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2025 상주시 sns 서포터즈] 육상의 이순신! 정기룡 장군의 묘
안녕하세요
상주시 SNS 서포터즈
최홍대입니다!🤗
하동에 가서 정기룡장군이 태어난 곳을 비롯하여 그의 흔적에 대해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가 묻힌 곳인 상주 역시 정기룡장군에게는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경천대 관광지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정기룡장군 묘는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상주주막으로 가기 전에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충무공 이순신이 바다에서 승전하고 있을 때 충의공 정기룡장군은
육지에서 60전 60승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탁 트여서 양지바른 곳에 정기룡장군의 묘와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그늘이라고는 살펴볼 수 없을 정도로 탁 트인 공간입니다.
정기룡은 선조 임금 때의 무장으로 호는 매헌(梅軒), 본관은 진양,
시호는 충의공(忠毅公)입니다.
정기룡장군의 묘까지 가는 길목에는
주차공간도 조성이 되어 있어서 주차를 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탁 트인 곳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여름에 방문하면 좋을 듯 합니다.
1562년 4월 24일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출생했고
1581년 20세에 상주로 옮겼으며,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한 후 선조 임금의 명에 따라
이름을 정무수(鄭茂壽)에서 정기룡(鄭起龍)으로 바꾸었습니다.
조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왕명에 의해 바뀐 경우는 많지는 않은데 임진왜란 때 상주에서 대패하여 함락하자
상주 가판관(임시판관), 상주 판관이 되어 왜군과 격전 끝에 상주성을 탈환하였는데
이 전공으로 상주목사가 되었고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경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정기룡 장군의 묘소는 상당히 관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이 묘소의 묘갈명은
보국숭록대부 행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정공 휘 기룡지묘, 정경부인 양양권씨부인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죽어서도 어떤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명인 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은 1562년(명종 17) 당시의 곤양현(昆陽縣) 중평(仲坪),
곧 지금의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태어나
1622년(광해군 14) 삼도수군통제사로서 통영의 진중에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정기룡은 24세가 되던 해에 진주의 향리 강세정(姜世鼎)의 딸과 결혼했는데
장인인 강세정은 당시 진주에서 가장 부유한 향리였다고 합니다.
그런 처가의 지원에 걱정 없이 무과를 준비하다가 1586년 25세의 나이에 무과 별시에 급제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했던가. 최근에 많이 생각하고 있는 이슈이기도 합니다.
정기룡 장군의 신도비는 1700년(숙종 26)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이세재가 썼다고 합니다.
높이는 3.7미터이다. 이순신 장군이 있었을 때 삼도수군 통제영이 한산도에 있었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삼도수군 통제영은 통영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임진왜란 첫 승전보인 거창 신창 전투, 정유재란 시에는 만 명의 적군을 대파한 보은 전투 등 가는 곳마다 승리가 이어지게 했던 정기룡장군은 상주를 살렸던 사람으로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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