산은 어느 산일까? 그 높이와 상관없이 황령산을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정상에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빛 연꽃을 떠오르게 하는 절, 마하사
황령산과 금련산 자락에는 수십 개의 사찰이 있지만 그 중에서 역시 한곳만 꼽으면 단연 마하사다. 금련산이라는 이름도 불교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대중들이 수많은 금련화를 석가모니불 머리 위에 뿌렸다고 한다. 금련은 부처님과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는 수단이다.
마하사라는 절 이름은 문지를 마摩와 꾸짖을 가訶. 크다·완전하다 등의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의 ‘마하’라는 말을 나타낼 때의 표기인데, 주로 불교 용어일 때는 ‘하’라고 발음하고 있다. 천수경의 진언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도 ‘마하’도 같은 한자이고 위대하다는 뜻이다.
마하사의 창건과 변천 과정은 대웅전 상량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아도 화상이 창건한 이후 임진왜란 때 사찰 건물이 모두 불타면서,
18세기 초부터 단계적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 시발점은 1717년에 대웅전과 나한전을 다시 짓고 16나한상을 조성한 것이다. 이후 최근까지 중건 불사가 계속되었다.
부산 방어의 최전선 황령산 봉수대
황령산 봉수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석성 봉수대 및 간비오산 봉수대와 더불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425년세종 7 이전부터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동쪽으로 해운대에 있는 간비오산 봉수대와 북쪽으로는 범어사 동북쪽에 있는 계명산 봉수대와 연락하였다고 한다.
황령산 봉수대는 1976년 부산시에서 학술 조사를 거쳐 복원하였다. 관여자의 전언으로는 봉수대의 하부 구조만 잔존하였는데 일직선상의 구들이 횡으로 5줄 있었다고 한다.
물소리 끊이지 않는 도심 속의 오지 물만골
물만골은 이름 그대로 골짜기로 물이 많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지금은 골짜기 입구에 큰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하고 황령산을 오르는 등산로로 붐비게 되었다. 황령산 송신탑 아래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내려오게 되는 곳이 바로 물만골이다.
물만골은 해발고도가 100~200m에 달하기는 하지만, 골짜기 안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집을 지을 만한 공간이 있는 곳이다.
본래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으나 6·25 전쟁 당시 군사 기지용 도로 개설과 1953년 농장[방목장]이 설치되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살기 시작하였다고도 한다.
구리광산 터에 자리한 미륵도량 우암사(牛巖寺)
마하사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찰이 황령산에 이어지는 금련산 자락에 있으니 그곳은 바로 우암사이다. 우암사는 산등성이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 대웅전과 동굴사원이 각각 있어서 계단을 두 번씩 오르내려야 한다.
우암사는 동굴을 나와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아 우리가 저렇게 빠글빠글 살고 있구나.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제철이면 금낭화, 불두화, 미나리냉이꽃, 제비꽃도 만날 수 있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구상반려암
자연의 유구함과 오묘함을 느끼고자 한다면, 다시 황령산을 찾아야 한다. 전포동 쪽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구상반려암을 볼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반려암이란 쌀알같은 흰 반점이 있는 화성암을 말한다.
부산 전포동의 구상반려암은 반려암 속에 구상암이 들어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다고 알려진 희귀암석이다. 도심지 가운데에 위치하고 일반 시민들도 쉽게 찾아가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고요와 평안을 느끼게 해주는 편백나무숲
편백나무는 일본 원산의 상록교목으로 회목 또는 노송나무라고 일컫는다. 높이 30~40m, 폭 1~2m 가량이며, 나무 껍질은 적갈색이고, 작은 바늘 모양의 잎이 가지에 빽빽하게 난다.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고요한 정적과 더불어 마음도 함께 편안해진다.
평안도 3.1 독립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인 안찬복공 추모비
안찬복은 1919년 3월 3일,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하여 평안남도 안주읍 율산공원에서 일어난 3·1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날 모인 5,0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으며 대형 태극기와 악대를 선두로 하여 시가행진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년 10월 5일에 학교법인 원곡학원은 그의 애국행적과 독립정신을 추모하고자 동천고등학교 교정에 이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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