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원산동 소재 "괘고정수"라는 이름을 가진 왕버드나무를 찾았습니다.

"괘고정수"는 광주시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돼 있는데요.

포충사 큰 길에서 한옥마을 방향으로 들어오다가

"필문 광산 이선생 부조묘 통로"라고 쓰인 큰 비석이 보이면

그 비석 바로 앞쪽에 '괘고정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우람한 왕버드나무가 "괘고정수(掛鼓亭樹)"입니다.

'괘고정수(掛鼓亭樹)' 한자의 뜻 풀이를 보면

걸괘(掛), 북고(鼓), 정자정(亭), 나무수(樹)로

즉, '북을 나무에 건 정자 나무'라는 뜻을 가집니다.

당시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서는 과거에 급제하면

괘고정수을 걸고 축하연을 열었던 왕버드나무입니다.

나무 모양이 정자의 지붕처럼 우람하게 보여 나무로는 드물게

'괘고정"이라는 정자 이름을 붙인 것이 특이합니다.

'괘고정수'는 수령이 무려 600년이나 된 노거수입니다.

현재 수령이 높아 나무 몸통을 보면 나이가 느껴지는데요.

마치 지붕처럼 뒤덮고있는 잎새들이 무성해서 여전히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요즘같은 여름 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괘고정수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시원한 자연

바람을 쐬며 더위를 날리고 휴식을 취한다고 합니다.

얼른 보면 두 나무가 딱 붙어 자라는 연리지로 보이기도 한데요.

뿌리쪽에서 덧나온 가지가 그대로 자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노거수 왕버드나무인 "괘고정수"는

600년이라는 긴 세월의 역사 속에

선조들의 지혜와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괘고정수(掛鼓亭樹)는 나무 높이가 약 15m로

필문 이선제(畢門李先齊,1390~1453년)선생이 심었다고 전합니다.

필문 선생은 나무가 죽으면 가문도 쇠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요.

그만큼 이 나무를 소중하게 잘 관리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후에 이선제 선생의 후손이 과거에 급제하면 이 나무에 북을 걸어 놓고

축하연을 열었기 때문에 '괘고정(掛鼓亭)'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1589년(선조 22년) 이른바 기축옥사라 불리는 정여립모반사건 때,

이선제의 5대손 이발과 그의 일가족이 죽음을 당하자 나무도 말라죽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이발의 억울함이 밝혀져 나무에 새 잎이

돋기 시작하면서 다시 가문의 중흥을 예고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괘고정수 앞 연못에도초록빛 물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위치로는 신만산과 구만산으로 나뉘는 중간 지점인

건너편 도로 위 언덕배기에 "양심당 이선생 유허비"가 있습니다.

원산마을 입구 삼거리에 왼편에는 필문 이선제의 신도비, 오른편에는

"양심당이선생유허비(養心堂李先生遺墟碑)"가 나란히 서 있는데요.

"양심당이선생유허비(養心堂李先生遺墟碑)"는 필문 이선제 선생의

큰 아들인 양심당 이시원(李始元)의 유허비입니다.

남구에는 크고 작은 문화재와 기념물이 많습니다.

이상 필문 이선제 선생이 심었다는 "괘고정수" 스케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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